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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보단 스타트업을 택한 이유

2019년 8월호(11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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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도전기]

대기업 보단 스타트업을 택한 이유 

 

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개발자 박진원이라고 합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스타트업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남들처럼 대기업에 지원하여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한 대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사원증, 업계 평균보다 높은 연봉, 그리고 세계를 선도하는 회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부모님의 안도감은 저에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에 특출나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대기업에서 제 역량을 몽땅 발휘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정적이지만 시스템은 이미 체계화 되어 있었고, 세계에 임팩트를 주는 회사이지만, 제가 하는 역할은 작은 볼트나 너트처럼 미미하다고 느껴, 별 대책없이 곧 회사를 나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학생 때 연구조교를 하며 경험했던 프로그램 개발업무가 기억에 좋게 남아있어, 이번엔 구직사이트에 개발업무로 이력서를 올려놨습니다. 며칠 뒤, 저의 첫 스타트업 직장이 되었던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박진원님, 이력서를 보니 개발직 구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 회사에서 앱개발 해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평소같으면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한 후 열심히 배우려했겠지만, 이미 직장을 한 번 나온 터라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저는 앱개발 경험이 아직 없어서 못할 것 같습니다.”
“진원씨, 그러면 한 달 정도 회사에서 앱개발 공부만 해보고, 그래도 안될 것 같으면 그 때 가서 그만둬도 괜찮아요. 어때요?”
두려움도 컸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도 크고, 빠르게 일을 흡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대표님의 제안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스타트업에서의 개발자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스타트업 속에서 누리는 자유와 책임, 두려움 그리고...
그 스타트업은 ‘고양이용 자동화장실’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직원 6명, 평균나이 20대 후반, 사내에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으며, 사실 회사보단 동아리에 더 가까운 사내분위기가 저에게는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나에게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뭐든 해볼 수 있겠다는 느낌 뒤에는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특성상 적은 자원으로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업무를 한 명이 도맡아서 추진해야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연스레 앱 개발은 저 혼자서 진행하게 되었고, 선배 사수가 없으니 시행착오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덕분에(?)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나가는데 있어서는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 한 달 동안은 유데미(Udemy), 플루랄사이트(Pluralsight) 등 해외 기술관련 강의 사이트에서 온라인 강좌를 듣고, 스택오버플로우(Stack Overflow), 미디엄(Medium) 등과 같은 전문기술 커뮤니티 및 온라인 자료들을 뒤져가며 공부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무식하게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걸까?”라는 질문과 함께 하루에도 수십 번 깊은 절망의 골짜기를 헤메다가도, “에잇! 그냥 해보자, 안되면 수정하지 뭐”라는 오기를 발동하며 힘든 순간들을 하루하루 넘겼습니다. 무수한 디버깅(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서 수정하는 것), 리팩토링(프로그램 코드의 구조를 변경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밤을 지새운 결과, 드디어 초기 버전의 앱을 출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Specialist? Generalist with Specialty!
제가 스타트업에 합류하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 중 하나는 ‘스타트업은 전문가들(Specialist)이 모여서 전투하는 어벤져스 그룹’이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어벤져스처럼 각자 맡은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구성원은 또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첫 스타트업에서 고객 응대, A/S지원, 고객방문, 해외전시 및 발표, 번역 등 저의 주업무였던 앱 개발 외에도 무척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700대 가량의 제품을 전국의 고객에게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출시 후 제품의 하드웨어에는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A/S를 요청하는 전화와 이메일이 빗발쳤고, 제품의 특성상 부피와 무게를 고려할 때 고객의 반품을 받기에는 비용부담이 너무 컸고, A/S를 대행해줄 사설업체를 구할 재정적 여력조차 허락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표님과 펌웨어 개발자, 그리고 하드웨어에 문외한이였던 저를 포함한 세 명이 대한민국을 삼등분하여 고객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세 달이 넘도록 전국의 모텔을 전전하면서 10,000km 이상 운전하며 200여 가구 이상을 방문하였습니다. 체력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지만, 고객들의 불편과 요구사항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일정이 촉박해서 끼니도 제때 챙겨먹지 못하고 A/S를 다녔는데, 한 고객께서 손수 밥도 차려주시고 격려의 말씀도 해 주셔서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초기 제품이라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점과, A/S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저희 사정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한 집 한 집을 직접 방문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희 노력을 아주 좋게 봐주셨던 고객분과의 대화는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스타트업, 과연 나에게 맞을까?
저는 현재 첫 스타트업에서 나와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여 서버 개발자로 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의료산업의 꽃이 될 헬스케어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기회가 찾아와 바로 이직을 결정하였습니다. 첫 스타트업에서의 다양한 도전과 경험이 또 다른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에 용기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은 영화 <소셜네트워크>처럼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일궈낸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개라지(garage)로부터의 성공 이미지에서부터, 늘상 야근만하며 회사의 노예처럼 시키는 일만 하는 이미지까지, 각자가 스타트업에 대해 기대하는 이미지는 다양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각자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가 결국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한만큼 금전적인 보상을 받고 싶으신 분들이나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원하시는 분은 대체적으로 만족을 못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도전과 경험, 성장을 원하거나 추후 본인의 사업을 계획하는 분들은 좀더 만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스타트업 경력은 아직 짧지만 제 경험이 조금이라도 공유된다면 청년들이 막연한 두려움과 주변의 부정적인 편견 속에서도 스타트업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속에서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도전하는 삶을 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휴이노 서버개발자 박진원
jinwonp@huinno.co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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