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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세 유대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법률/황경태 변호사의 법률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1. 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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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태 변호사의 법률칼럼]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세 유대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1930~)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2017년 1월 2일 한국경제신문에 <위기에 처한 ‘열린사회’ EU, 1990년 소련처럼 붕괴할 수 있다>란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EU가 매우 불안하다고 보는 이유는 작년의 ‘브렉시트’에서 현저하게 보여준 반EU 움직임들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EU와 유로존 국가들은 점점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는데, 상황에 맞지 않는 법조문들이 서로 뒤엉켜 유로존의 발목을 잡아서 EU조직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고 진단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EU분열의 시작점으로서 브렉시트의 영국보다는 독일을 지목합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국 유권자를 의식하여 “모든 국가는 자국 금융회사를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성공적 패권국이 되려면 자국 이해관계를 넘어선 이상을 추구해야하는데 독일은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가 정작 확신하고 말하려는 핵심은 이런 EU의 해체가 아니라 ‘열린사회’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EU의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러시아의 영향이 강화될 것인데,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의 사고방식은 ‘열린사회’와 공존할 수 없으며,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뉴스를 조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 조지 소로스 (1930~) >


  조지 소로스가 이야기하는 ‘닫힌사회’와 ‘열린사회’를 대조하는 개념은 자기의 스승인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가 주장한 것입니다. ‘닫힌사회’에서 사회의 도덕과 법률은 마치 자연법칙과 같이 절대적이어서 사회 혹은 공동체, 지도자나 구성원을 향한 비판이 불가능합니다. 닫힌 사회에서 국가 혹은 특정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만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잘 알고 있고, 오직 국가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국가는 개인들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는 겁니다.


  ‘열린사회’는 이와 반대로 역사는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통해 점차 개선되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이루어 가는 사회를 말합니다. 경험 부족 탓에 많은 혼란과 실수가 물론 일어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열린사회’ 사람들은 토론을 통한 끈질긴 미세한 조정을 통해 오류를 점차 제거하여 사회를 발전시킨다 겁니다. 칼 포퍼는 유대인으로 1,2차 세계대전을 매우 고통스럽게 겪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빠져들었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그 후, <탐구의 논리>, <열린사회와 그 적들>, <역사주의의 빈곤>이란 책들을 펴내면서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이릅니다. 조지 소로스 역시 유대인으로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왔다가 런던정경대학에서 칼 포퍼를 만나 사사하게 되지요. 칼 포퍼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조지 소로스는 ‘열린사회재단’까지 만들어 국제정치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며 뭐랄까 불편함을 느끼고 특이한 불일치를 감지했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분석과 주장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다만 ‘국제적 투기꾼’이라는 그에서 씌워진 이 표 딱지만 아니라면 말이지요.


  조지 소로스가 1992년에 파운드화를 공격하여 영국을 무너뜨려서 유명하게 된 일화를 살펴볼까요? 1992년 유럽에 최악의 통화위기가 터졌을 때, 1999년까지 단일통화권을 구축하려 한 유럽연합의 참가국들은 이를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회원국간 기본환율을 설정한 ‘환율조정 메커니즘’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들이 하나의 통화를 사용하는 체제를 만들려면 각국의 경제규모와 운영정책들을 세심하게 조율해야 하는데, 사전단계로서 이런 체제를 운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독일이 통일을 달성하고 동독화폐와 서독화폐를 1:1로 맞교환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독이 동독에 대대적 투자를 하게 되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독일 중앙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초고금리 정책을 폅니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정책 때문에 투자금들이 독일로 몰리면서 마르크화가 고평가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독일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금리를 올려야 했던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발생했습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환율조정 메커니즘’ 때문이지요. 요즘도 불황이라 저금리정책을 유지하는데 당시도 경제상황은 좋지 않은데 독일을 따라서 억지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야 했던 나라들에 난리가 난 겁니다. 독일은 자국의 사정을 우선시하며 마이 웨이를 외쳤고, 처음으로 핀란드가 마르크화와 자국화폐 간의 연동제를 폐지하였습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화폐 역시 대폭락하였고, 영국의 파운드화도 대폭락 조짐을 보였지요. 이때 영국은 파운드화의 방어를 선언합니다. 당시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영란은행의 금고는 넉넉하므로 문제없다고 국민을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영국정세에 밝은 소로스는 영국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국제적 투기세력을 모아 연일 파운드화를 공격하여 결국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었습니다. 이 한 번의 투자로 소로스는 한 달간 약 10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이지요.


  이렇게 그의 말과 그의 행동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 같은 조지 소로스를 어떻게 이해할 지가 난감해집니다. 그는 ‘열린사회’를 옹호하며 약 80억 달러를 기부한 부자일까요? 아니면 돈에 눈이 먼 국제투기꾼일까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국을 공격한 그의 행동이 영국의 허장성세를 까발린 일종의 ‘열린사회’를 위한 메스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돈을 위해서 유럽통합을 저해시킨 투기꾼의 모습일까요? 


