[중국 사전여행을 위한 연구]
중국의 고대사상/철학/종교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2018년 대만을 통한 중국에의 공동체여행’을 위하여
지난 5월, 중학교 1학년부터 70대 할머니를 포함한 공동체의 남녀노소가 ‘2017년 큐슈를 통한 일본에의 공동체여행’을 갔다 온 후, 이에 대한 ‘사후 글쓰기’를 통해 여행의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해 보았습니다. 총체적인 삶을 같이 나누며 사는 공동체가 하는 ‘공동체 여행’이라는 개념도 한국사회에 신선하였을 것입니다. 또 그 여행 속의 작은 부분들인 ‘사전공부여행’, ‘역사여행’, ‘자연여행’, ‘직업여행’, ‘대화여행’, ‘교육여행’, ‘사후공부와 글쓰기’, ‘미래 여행’ 같은 개념들도 전혀 새로운 것이었을 겁니다.
이제 1년 후인 2018년 추석 즈음 예상하고 있는 ‘2018년 대만을 통한 중국에의 공동체여행’을 계획하면서 그 전에 할 수 있는 ‘사전공부여행’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역사’, ‘사상/철학/종교’, ‘인물’을 미리 공부하면서 글을 미리 써내려가 보는 겁니다. 이 세가지는 몸을 이끌고 피곤한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깊이 생각하거나 배울 수가 없어서 오히려 어려울 수 있지만, 국내에 조용하게 머물면서 자기 전문직의 일을 하는 중간 중간에 차분하게 책과 문헌과 자료들을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게 될 때에 그 깊이가 천박해질 위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를 비롯한 저널리즘에 실려질 글들은 성격상 반드시 최고의 전문적 지식을 배양한 전문인들이 최신의 정보로 써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전문가가 가지는 장점인 어떤 대상을 완전히 새롭고 생소한 관점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질문하고 나중에 날카로운 비평을 듣고 고칠 각오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전개하는 일일 것입니다. 자신의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공동체 가운데 정직하게 질문 대답을 하고 더 깊이 공부해 나가며, 실제로 여행지에 가서는 미리 내렸던 결론을 되짚어보면서 반성하고 수정한다면 그리 교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세 가지 중 고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사상/철학/종교’를 다루려고 하는데, 이 일은 ‘역사’, ‘인물’을 미리 다루어보는 것과 함께 중국에 대한 ‘사전여행’의 백미가 될 것입니다.
‘중국이 무엇이냐’를 정의 내리기가 너무나 어렵다
제가 이전에 쓴 어떤 시에 이웃인 일본을 ‘칼 같은 나라’, 중국을 ‘기름범벅이 된 나라’라고 잠깐 묘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계속 공부해 보아도 중국에 대한 이런 ‘애매한 정의’가 ‘어느 정도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이 무엇이냐’를 정의 내리기가 정말 어려운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중국의 지리를 정의하기가 아주 애매합니다.
중국의 지리를 고려하기 전에, 섬으로 이루어진 일본과 반도로 이루어진 한반도를 생각한다면, 중국을 지리적으로 정의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지리적 한계는 바다에 면한 동쪽과 남쪽 밖에 없습니다. 아주 넓은 서쪽과 북쪽은 툭 트여있으며, 오랜 역사 동안 이곳을 통해서 언제든지 사람들과 정권들, 그리고 힘들이 밀려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히려 중국에서 이곳을 통해 외부로 나갈 수 있었지만, 지난 오랜 중국의 역사를 보면 밖을 향한 진출보다는 밖에서 안으로의 진출의 역사가 거의 90% 이상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의 밖에서 안을 향한 영향이 사라지고 난 다음, 중국이 그 모든 외부적인 것들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고 큰소리를 칠 수 있고 또 지금 그렇게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의 영향은 주로 기마민족에게서 왔고, 이들 기마민족의 관심은 어떤 것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떤 통치를 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즉 이들이 말타고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또 바람처럼 사라지는 존재로 자신을 정의내리며, 자신들의 중국통치가 끝났을 때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운명을 받아들였다면, 중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존재라고 내린 정의는 사실상 허망한 것입니다. 정주적 문화/문명을 자신의 본질로 생각하는 중국을 향해서 앞으로 어떤 기마민족이 바람처럼 휩쓸어가며 나타난다면 -우리 한민족이 그럴 수 있을까요? - 중국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전에 만주족의 청나라가 명나라를 끝장내고 만주를 텅 비우고 모두 산해관을 통해 입관하여(1644) 남쪽으로 내려와서 만주족 1명이 한족 300명을 268년 지배하려고 작정해도 된다는 것을 사실상 시인 하는 것은 아닐까요? 또 신장 위구르까지 확대한 현재의 중국의 국경은 한족인 명나라가 아니라 이민족인 만주족의 청나라 때에 이룬 것을 이어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족 중심적으로 중국인들이 사고한다면 앞으로 중국이 지리적 팽창을 거듭해서 한반도도 일본도 심지어 미국도 세계 전체도 자신의 땅이라고 허망하게 말하는 날도 올 것입니다.
