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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의 ‘앵그르’

2019년 6월호(11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9. 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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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을 다녀와서]

 

오르세 미술관의 ‘앵그르’

이십 여 년이 지났다. 유월 말 여름이었다. 파리의 날씨는 의외로 추웠고 하루에도 개었다, 흐렸다, 비를 뿌렸다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어느 새 머리에 비닐캡을 쓰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서있는 파리 여인들을 보면서 익숙한 몸짓이라 생각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 ‘포르트 마이오’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내도를 꺼내 역 이름을 대조하면서 초행길이 긴장되었지만, 파리 사람들의 아침 표정 엿보기와 하얀 레이스 숄 같은 예술을 두르고 있는 파리를 느끼기에도 게을리하고 싶지 않았다. ‘솔페리노’역을 나와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오르세 역은 1900년 7월 14일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건설되었다. 개설된 지 40여 년 후, 기차역은 새로 장거리 노선이 개발되어 철거 논란이 일게 되었다.
화가 ‘에두아르 드타유’가 오르세 역의 설계자 ‘빅토르 랄루’와 기차역을 둘러보고 “오르세역은 눈부신 역작으로 마치 미술학교처럼 보이는데 미술학교는 오히려 역처럼 보이니 역과 미술학교 건물을 서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랄루에게 말한 적이 있다.
결국 빅토르 랄루가 설계한 기차역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구조 변경하여 ‘오르세 미술관’은 1986년 개관하였다. 이 미술관의 전시 프로그램은 회화, 데생, 조각, 장식 예술, 건축, 사진, 영화 등 예술의 전 분야가 해당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고대 미술품부터 19세기 중엽의 예술품을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 인상주의 작품이 있는 튈르리 궁전의 ‘죄드폼 미술관’, 20세기 예술품이 소장된 ‘퐁피두 센터의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많은 작품들을 물려받아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오르세 미술관의 개관으로 루브르에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작품이 늘었고, 죄드폼 미술관에는 당대 작가들의 특별 전시공간이 확보되고, 퐁피두 센터에는 더 많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다. 이 당시 미술관들의 소장품은 신과 영웅을 주제로 한 역사화인 고전주의 작품 위주로 구입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쿠르베, 밀레, 마네, 고갱, 뭉크, 쇠라, 클림트의 작품들은 제외되었다. 그러나 오르세 미술관은 화가이며 미술품 수집가인 에티엔 모로 넬라통(1859~1927)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미술품 수집가인 알프레드 쇼샤르(1821~1909)가 바르비종파(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의 집단)의 대표작을 모은 소장품과 밀레의 ‘만종’, 오베르에서 고흐의 주치의였으며 화가인 ‘가셰’ 박사의 자녀들이 소장한 반고흐와 세잔의 주요 작품들을 기증함으로 더욱 더 풍요로워졌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시선을 끄는 작품은 장 어거스트 앵그르(1780~1867)의 ‘샘’! 꿈꾸는 듯한 눈과 붓 자국도 보이지 않는 매끈한, 거의 인체 크기의 누드화 앞으로 내가 끌려가고 있었다. 좀 앳된 얼굴의 누드 여인이 물동이를 거꾸로 들고 물을 쏟고 서 있었다.그림 속 아름다운 여인은 신비로운 정적에 잠겨 있는 듯했다. ‘담은 물을 시름없이 도로 쏟는 이유가 무얼까?’생각했다.
 

이 작품은 앵그르가 26~44세까지 로마에 유학하던 시기인 1820년(40세) 피렌체에서 그리기 시작하

여 36년이 지난 1856년(77세) 파리에서 고령의 몸으로 폴 발즈와 알렉산드르 데코프 두 친구 화가의 손을 빌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샘’은 앵그르의‘ 물에서 태어난 비너스’의 변형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던 앵그르는 툴루즈의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7세에 다비드의 아틀리에 들어가 ‘회화는 양파 껍질같이 매끈해야 된다’고 배운다. 21세 때 로마 대상을 타고 나폴레옹으로부터 초상화 주문을 받는다. 로마 대상의 특전으로 로마 유학을 떠난 그는 18년 동안 로마에서 예술의 기초를 닦고 원숙한 후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향한다.
 

앵그르는 여성 누드의 대가로 목욕하는 여인들을 즐겨 그렸다. 마치 도자기 같은 살결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했다. 스승인 자크 루이 다비드 사후, 형식화로 흐르는 고전파를 혁신하고 새 영역의 신고전주의자가 되었다. 앵그르 문하에는 그림을 배우는 제자들이 많았는데 부그로(1825~1905)는 자신의 그림인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의 자태에 앵그르의 ‘샘’의 누드 여인 포즈를 가져왔다. 앵그르의 ‘샘’은 후에 피카소와 같은 현대 화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안과 전문의 한영순
youngeyedoc@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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