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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만화방 주인장이 된, ‘하우스텍’대표 심재용

기업/가비양(커피 칼럼 &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0.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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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칼럼 & 커피스토리 44]

 

초등학교 5학년 만화방 주인장이 된, ‘하우스텍’ 대표 심재용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을을 노래하는 오후. 가비양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한 모금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가비양 커피를 앞에 놓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 현재는 ‘하우스 텍’ 대표지만, 심재용 대표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네요.
  저는 만화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도 가야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만화책에 빠져 가끔 학교도 안 가고 집에도 안 들어갈 정도였죠. 저희 어머님이 고민 고민하다가 단독주택인 집 한쪽 담을 헐어 만화가게를 만드셨어요. 그 후부터 저는 착실히 집에 들어갔죠.^^ 왜냐하면 집에 만화가 있으니 다른데서 방황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아날로그 시대였던 그 당시 만화는 현실이 약간 가공된 것이었기에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그 땐 꿈이 많았거든요. 물론 아직 이룬 것은 별로 없지만요.

 

- 그렇게 만화를 좋아하면서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시지 않으셨나요?
  그런 생각은 안했습니다. 가상의 현실 자체가 저에게는 안식처였다고 할까요? 어렸지만 가정에 힘든 일이 많아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서울이 고향인데 외가가 판교였어요. 방학이 되면 곧바로 외가로 가서 지내다가 방학이 끝나면 많은 아쉬움을 안고 서울로 올라가곤 했죠. 앞마개(앞마을 개울)에서 멱을 감았는데 주변의 버드나무 수풀과 새소리, 곤충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논두렁을 따라 있는 도랑에 물이 졸졸 흐르는데 햇빛을 받아 은빛 모래 같았죠. 모든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종로구 창성동 근생 준공 모습 >

 

- 어떻게 건축을 시작하셨나요, 그리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전공은 사회학이었어요. 집안에서 병원, 대형약국, 한의원을 경영하며 회계와 감사가 필요한데 할 사람이 없으니, 저에게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 사업을 전체적으로 통합하며 책임도 맡다보니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았죠. 그러다 대형건물 몇 개를 짓게 되었는데 이게 ‘건축’의 첫 경험이었어요.
  그 뒤로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디벨로퍼(개발자, developer)로 활동하다가, 20년 전 이곳 분당 서현동에 63세대의 주택단지를 계획하고 추진하던 중 IMF가 왔어요.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나마 모델하우스 자리로 유리 공장을 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뭔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디벨로퍼로서의 역할을 접고 커피에 대한 20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반은 카페, 반은 사무실을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그때 ‘차운기’라는 괴짜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해줬는데, 저의 ‘성격’을 담은 특이한 구조였어요. 입구를 비뚤게 만들었는데 그게 저의 코였고 약간 삐딱한 저의 성격을 표현한 거였죠. 그나마 눈을 상징하는 창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있다고 크게 만들어 주었고, 제가 말은 잘 했는지 이빨을 나타내는 것도 한쪽 구석에 만들어 놓았죠. 저는 그대로가 좋았습니다. 카페 이름도 아예 ‘창고’라고 했지요. 예전에 추송웅씨의 연극을 공연하던 ‘창고’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그것을 추억하며 지은 거예요. 그리고‘문화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곳’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당시에 유명한‘인공위성’이라는 아카펠라 팀을 초청해서 주차장 마당에서 공연했어요. 그런데 이틀 만에 1,000명이 방문했으니 시골마을이 북적댔죠. 그 바람에 마을 어르신들이 파자마 바람으로 몽둥이 들고 찾아와서 시끄럽다고 고함을 치셔서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카페를 시작했는데 카페 수입이 매일 40~50만원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스멀스멀 디벨로퍼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죠. 그래서 퇴촌에 2,500평 공간을 임대하고, 그것도 성이 안 차서 빚을 잔뜩 내서 강원도의 52,600평을 사서 ‘어른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죠. 사실 강원도 땅은 제가 완전히 반했거든요. 어렸을 때 보았던 자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멋진 땅이었어요. 그래서 불도저로 확 밀어버리는 식이 아니라 자연 환경을 그대로 살리고 자연친화적인 계획으로 심신을 치유하기에 적합한 놀이터로 만들려고 계획했지요. 그러다 위기를 맞았는데, 제가 그 땅을 팔아버렸으면 될 텐데 미련하게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실은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잡은 친구에게 도리어 뒤통수를 맞은 거였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하고 있던 차에 다시 취업하고 2년 정도의 경험을 쌓으면서 ‘하우스 텍’을 14년 전에 시작한 거지요.

 

- 집을 짓거나 디자인을 할 때 대표님의 철학은 어떤 건가요?
  ‘하우스 텍’HouseTech이라는 이름에는 ‘집을 짓는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보다 ‘어떻게 하면 주택을 잘 짓나?’, ‘어떻게 하면 주택이 발전할 수 있나?’의 의미가 강합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님이 집에 가고 싶어하도록 아예 집 일부를 만화 책방으로 만들어주셨듯이, 주택을 지을 때 집안에 목적의 우선순위를 잡아야 합니다. 집이 남편들에게 하숙집 같고 아이들과 주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동안에는 집을 공학적, 기능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문화공간으로도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집에 있으면 허튼짓 안하고 집에 들어가게 되지요. 이런 것을 실현하려면 건축의 하드웨어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에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목적을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실내공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외부공기는 아예 오염되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먼지를 마신 거라면 지금은 미세먼지 속의 중금속을 마시는 거죠. 그래서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는 ‘자연환기’는 일찍 포기했습니다. 그러면 ‘강제환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기 위해서는 ‘매커니즘’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 ‘적정주택 연구소’라는 부설연구소까지 따로 두었습니다. 저희는 ‘열교환기’와 ‘공기정화시스템’을 동시에 갖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공기 정화와 열손실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거죠. 이것을 24시간 틀어놓으면 창문을 열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지만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선 40평 규모에 평당 25~30만원의 비용이 드는 약점이 있긴 합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원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공사가 되고 말았죠.