둘째, 중국의 민족을 규명하기가 아주 애매합니다.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할 때(1949)에 50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에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족이고 앞으로 계속해서 한족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국체’國體를 정의하게 될 때에 대부분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편인데 중국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매우 약하지만, 50여 개의 민족을 넘어서 심지어 세계의 모든 민족이 중국에 속한다고 큰소리 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렇게 국체와 민족의 연관성이 약한 큰 나라가 딱 한 곳이 있는데, 바로 ‘nobody’s land’(어떤 사람의 땅도 아닌)라고 말하곤 하는,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입니다. 미국은 그대로 어떤 사람의 땅도 아니라 실력을 기르고 차지하는 자가 임자인 것을 공공연하게(주로 유대인과 와스프) 속시원하게 말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중국은 한족이 중심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만주족의 청나라에 지배당했던 역사를 마치 만주족이 본래의 한족, 혹은 중국인이라고 거짓으로 정의내린다면 개나 소도 웃을 일입니다. 여기서 역사에서 아주 엉뚱하고 재미있는 가정을 하나 해봅시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이 되고 우리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유대인들처럼 모두 똑똑하고 철저하고 탁월한 사람들이 되어서 만주족처럼 중국을 지배한다는 가정 말입니다. 우리는 만주족처럼 만주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면서 중국인과의 혼합을 피하고 중국 전체를 지배하면서 주도권을 아주 오랫동안 빼앗기지 않는 작전을 쓴다면, 그 때에도 한민족을 중국인의 일부로 여기겠습니까?
셋째, 중국의 역사적/정권적 정체성이 아주 애매합니다.
전설상의 하나라, 은나라를 지나 역사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주나라 이후에 현재의 중국대륙을 이민족이 실질적으로 지배한 역사는 한족이 지배한 것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진실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것은 잘 알려졌지만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만리장성은 결국 툭 터져있는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수세적 전략이며 정주적 민족이 할 수 있는 방책에 불과합니다. 로마가 오랫동안 승리하고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수세적 전략인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쳐들어오면 마주 나가서 싸우는 것이었고, 또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 적극적으로 찾아나가서 싸우는 전략을 근본으로 채택했기 때문인 것과는 정반대였지요. 그래서 한족이 중국을 지배한 시기라고는 매우 짧게 통일한 진나라, 그리고 흉노의 묵특에게 조롱을 받았던 초기를 겨우 지나 제법 지속된 한나라, 주로 양쯔강 이하를 지배하였으나 늘 허약해서 기마민족 정권인 요나라와 금나라의 공격으로 신음하다가 몽골에 결정적으로 망해버린 송나라, 마지막으로 276년 동안을 중국을 지배한 명나라 이외에는 없습니다. 반면에 북쪽과 서쪽을 통해서 침투해 들어와서 중국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지배한 이민족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아주 긴 편입니다. 삼국시대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로 통일되기 전의‘북위’로부터 시작된 소위 ‘5호 16국시대’(5개의 이방민족이 16개의 정권을 이룬 시대)의 정권을 사실상으로 쟁취한 민족들은 기마민족일 뿐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아는 ‘수나라’와 ‘당나라’도 사실상 이런 기마민족 정권이라는 사실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송나라가 흥기한 이후에 북쪽에서 일어난 우리가 잘 아는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모두 기마민족에서 비롯된 나라들입니다. 이 두 나라들을 물리칠 뿐 아니라 송나라까지 멸망시킨 나라가 징기스칸과 ‘원나라’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민족끼리 중국 자체에서 지배권을 놓고 오랫동안 각축을 벌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만약 ‘청나라’를 서구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면 이민족의 중국지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로서의 정주문화/문명과 기마문화/문명의 각축이 이루어진 중국
