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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2019년 6월호(11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9. 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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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자매

 

아침부터 자매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엄마, 언니가 나한테 나가라고 소리치고, 나쁘게 굴었어.”
“쟤가 먼저 나를 발로 찼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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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반복되는 아침 풍경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싸우고 울기를 반복하는 한 살 터울의 자매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마주 보며 소리 내 웃는 아이들. 붙어 있으면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언니가 씻고 있는 잠시 잠깐도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동생은 습기로 가득한 뿌연 욕실 안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논다. 욕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자매의 명랑한 웃음소리에 부부는 눈을 마주치며 어이없다는 몸짓을 지어 보인다. 
언니와 동생 사이를 이르는 말, ‘자매’ 
자매란 마치 인연을 잇는 단단한 세 겹줄로 연결된 존재인 듯 그렇게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느끼며 자라난다. 샤워를 마친 언니의 뒤를 쫓아 욕실 밖으로 나온 동생은 나란히 방으로 들어가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런 평화도 얼마 못 갈 걸 알면서도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내 동생을 떠올린다. 
두 살 터울의 우리 자매는 친구처럼 자랐다. 철없던 시절, 동생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졌던 때가 있다. 그렇지만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으면서 동생은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웃음 많고, 착한 내 동생을 꼽는다. 언니를 무한 신뢰하고 의지하는 동생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동생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 먼저 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2층 교실 창밖으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두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체크무늬 빨간색 재킷을 정갈하게 차려 입은 동생은 다소 경직되어 보였지만 언니를 발견하고는 해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며 긴장을 풀었다. 귀여운 모습의 곱슬머리 동생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자라듯 동생도 자라 우리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 각자의 삶을 사는 듯 보였지만 늘 함께였고, 모든 것을 공유했다. 동생이 아플 때는 내 마음도 아팠고, 동생의 고민과 걱정거리는 나의 문제이기도 했다. 서로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각별한 자매였다. 내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동생을 보고, 매일 그녀를 그리워한다. 보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한지 동생을 생각하면 금세 눈앞이 흐려지곤 한다.  
자매가 있는 풍경은 한없이 정겹고 편안하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조심할 필요가 없고, 과장된 웃음과 몸짓으로 자신을 꾸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매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가정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에 숨겨놓은 슬픔도 언제든 꺼내 보이며 후련하게 소리 내 울 수 있다. 자매는 아무리 큰맘 먹고 산 새 옷이라도 어울리지 않으면 가차 없이 지적해 줄 수 있는 사이이고, 어떤 문제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에 긴말이 필요하지 않다. 자매는 숙명처럼 늘 함께 있으며 서로를 응원하고, 따끔한 충고도 가감 없이 할 수 있다. 부담 없이 노래방에 함께 갈 수 있고, 음 이탈의 굴욕도 개그 소재로 승화시켜 박장대소할 수 있는 사이이다. 자매가 있는 풍경만큼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장면이 또 있을까? 정작 인간은 낄 틈 없는 건조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 속에 이만큼 자연스럽고 진실한 관계가 또 있을까? 
나는 동생이 그리울 때면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한다. 언니가 예전처럼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 동생을 향한 진실한 마음을 기도에 담아본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그렇기에 마음으로 서로의 소중함과 사랑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한편 나이를 먹으며 함께 늙어갈 사려 깊고 성숙한 자매의 모습을 그려 본다. 우리 자매가 만들어갈 풍경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늘 그리운 동생, 함께할 미래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동생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권은경 / 캐나다에서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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