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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변호사의 중동 견문록 두바이 연수기

2018년 4월호(제 10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4. 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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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 견문록]

황변호사의 중동 견문록 두바이 연수기


  2017년 서울의 12월은 유난히 춥고 먼지가 많았다.

  그래도 추운 것은 그 나름대로 가진 장점이 있는데 두터운 외투의 촉감이 더욱 살갑다던지, 혹은 방을 따듯하게 해놓고서 콕 박혀 일을 하거나 책을 보는 즐거움, 또는 운동을 하고 난 뒤의 상쾌함이 배가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먼지가 많은 것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서울의 먼지를 피해서 모래의 나라, 중동 두바이로 향하게 된 것이다. 물론 두바이에 있는 로펌에 연수를 하러 가는 것 외의 몇 가지 주된 목적들이 있긴 하였으나, ‘성인 아토피’라는 지병을 앓고 있는 나에게는 겨울의 먼지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천공항을 날아올라 뿌연 서울 하늘을 내려다 볼 때는 더욱 그랬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인데, 아랍에미리트를 일종의 연방제 국가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가장 큰 형님은 아부다비임에도 우리에게는 두바이가 더 익숙하다. 7성급호텔인 ‘버즈 알 아랍’(Burj Al Arab)이나 삼성이 지은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뉴스나 신문의 국제란을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지도자의 리더쉽으로 사막의 불모지에서 중동의 허브로 발돋움한 두바이와, 2008년 금융위기로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을 선언한 두바이의 양면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두바이의 1월의 날씨는 대략 우리나라의 초가을을 상상하면 비슷하다. 그 말인즉 일 년 중에 제일 살기 좋은 때란 것이다. 사막위의 도시이지만 인공수로를 통해 나무와 잔디, 각종 화초를 키운다. 부르즈 칼리파 앞에는 인공호수도 있어서 뱃놀이를 하거나 분수쇼도 볼 수 있다. 가끔 부는 모래바람 때문에 목이 컬컬하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적어도 중금속이 포함된 미세먼지는 아닐 테니까...   


< 부르즈 칼리파와 인공호수 >


  한 달 동안 연수를 하게 된 로펌은 부르즈 칼리파가 잘 보이는 두바이몰 근처에 있었다. 케냐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프리카계 로펌으로 아프리카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대리하거나 혹은 아프리카나 중동계 기업들을 대리하여 중동, 아프리카지역에서 부딪히는 법적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주로 담당한다. 나는 케냐변호사 한명, 인도변호사 두 명과 같이 방을 썼는데, 나를 담당했던 파트너변호사는 나이지리아 여성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국의 커먼로(common law, 보통법)체제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다. 특히 나이지리아 변호사는 똑 부러지는 영국식 억양과 세심한 배려심을 갖춘 프로였다. 아프리카계여서인지는 몰라도 로펌의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참 친절했는데 나를 잠깐 왔다가는 사람이 아닌, 한 달이나마 구성원의 일부로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하여도 업무에 참여하는 것은 역시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일단 영어로, 그것도 내게 익숙한 한국법(대륙법)이 아닌, 영미법을 주로 들여다 봐야하니 말이다. 매주 일요일(여긴 금, 토를 쉰다) 아침마다 열리는 변호사들의 회의 때에도 쏟아지는 이슈들을 잘 듣고 코멘트나 질문을 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내가 참여했던 케이스는 아프리카와 중동기업이 관련된 기업실사와 인수합병분쟁자문이었는데, 이러한 다국적 케이스를 다른 곳이 아닌 두바이에서 처리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럼 페르시아만 구석의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던, 석유도 나지 않는 두바이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 로펌사무실이 있는 오피스 건물 >