정주문화/문명과 기마문화/문명의 관점에서 역사를 판단하는 일은 어느 지역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중국과 같이 두 문화/문명의 교호작용이 매우 큰 지역에서는 이 관점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한반도에서의 정주문화/문명과 기마문화/문명의 교차
이런 관점을 잘 알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한반도의 역사를 이런 관점에서 관찰하는 겁니다. 한반도에서는 기마문화/문명의 흔적이 진하게 남은 역사로 이전의 ‘부여’나 ‘고구려’, ‘발해’, ‘고려’, 그리고 ‘백제’도 고구려의 연장으로 본다면 이에 속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오랫동안 갇힌 섬처럼 된 한반도에 눌러지내며 정주문화/문명적 성격이 매우 진하게 나타났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항해술을 탁월하게 발달시키며 웅대한 이상을 지니고 밖으로 활기차게 뻗어나가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정주문화/문명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두 정권이 바뀌는 동안 한반도를 거의 5백년동안 지나치게 오래 지배하였던 이씨 조선에 의해 더욱더 정주문화/문명적 성격이 강화되었습니다. 중국의 송나라에 유행하던 정주적인 학문이자 종교인 주자학을 가져와서 조선에서는 아예 종교로 삼았고, 그것으로 조선이 유지되다가 나라가 망하기까지 내내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로 삼은 허망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즉 공자에서 시작된 가르침이 유가儒家를 이루며 시간이 가서 그것이 유학儒學으로, 다시 종교인 유교儒敎로 발전하는 마지막 과정을 끝까지 고수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거지요. 그래서 밀려들어오는 서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재빨리 따라잡은 같은 동양인 일본에 손 하나 쓰지 못하고 식민지가 되어버린 전형적인 정주문화/문명의 역사를 이룬 겁니다.
둘째, 중국 현상의 본질은 정주문화/문명과 기마문화/문명의 각축
‘말로서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말을 타고서 다스릴 수는 없다.’ 기마민족의 장점인 말은 정복의 도구가 되었지만 정반대로 정복한 곳을 통치하려면 말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역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말에서 내려오는 순간 소박하지만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마문화/문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모든 기마민족들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상들을 잃어버릴 즈음이면 다시 정주문화/문명이 일어나서 뒤엎어 버리는데, 곧이어 그것도 재빨리 타락하기 때문에 새롭고 활달한 기마문화/문명을 가진 민족들이 바람처럼 일어나 중국을 지배해 버린다는 것이 중국의 역사 법칙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중국현상’ 의 본질을 정주문화/문명과 기마문화/문명의 각축이라고 요약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셋째,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는 철저히 정주문화/문명적이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은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는 모조리 정주문화/문명적이라는 겁니다. 종교는 모두 보수적이고 따라서 정주적이라고 여기실 분들이 계실겁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회리바람처럼 중동 전체를 휩쓸고 아프리카를 건너 유럽까지 재빠르게 진군한 절대종교 이슬람의 초기의 역사는 그런 일반화가 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순교로 로마의 300년의 핍박을 견디어낸 절대종교 기독교의 역사는 결코 정주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는 모두 철저히 정주문화/문명적인 점이 놀라운 특징입니다.
