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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갇힌 자는 누구인가? 영화, <The Legend of 1900>를 보고

2019년 8월호(11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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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진정 갇힌 자는 누구인가? 
영화, <The Legend of 1900>를 보고

 

‘그래... 나에게도 저런 면이 있지’
이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끝까지 배를 떠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중간 중간 감독이 심어놓은 유머들과 흥미로운 대결 장면이 없었다면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한 영화로 끝났을지도 모르고요. 그럼에도 자신의 한계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주인공의 이 답답해 보이는 망설임에 조금씩은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래, 나에게도 저런 면이 있지’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만든 한계를 벗어나 과감하게 도전하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분명 헛다리를 짚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배를 떠나느냐, 배에 남느냐’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육지에 있는 어떤 사람들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배에서 태어나 평생을 ‘버니지아 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88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를 연주하며 살았지만, 그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도 상상의 나래를 뻗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육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한눈에 반한 여인을 위해 즉석에서 곡을 만들고, 재즈의 창시자를 보기 좋게 눌러버린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피아노 연주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었죠. 그런 주인공에 비해 육지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규율과 틀에 매여 살아가는 존재들일 뿐이었습니다. 

‘그 망할 놈의 규칙들!’
사람들은 외부의 규칙, 그리고 저마다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규칙 속에서 살아갈 뿐, 진정한 자유 속에 자신만의 삶을 창조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주인공은 배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말과 표정, 행동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용감하게 미지의 세계를 향해 뛰어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였지만, 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규칙(돈과 명예 등)에 매여 아우성치는, 진정한 자유와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자유로운 음악인 재즈의 대가였던 흑인 피아니스트조차도 백인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실력으로 이겨낸 대단한 존재였지만, 여전히 내면에 남아 있는 열등의식을 돈과 과도한 승부욕으로 해결하려 했을 뿐이죠.
 
‘그것은 신만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배를 떠나 육지로 나가기로 작정했지만 마지막 계단에서 그가 느꼈던 그 좌절감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자유자로 자신만의 창조적인 삶을 살아갔던, 그리고 육지에서도 그런 삶을 살기 원했던 주인공에게 광활한 육지와 그 속에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무수한 길들은 신(神)만이 감당할 수 있는 엄청난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아서 다시 배에 오르는 주인공의 답답한 모습 속에서도 우리가, 그리고 주인공 주변의 사람들이 마술처럼 빨려들어 주인공을 동경하고 주목했던 것은 그의 엄청난 피아노 실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들, 자유와 넘쳐나는 창조력, 진실한 삶을 추구했던 그의 열정과 정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곧 폭파될 배에 주인공을 남겨두고 나오는 친구의 눈물은 단지 친구를 잃게 된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 또다시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속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나아가야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슬픔, 우리 모두의 슬픔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무리일까요?

 

경기도 군포시 고종훈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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