  두바이의 발전은 두바이 자체가 아닌 그 뒤에 있는 중동 전체를 볼 때에만 설명이 가능해진다. 두바이 근처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을까? 오른쪽으로 가면 오만과 인도가 나오고, 왼쪽과 북쪽에는 각각 이슬람 세계의 두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나온다. 중동 세계의 특징을 두 가지 꼽으라면 이슬람종교와 석유를 바탕으로 한 자금력을 들 수 있다. 이슬람은 남자는 흰 옷, 여자는 검은 옷을 뒤집어 쓴 채, 하루 여섯 차례 드리는 기도와 라마단, 음식 등에 대한 규율 등 샤리아법과 중동 특유의 공동체의식으로 뒷받침되는 한 축, 그리고 석유를 바탕으로 한, 돈의 힘의 한 축으로 세계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 세계에 들어가 사업을 하고자 하는 국가와 기업들(참고로 부르즈 칼리파 건설에 참여한 국가의 수는 40개국이다)이 많은데, 이란은 오랜 경제제재로 묶여있고, 사우디아리비아는 엄격한 이슬람의 관습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두바이의 지도자는 이런 이슬람세계에 진입하려는 기업들에게 세금혜택 (법인세, 소득세면제), 경제자유구역에서의 관세면제와 자유로운 기업설립, 영국법률시스템의 도입을 비롯한 특정지역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여 주었다. 그러니까 종교자유구역에서는 개신교, 카톨릭 예배도 가능하고 특정 마켓이긴 하나 돼지고기, 삼겹살, 술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움에는 돈의 흐름에 대한 자유로움도 포함된다. 즉 자금의 출처를 꼬치꼬치 따지지 않기에 의심스러운, 혹은 불법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돈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 덕에 대추야자가 최선의 교역품이던 이곳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두바이 사람들이 무조건 퍼주는 인심 좋은 동네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법인세, 소득세 등이 면세이나 눈에 보이지 않게 뜯어가는 돈이 많다. 그리고 최근 들어 부가세 5%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집값과 교육비, 의료비는 와서 번만큼 토해내야 한다는 묵시적인 규율인 듯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 역시 그늘의 한 단면이다. ‘와’하고 몰려 들어온 돈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두바이의 번영을 상징하는 최고층 건물이 ‘부르즈 두바이’에서 현재의 ‘부르즈 칼리파’로 바뀐 것이다. ‘칼리파’는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 즉 아부다비의 최고지도자에서 따온 것으로 두바이의 자금난에 아부다비가 손을 내밀어 주었음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난한 어촌마을을 이렇게 탈바꿈시킨 데에는 지도자의 안목과 노력이 있었음을 경시할 수는 없다. 1월에는 두바이 국제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에미리트 국민들은 1~10위까지 순위를 별도로 매겨서 1억 원(?)에 상당하는 상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잘 먹는데 덥다고 움직이지 않아 갈수록 비만해져가는 국민들을 어떻게든 뛰게 하려는 시도이다. 지도자는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갈수록 석유의 비중이 줄어드는 미래를 보고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주시해야하는 것과 칼과 코란을 든 양 손을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잘 조율해야하는 것이 이슬람 지도자들의 고민일 것이다. 


  두바이에서 연수를 하면서 이런 이슬람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는 환경도 만들어온 문화도 다른, 특히 유럽 및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훨씬 더 복잡한 역사가 층층이 퇴적되어 있는 이곳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이슬람을 이스마엘의 후손이라 여긴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이지만 둘째 아들인 이삭에게 밀려 역사의 바깥으로 취급된 것이다. 이런 이슬람에게 스스로를 이삭의 후손이라 생각하는 로마교회는 칼과 창으로 접근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것이 십자군전쟁이다. 어쩌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대립은 이 갈등의 연장선일지 모르겠다. 이런 로마교회의 실패는 뼈아픈 역사이고 회개해야할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먼 극동의 우리에게는 기회가 된다. 바로 지난 십자군의 전례가 아닌, 자비와 용서를 앞세운 진짜 실력을 가지고 섬길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법무법인 신지 파트너 변호사 황경태
kt.hwang32@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2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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