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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지구상에 30만마리만 남았습니다. 개는 몇 마리인지 아시나요?

2020년 1월호(12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 2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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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산업 다시 생각합시다!]

 

늑대가 지구상에 30만마리만 남았습니다.
개는 몇 마리인지 아시나요?

 

5억 마리의 개가 지구상에 우글거립니다! 80억 전인구로 대비하면 약 15명에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 셈이고, 1,200만 마리의 개가 있는 남한에서는 4명당 1마리씩 키우는 셈이니 정말 과도한 것 아닌가요? 어떻게 해서 우리가 보신탕을 먹는 민족에서, 갑자기 애견민족으로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유럽화가 지나칠 정도로 맹목화, 따라하기, 개인주의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리고 특히 애견산업은 갈수록 한국에서 번창할 것이 예상됩니다. 그에 비하면 30만 마리의 늑대는 그 수가 결코 많지 않으며, 난개발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이들의 생존이 위협받으면서 더 줄어들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특정 지역(미국의 옐로스톤)이나 기간을 정하여 늑대를 애써 키워서 방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할지라도,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늑대가 멸절할 위기를 뒤집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엄청나게 늘어나는 개와 비약적으로 줄어드는 늑대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질문을 이렇게 시작해 봅시다. 개를 키우지 않는 것이 범죄행위인가? 명백히 아닙니다! 그러면 왜 키우나요? 돌아오는 단순 명백한 대답은 ‘키우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개 사료값과 병원비라는 돈이 들어갈 뿐 아니라, 인간이 지극 정성 개집사가 되어서 매일 규칙적으로 산책을 시켜야 하고, 그 과정에 싸는 똥은(오줌은 슬쩍?) 즉각 처리할 수 있도록 호주머니에 검정비닐을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를 키우는 가장 큰 이유는 개와 주고받는 정서적 교감이라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나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인간끼리와의 그것과는 다르게, 거의 일방적으로 나에게 순종하는 차원의 것이니 진정한 교감이 아니라 지배-복종의 교감일 뿐입니다. 또 병들고 늙어서 키우기 어렵거나 여행을 불편하게 하는 것 때문에 귀차니즘으로 버려지는 엄청난 숫자의 개들은 그동안의 교감이 얼마나 허구였나를 보여줄 뿐입니다. 인간 아기는 키우기 힘들고 정서적 교감도 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깊이 있고, 철저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만 키운다면 역사를 바꿀 인물이 될 수도 있을지 누가 압니까? 물론 부모, 자식 간의 활달하고 충만한 교감과 관계는 제대로 성취하기 어렵지만, 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충족감을 준다는 것은 제대로 된 가정이라면 명백하게 알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둘째 질문을 해 봅시다. 활성화되는 개 산업과 정반대로 줄어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인간 아기를 낳지도 키우지도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OECD국가 중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반면에 자살율은 가장 높은) 한국 속에서 번창하는 개 산업은 이 나라와 유럽문화(명)이 결정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무서운 잣대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물론 “내가 좋아서 내가 키우는데 왜 딴말이 많냐?”며 매우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결국 우리 전체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일 뿐임이 자명합니다. 더더구나 4대 강국(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에 완전히 포위된, 지정학적으로 항구적 불리한 위치를 가진 가운데 외세에 지배되어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수많은 지난 역사를 반복할 위험이 상존함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병자호란(1636) 때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인만 50만, 학도병과 징용과 위안부로 일본에 끌려간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일이 어디 먼 나라와 먼 시대의 일인가요? 