 

 

- 이상과 현실 속에서 힘드셨겠네요.
  힘들었다기보다 사실 제가 능력이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조건에서 하는데 저는 실현을 못한 거죠. 집을 짓는 것을 좋아했지만 건축을 다 알고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짓다보니 너무 부족한 부분이 많았어요. 빠진 것이 없는 집을 제대로 짓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회사를 차린 후에 연구소도 만들었고, 또 선진국들을 돌며 새롭고 제대로 된 것들을 배우려고 했죠.
  사실 우리나라가 건축자재 기반의 구조가 많이 약해요. 유럽은 철공소와 목공소에 자체 장인이 있어 자재들을 자체 해결합니다. 이런 것을 다 갖추고 싶지만 쉽지 않고 무엇보다 한국의 시장규모가 작았어요. 또 유럽이나 일본은 창문도 다 규격이 있어 기본적 규격을 따라가면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고 설계하는 사람들이 클라이언트에 요구에 따라 넓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게 다 새롭게 제작해야 하니 쓸데없는 곳에 돈을 사용하는 셈입니다. 창문도 무조건 다 넓다고 좋은 게 아니라 가릴 때는 가려야 하거든요. 빛을 예민하게 다뤄 잠열로 난방을 하면 난방을 따로 안 해도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고 무조건 넓히려고 하는 습관이 있는 겁니다. 제가 4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건축의 기본적인 것들만을 고민한 것인데, 일반인들의 사고체계가 저와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뭔가 좀 재어 가면서 해야 하는데 생각이 들고 말이 떨어지면 주변 안보고 가버리는 습관이니 주변 사람들이 힘든 거죠. 그래서 이제 아무 것도 안 하려고요!^^

 

-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어떤 것인가요?
  국내 처음으로 적정주택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었는데, 적정주택은 일본의 ‘협소주택’과 같은 개념의 주택을 말합니다. 자투리땅이나 20평 정도의 부지에 주거공간과 수납공간을 잘 활용하여 최소 면적의 주택을 완성하는 것이죠. 몇 년 전 어떤 젊은 예비신랑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를 위해 꼭 집을 짓고 싶은데 사당동에 자투리 땅 11평까지 찾았다고 하였지요. 하도 기특해서 지적도를 보내보라 하고 보니, 딱 6.5평이 가능하더라고요. 3개 층에 다락까지 하면 20평이 되니 신혼집으로는 좁지 않았어요. 가죽 공예를 하는 남편은 1층을 사무실로 만들기 원해서 최대한의 주거공간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납을 바닥이나 천정으로 집어넣었어요. 냉장고까지 바닥으로 넣었으니까요. 한마디로 ‘어메이징 스페이스’ amazing space가 확보되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기술적 부분도 많이 필요해서 아무나 지을 수도 없고, 더구나 골목도 좁아 트럭이 못 들어가니 자재를 들고 가야 하는 등 애로가 많았어요. 돈이 넉넉지 않아 거의 다자인과 설계는 그냥 해준 거나 다름 없었죠. 그래도 집을 짓고 프로포즈 하겠다하니 기특하잖아요. 드디어 완성이 되었죠. 그런데 총 2억이 들었는데, 집이 좋으니까 4억을 줄 테니 팔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신랑이 저더러 팔아도 되는지 묻더라고요. 저는 아무 말도 안하고 어쩌려는지 지켜봤습니다. 얼마 후 전화가 왔어요. “대표님! 우리가 마음이 흔들렸기도 했는데요. 안 팔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그 건물을 보고 연락이 오고 난리가 났었죠. 서로 해달라고요. 하지만 안 된다고 했어요. 수익도 안 맞고 또 무엇보다 협소주택에 집중시킬만한 인력도 없었기 때문이죠.

 

- 가비양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가 ‘창고’라는 카페를 열었을 때 양동기 대표를 처음 만났어요. 양대표가 20대 후반, 저는 40대였을 때였죠. 양대표가 저희 카페 창고에 커피를 공급했는데, 양대표가 말을 걸으려고 하면 저는 피했어요. 한마디로 제가 그를 어린애 취급한 것 같아요. 커피의 총체적 전문가였는데 제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 거죠.
  가비양은 ‘살롱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아버지 커피학교’와 ‘각종 음악회’를 통해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와 예술을 나누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흉내내 봤지만 쉽지 않거든요. 양동기 대표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것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올해 1월, 간 이식이라는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는 심재용 대표는 그간의 일들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습니다. 큰 아들은 조경을 공부했으니 자기는 집을 지어 부자夫子가 함께 일을 해보는 것이 꿈이라며 빙그레 웃는 얼굴 위로 오후의 가을햇살이 가만히 내려앉았습니다.

 

가비양 커피클럽 문의 010-9405-8947

www.gabeeyang.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6호 >에 실려 있습니다.

   

< 가비양 커피클럽 & 커피스토리 바로가기 >

  가비양은 커피를 매개로 한 소통장소입니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드립도하지만, '최고의 인테리어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이 머무는 장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가비양 커피클럽 & 커피스토리]는 그 속에서 머무는 많은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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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과 화가와 음악이 딱 맞아 떨어질 때 정말 환희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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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양 커피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한 커피 안에 다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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