  이렇게 판단을 헷갈리게 만드는 소로스보다 덜 알려졌지만 더 중요한 또 한명의 유대인 은행가인, 지그문트 바르부르크Siegmaund Warburg(1902~1982)란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소로스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히틀러 정권을 경험하고 영국으로 건너간 점도 소로스와 같습니다. 그도 유대인으로서 파시스트 정권의 패악을 직접 경험하였기에 서유럽의 통합을 위해 매진합니다. 악한 정치체제를 경험하고 이를 막기 위해 정치영역에서 노력한 점도 소로스와 유사합니다.


< 지그문트 바르부르크 (1902~1982) >


  하지만 그가 금융에 대해 가진 생각은 소로스와는 달라 보입니다. 그는 금융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높은 도덕적 기준, 효율성, 연줄, 자본, 자질을 가진 직원들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높은 기준을 실천에 옮기는 것에 게을리하거나 실패한 다른 금융가들을 우습게보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1940년 하반기 월 스트리트를 향해 내린 비판적 평결은 그곳이 ‘투자가가 아닌 투기꾼의 시장’이라는 겁니다. 지그문트가 이런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진 사람이 된 데에는 어려서 받은 교육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남독일적인 청교도주의의 ‘몸담은 곳이 어디든 간에 공동체에 헌신하게 했고, 헌신할 때에는 최선과 열정을 다하도록 격려했으며, 외적 아름다움이나 물질적 요소나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는 방식 등을 질 낮은 것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교육입니다. 이에 따라 그는 독일을 무척 사랑하였고 히틀러 집권 초기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독일을 구하려 애를 씁니다. 점점 심해지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도 그는 영국 경제를 살리고 유럽통합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 두 명의 금융인과 철학자 포퍼 모두 유대인으로서 자기 영역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서도 영국의 발전과 유럽통합과 세계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씨름했던 점에서는 경탄할만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대인과 세계인이 다 같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려 하였다는 겁니다. 


  먼저 철학자 칼 포퍼는 20세기를 휩쓴 두 가지 전체주의(혹은 사회주의)인 국가사회주의(나치즘)와 계급사회주의(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합니다. 그럴 뿐 아니라 이 두 가지의 기원이 되었던 19세기의 헤겔과 마르크스를 비판하지만, 거기서 포퍼는 더 나가서 이 두 가지의 기초를 제공한 서양철학의 본질까지 흔들려고 시도합니다. 즉 너 자신을 알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자기인식 가능성을 정직하게 의심하였던 스승 소크라테스를 배신한 철학자 플라톤부터 비판합니다. 또 그 플라톤 밑에서 수학했지만 그를 다시 배신한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이 평가절하해 버리지요. 현대 서양문화의 두 기초로 여겨지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인간의 경험의 길만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는 현대사회에 이를수록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닫힌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바르부르크는 이런 칼 포퍼에게서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경제 정치철학을 따라 움직인 사람입니다. 2차대전으로 인한 유럽과 세계의 붕괴라는 현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조건으로서 유럽통합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일군 재산과 은행조차도 나중에는 해체되어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노력했지요.


  반면 조지 소로스는 칼 포퍼의 영향으로 서양문화 전반과 그것이 이룬 ‘닫힌 사회’에 대한 철저한 의심과 함께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실제로 유대인의 생존을 가장 우선적 조건으로 삼아서 ‘열린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족적 자본을 무너트려도 된다는 전략을 가지고 달려드는 세계적 투기꾼의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해(2016년) 삼성을 공격하였고 한국의 최순실사태가 어떻게 처리 되느냐에 따라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재공격해 들어올 것이 예상되는 엘리엇과 같은, 유대인 투기꾼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즉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생각을 전형적으로 내보인 거지요.

  

  바르부르크는 시기적으로 유럽통합 초기에 살았고, 조지 소로스는 유럽통합이 붕괴되는 시점에 산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물론 국제적 투기기법은 바르부르크 사후 1980년대 후반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는데, 바르부르크는 아마 그의 높은 윤리의식 때문에 시류를 업고 투기꾼으로서는 살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악착같이 심지어는 남을 발가벗겨 먹는다는 욕을 얻어먹을 정도로 돈에 집착한 후에 자선사업에 뛰어드는 데, 그 자선사업이 사실은 유대인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 두 유대인 금융인 가운데 누구의 삶이 더 바람직할까가 정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물론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근거없는 유대인 음모론을 뒤로 밀쳐놓아 봅시다. 더 중요한 것은 칼 포퍼를 포함한 이들 두 명의 금융인 모두 1,400만명의 유대인의 생존과 함께 세계인의 미래에 대해서 그렇게 생애를 쏟아부으면서 노력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은둔의 나라’로 꼭 박혀 살았던 조선인의 후예들인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유대인은 비록 소수의 무리이지만 세계경영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세계 최고의 인물들을 배출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남북한 합쳐서 8천만이나 되는 우리들 속에서 이런 인물들이 배출되어야 세계 4대강국으로 둘러싸인 21세기 세계의 배꼽과 같은 위치에 놓인 한국의 장래가 밝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진실을 밝히는 도구’로서

헤세드(자비)와 에메트(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황경태 변호사

kt.hwang32@gmail.com

010-7220-3209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8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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