셋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도대체 애견산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대답은 유럽의 귀족문화의 서민화 과정에서라는 겁니다. 우리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가 새로운 각도로 비평하고자 하는 유럽문화(명)는 그리스 이후로 한 번도 단절됨이 없이 지속 되어 왔으며, 그 중에 현대유럽문화(명)는 르네상스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유럽의 세계 제패로 엄청난 단절을 겪은 나머지 세계와는 완전히 차별화됩니다. 그런데 그 유럽문화(명)는 본질적으로 귀족문화가 서민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점점 더 세어지는 개인의 인권을 주장하게 된 서민들은 방문했던 귀족집의 물질문명(화)을 늘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고, 이제는 자신이 그것을 못 누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고급진 비싼 제품들이었지만, 수요가 많이 생기니 단가가 떨어지며 서민화 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애견산업입니다. 이들 서민이 귀족의 노예처럼 살던 삶에서 벗어나면서 귀족 집에서 종자를 엄선하여 키우던 개들이 귀족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종처럼 순종하는 모습에 반한 것이, 사실상에 유럽의 애견산업과 그 문화의 기원인 겁니다. 그러기에 이 점에서는 동양의 전통이 훨씬 나을지 모릅니다. 동서양 모두 개를 늑대의 공격에 대비하고 운송용으로 키웠을 것이지만, 사람과 한 지붕에서 잠자리를 같이하는 어리석은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지저분한 환경에서도 버텨내는 짐승들에게 발병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침투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독감바이러스는 모두 돼지에게서 옮아왔다는 사실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더더구나 한국은 아파트가 60% 이상이니, 개는 인간과 같은 장소에서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앞으로 이것이 어떤 무서운 인체적 결과를 가져올지는‘일단 유익이 있으니, 좋게 보이니, 쓰고 보자’는 기조를 가진 악하고 분석적이고 무책임한 유럽문화(명)는 전혀 대답해 줄 수 없는 사안입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애견산업이 자연적일까, 인위적일까? 매우 인위적입니다. 즉 인간이 매우 인공적으로 만든 문화(명)일 뿐입니다. 인간이 저질러 놓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과연 인간이 질까요? 혹은 질 수 있는 구조를 유럽문화(명)는 가지고 있을까요? 철저히 부정적입니다. 사실 늑대의 가축화가 시작되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개가 집과 양을 지키거나 썰매를 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입장을 바꿔, 개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것이 더 자연스러울까요? 따뜻하지만 인공적인 아파트일까요? 아니면 생존에 힘들어도 자유를 호흡하는 자연일까요? 대답은 100% 후자입니다. 개를 다시 그들이 원래 살던 자연 속에 보내어 늑대처럼 살도록 하는 것이 개(늑대)의 권리, 즉 개(늑대)권(?)을 존중하는 길이 아닐까요? 대자연인 호주에 불필요하게 된 개를 풀어놓으니 야생화되어 늑대 비슷한 딩고가 되어서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인류가 영양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동안 육식으로 사용했던 모든 동물들의 권리/자유 헌장을 과감하게 선포하고 자연으로 되돌리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저는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개 키우기 이제 Stop! 대신 인간 아기 잘 낳고 제대로 양육하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슬로건을 바꾸어서 이렇게 해 보았습니다. ‘개는 늑대로 돌아가도록 해서 늑대가 키우고, 인간은 인간이 키우자’ 그래서 저는 힘겹게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아줌마들을 이렇게나마 격려하곤 합니다. “애국하시네요!”
참고로 이러는 저는 어떠냐고요? 형제, 자매 넷 중에 자랐으며, 세 아이까지 키워보았습니다. 어릴 때는 다소 이기적인 첫째인 형이 더 많이 동생들을 병아리 품듯이 했으면 하는 것이 막내인 저로서의 단 하나의 소원이었지요. 그리고 저에게서 난 아이들은, 하나는 자기에게만 너무 집중하니 왜곡될 것 같았고, 둘은 좋지만 다양성이 없을 것 같았으며, 셋은 자기들끼리 부모와 함께 매우 역동적 관계를 맺어갈 것을 기대해서 좋았습니다. 또 개는 키워보았느냐고요? 그럼요! 갓 키우기 시작하던 강아지가 죽어가자 안고 비를 뚫고 울면서 병원에 뛰어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또 족보 있는 순종 진돗개 새끼를 받아서 철저히 공간을 분리하여 키워보았지만, 아파트에 오면서 포기하고 마당 있는 집으로 장가보내고 말았지요.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편집부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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