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빛 공해’의 주범을 찾아서

2019년 9월호(11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19. 21:37

본문

[공간이야기 1]

‘빛 공해’의 주범을 찾아서

 

인간은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공간을 어떤 환경으로 만드는가는 우리의 책임이며 동시에 권리입니다. 앞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한 사람으로서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빛, 공기, 온도, 색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빛 공해(lighting pollution)’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빛 공해는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한 과도한 빛 또는 비추고자 하는 조명영역 밖으로 누출되는 빛이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거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가로등, 형광등, 보안등, 광고 조명, 장식 조명 등의 인공 불빛들을 지나치게, 혹은 부적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공해를 말하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제로 빛 공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민원이 2001년부터 2017년까지 2만 9661건에 이를 정도라 하니,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 빛 공해의 심각성
밤하늘의 별들이 사라짐
‘빛 공해(lighting pollution)’라는 단어가 천문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밤중까지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은 우리의 시야에서 별들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유럽 인구의 60%, 북미(北美) 인구의 80%가 빛 공해 때문에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으며, 세계 인구 3분의 1이 맨눈으로는 밤에 은하수를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악의 빛 공해 지역 중의 하나로서, 빛 공해 지역이 전체 국토의 89.4%를 차지해 이탈리아(90.4%)에 이어 주요 20국(G20) 중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이제는 호젓한 시골에서조차도 거리의 가로등 불로 또렷한 별빛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이젠 더 이상 우리의 아이들은 한여름 밤을 수놓았던 이글거리는 별들의 합창을 듣고, 별똥별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 거죠.

생태계 파괴
빛 공해는 우리의 상상력과 꿈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생태계의 많은 동물들의 목숨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해변에서만 매년 수천 마리의 새끼 바다거북이 바닷가의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길을 잃어 탈수증으로 죽음을 맞고 있으며, 수많은 야행성 곤충들이 가로등에 달려들어 열에 타죽고 그 일부는 멸종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철새들도 고층건물의 스카이 빔에 길을 잃고 건물과 자동차에 부딪쳐 죽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도로의 가로등으로 곡식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매미들은 한밤까지 고단하게 울어대야 합니다. 

 

인간의 건강을 위협
매미 때문에 잠을 설치는 정도가 아니라, 빛 공해는 인간의 생체리듬을 깨뜨려 비만, 당뇨, 그리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빛 공해에 노출된 사람들은 유방암 발생률이 최대 24.4%나 높아지는 등 인간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현대인들이 분신처럼 사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의 화면에서 나오는‘청색광(blue light)’은 건강한 삶에 꼭 필요한 쉼을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 빛 공해의 원인과 해결책
너무나 짧은 인공조명의 역사
인류가 백열등으로 대표되는 인공조명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1879년을 그 시점으로 볼 때, 140여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질 뿐입니다. 우리나라(1887년)에 중국과 일본보다 빨리 전구가 설치되었다고는 하나, 일본 강점기와 6.25 동란을 겪은 후 경제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운데 인공조명이 주는 여러 가지 영향들을 차분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인공조명을 들여오다 보니, 과학기술의 개발이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는 서양문화의 특징이자 약점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밝기가 약한 백열등의 약점을 해결하고자 형광등을 개발했으나, 수은 등의 유해 물질들로 문제가 생기자, LED 등으로 해결하는 식인 것이죠. 그러기에 빛이 공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예측하고 기술을 개발하기엔 역부족인 것입니다.

무조건 크고 밝은 조명을 선호
여기에 어둡고 컴컴한 이전의 어두운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듯이 무조건 밝고 큰 조명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습성도 빛 공해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간판을 걸어도 다른 가게보다 더 크고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투광기에 LED까지 간판 주위에 설치하고 휘황찬란한 조명을 사용하다 보니, 도시의 빛 공해는 더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심지어 휴식이 필요한 가정에서조차 색온도가 높은(색온도는 K로 표시되며 높을수록 푸른색을 띰) 주광색의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것 또한 안팎으로 조명공해를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배려와 일찍 잠드는 문화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국토 면적의 16.61%에 불과한 도시지역에 우리나라 인구의 91.79%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빽빽하게 몰려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문화가 절실할 수 있습니다. 빛 공해 역시 조명을 사용함에 있어 내 집과 내 가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행동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대부분이 살고 있는 도시는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을 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던 과거와 달리 인공조명을 밝히고 밤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쉼의 시간으로서 밤(night)은 사라지고, 활동의 모양만 달랐지 또 하나의 낮(day)이 되어 버린 밤만 남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 공해의 주범은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인공조명들이 아니라, 늦은 밤까지도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시간을 어떻게든 늘여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인간과 자연의 영역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빛 공해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와 실천적 방안들이 만들어지고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은 밤을 잊고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부정적인 밤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디자이너 고종훈
010-6378-1349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9>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