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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니 나도 따라하는 일본문화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1. 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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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체험하는 일본 문화 1]

남이 하니 나도 따라하는 일본문화

일본 하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역사문제로는 먼 나라이지요. 더구나 최근엔 역사문제가 정치문제, 경제문제로 확산되어 더욱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시점에 일본에 있는 저는 이것을 기회라 생각하고 한국과 일본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 혹은 그들의 문화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여러분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아베 정권이 보수 지지층의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꺼내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사건이 있습니다. ‘다테마에’(겉으로 말하는 이유)로는 이번 조치가 안전보장상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혼네’(본심)로는 징용공 문제에 대한 대항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한국시민들의 반응은 불매운동, 일본 여행 가지 않기 등으로 이어져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다면, 일본 시민들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요? 정치에 대한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인들의 시각과 의식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분노하는 한국인에 비해 조용한 일본인
연이은 뉴스에 저 역시 한국으로부터 많은 안부전화를 받았습니다. “너 거기서 왕따 당하는 것 아니야?” “너 잘리는 것은 아니니?”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런 한국 반응과는 다르게 일본에서의 제 주변 상황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한 번쯤은 저에게 한국이 왜 저렇게 난리인지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군요. 답답한 제가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혹은“ 역사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니?”라는 질문을 하며 역사 문제에 대해 모르는 친구들에겐 오히려 제가 그들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일본에 있는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가 본 신오쿠보(한인타운)에서도 지인들 말로는 여전히 시장은 활발하며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매출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K-POP을 좋아하는 20대의 젊은 고객층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하였지요. 그럼, 그들은 왜 조용하며 역사와 정치에 무심할까요?

일본 젊은이들의 무관심과 남을 따라하는 일본문화
그 이유는 그들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 진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20대 젊은 층의 투표율은 28.8% 정도이며 특히 선거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은 18%에 그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 왜 투표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청년들 대답은 ‘남들이 안 하니까 나도 안 한다’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투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라니…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남들이 하면 나도 한다. 즉,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주변의 동료들 또한 이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정치가 시끄러워 역사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정치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혹시 투표를 모두가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혹은 정부에서 명령이 내려오는 등 전체가 다하는 분위기로 움직이면 자기들도 할 것이라고 합니다. 혼네(본심)는 그것이 하기 싫다 해도 전체가 움직이면 자신도 움직여야 하니까요. 남들이 하면 나도 한다, 바로 ‘따라 하는 일본문화’인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건드려야 움직이는 사회라면 일본은 강력한 힘이나 명령에 의해 무리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큰 쪽으로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이렇듯 조용하지만 무서운 나라입니다. 마치 과거의 역사처럼 전쟁도 상황에 따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다가도 분위기가 변하면 급격하게 반응해 버리는 것이지요. 
이는 일본이 과거부터 계층 사회였기에 자기 발언을 할 수 없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도 물론 계층 사회였지만 조선시대에 상소·고발의 제도인 신문고로 그나마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2세기부터 천황이 권력을 되찾은 후 군사 통치를 끝낸 19세기 후반까지 거의 8세기 동안 계층 사회였으며 농민, 상인 등 위에 사무라이가 있었고 그 위에 ‘다이묘’라 불리는 전국 단위의 영주 집단과 또 그 위에 당시 일본을 통치했던 무사정권의 수장 ‘쇼군’이 있었던 것이지요. 철저한 계층구조로, 태어날 때 가진 신분은 죽을 때까지 바뀔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쇼군과 다이묘 아래의 사무라이(힘센 자)는 전국시대(약1467~1603년)에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농부, 기술자, 상인들을 지배하였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그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평민들은 카타나(일본식 장검)를 사용해 처형하기도 했으니까요. 이처럼 칼의 문화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집단에 묻혀 사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함은 물론, 힘센 지도자 뒤에 졸졸 따르는 경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움직이면 나도 따라 하는 사회 문화에 익숙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위에 생성된 사회적 분위기가 특히 일본 젊은 세대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말문을 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정치, 역사 관련 대화를 나누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봐야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대나 비판도 가능할 텐데 정치에 대해 쉬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나중에 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더라도 장기적 외교 관점에서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주체의식을 갖고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은 너무 무리일까요?

 

타이요홀딩스그룹 김지혜
kim.jihye@taiyo-hd.co.jp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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