먼저 ‘유교’의 근원인 공자 자신이 평생토록 추구한 것은 주나라 시절의 ‘예’禮(절)였습니다. 주나라는 천자부터 하층민까지 철저히 ‘종법사회’를 이루었는데, 그것이 춘추시대에 근본적으로 무너졌고 공자 이후의 전국시대에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 이른 겁니다. 그것을 다시 돌이키려고 공자는 애썼는데, 종법제도의 핵심은 사실 ‘토지제도’에 있습니다. 모든 땅은 천자가 차지하고 그것을 공경과 대부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은 다시 그 아래로 나누어주는 봉건제도의 핵심이 바로 토지제도인 겁니다. ‘토지’에 대한 집착에서 우리는 공자가 추구한 주례의 근본은 ‘정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마문화/문명은 이와는 정반대로 토지에 대하여 집착하기보다 어떤 곳을 어떻게 지배하고 통치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기마민족의 대체적인 행동인 바람처럼 쳐들어와서 정복하고 물건을 가지고 자신이 살던 유목지로 돌아가는 것인 것과 대조됩니다. 이런 공자의 사상이 ‘유가’를 이루고 다시 송나라 즈음에 ‘유학’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의 종교인 ‘유교’로 변질되는 과정에서 공자는 신으로 승격되었고, 공산정권 아래서의 중국에서야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공자를 고려하는 것 같습니다.
‘유’儒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20세기 초에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 존 듀이에게서 박사학위를 마친 풍우란은 이것을 사회역사적 배경으로 설명했는데, 제법 설득력이 있습니다(「중국철학사(상)」). 즉 ‘유’의 근원은 주나라와 주제도의 붕괴와 함께 붕괴한 사회계층이 바로 제사나 관직을 담당하는 ‘사’士라는 겁니다. 이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던 사회 구조나 정권 체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고대의 것을 붙들고 그것을 이론화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체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묵가’도 동일합니다. 유가의 원조는 ‘문’文을 담당하는 ‘사’士(신하, 관리)라면, 묵가의 원조는 ‘무’武를 담당하는 ‘사’士입니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문과 무가 동시에 필요한데, 사회와 정권 자체가 무너지니 세상을 다시 세우는 길로서 무를 다시 세우고 거기에 철학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몰락하는 무가계급이 세운 것이 묵가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묵가 역시 정주적 문화/문명의 관점을 사실상 근본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기마문화/문명의 기상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혼란과 유가에 대한, 그리고 묵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양주와 노자, 장자의 ‘노장학’이며 여기서 발전한 것이 ‘도교’道敎입니다. ‘노자’는 세상을 바로 세우려면 개인이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고 했지만, 더 허물어진 후대에 살았던 ‘장자’는 그것도 이룰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니 아예 세상을 떠나서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 신선이 되려고 한 겁니다. 이런 것을 보아 노장사상 혹은 도교도 역시 정주적이지 결코 기마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와 중국의 최초의 통일에 기여한 상앙과 한비자의 ‘법가’法家도 사실상 정주적인 정권에 봉사하기에 딱 알맞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을 세밀하게 법조항과 철저한 적용으로 꽁꽁 묶어 놓으려고 한 겁니다. 이것은 주나라보다 훨씬 심하게 조직과 체계 속에 모든 것을 두려는 정주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밖의 논리적 치밀성으로 말장난에 능한 ‘명가’名家, 운명을 음양오행으로 설명하려는 ‘음양오행가’, 그리고 군사적 승리를 추구한 ‘병가’兵家 역시 모두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 정주적 시대의 혼란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배태된 몸부림과 같은 사상/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풍우란이 말한대로 모든 중국의 사상/철학/종교의 공통 원천이었던 ‘삼경’三經(즉 시경 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은 모두 주나라 시대까지 유행하던 것에 불과하니 철저히 ‘정주적’입니다. 유가→유학→유교에서 경전으로 만든 ‘사서’四書(대학, 논어, 중용, 맹자)는 모두 송나라 때에 주희의 강력한 주장 아래 종교화한 경전에 불과한데, 이 모두는 확실히 ‘정주적’성격을 띱니다.
중국 사상/철학/종교의 미분화로 이룬 뜬 구름잡는 역사
모든 것이 허물어진 가운데 무엇으로 영구한 기초를 세울 것인가에 대해서 적어도 중국을 지배하였던 기마문화/문명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기마적 성격을 지닌 문화/문명이 그런 것은 아닌데, 절대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그러합니다.
1) 사상/철학의 종교화
반면에 중국의 사상/철학은 절대종교가 아닌 가운데 정주적 성격을 진하게 가지고 전승 되어갔기 때문에 ‘종교화’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적어도 ‘유교’가 그러하며 ‘도교’가 그러했습니다. 절대종교가 없는 상태로 사상/철학을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으니 생기는 당연한 현상은 그 사상/철학을 종교화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종교화하면서 온갖 허구적 기초를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공자가 지었다는「춘추」는 매우 간략하게 만들어져서 한 구절당 10-20단어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만들어진「춘추공량전」과「춘추곡량전」은 엄청난 길이로 그 짧은 문장에 해석을 덧붙여 놓은 겁니다. 그래서 중국의 사상/철학/종교의 경전들은 모조리 고대의 전통에 해석에 해석에 해석을 붙여놓은 것에 불과할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절대종교에서도 해석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해석을 할 때에 명백한 절대경전이 있으며, 또 해석의 이유가 선명하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해석 역사를 보면 이런 치밀함보다는 해석자의 주관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은 지를 판명하기가 너무 힘들고, 21세기의 중국의 학문계(적어도 인문학계)에서까지 그런 주관적인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예: 중국의 동북공정). 어떤 것이든 정부가 시키는 대로 조작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역사라는 정말 허망한 전통일 뿐입니다. 이것은 절대종교가 없는 가운데 생긴 전형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2) 사상/철학/종교의 과학과의 미분화
학문들이 서로 연관이 없이 분화, 발전해 버리는 것이 이상적이 아니라는 점은 과학들이 서로 무분별하고 무연관한 발전 때문에 수많은 문제(환경문제 등)를 일으키는 서양문화/문명의 현실로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문들이 전개되면서 미분화된 채로 있으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회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까지 모두 뒤범벅된 가운데 무엇이 객관적 진리,사실이고 무엇이 주관적 해석인지 구분되지 않기 십상입니다. 고대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는 바로 이런 허점 가운데 빠지고 만 것입니다. 중국에서 화약과 나침판과 종이가 먼저 발명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문제는 중국인들은 이것을 단지 ‘실용적’으로 취하였을 뿐이지 본질을 철저히 규명하여 분자(화학), 원자(물리학) 단위까지 추구하려고 하지 않은 겁니다. 즉 오직 현재적이고 실용적인 정신만으로 물질과 존재와 사회와 우주를 대했지, 그 본질을 다방면의 차원에서 철저하게 규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구문화/문명은 처음에 시작했을 때에 종교와 철학과 과학과의 제법 균형을 이루며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절대종교를 상실하고 포괄이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 철학의 중요성도 잃어버리며, (자연)과학독주로 가는 약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는 정반대 방향으로 정체되었기 때문에 19-20세기이후의 서구문화/문명의 충격으로 중국 전체가 쓰러져서 중국적 전통을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문명으로 재기하는 모습은 지금도 볼 수 없는 일인 겁니다.
중요한 질문 하나로 마무리해 봅시다. 공산정권의 중국이 과연 지나갈까요? 그렇다면 그런 후시대의 중국은 과연 자신들의 고대사상/철학/종교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제가 제시한 중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나 중국의 사상/철학/종교를 정주문화/문명과 기마문화/문명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가 과연 옳다면, 이들이 이에 정직하게 반응하여서 대답할까요? 우리는 중국 바로 옆에 붙어있어 결코 지리적으로 중국과 분리될 수 없지만 중국의 불행은 바로 한반도의 불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중국이 정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중국이 자랑하는 주역의 점을 치듯이 답하지 않고 과감하게 중국의 고대 사상/철학/종교가 정주적이라고 규정해 주고 새로운 기마적인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은 지나친 만용일까요? 그러면 그렇게 하는 ‘우리’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요?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5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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