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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서양의 책인가, 동양의 책인가?

2020년 1월호(12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2. 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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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29]

 

성경은 서양의 책인가, 동양의 책인가?

 

우리가 지금 계속해서 가고 있는 아시아와 특히 유럽문화(명)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은 엄청나게 멀고, 매우 복잡하며, 아주 험난합니다. 이런 것 자체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는 이런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시급하게 찾아왔으며, 이제 전지구인이 이런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문화(명)가 자초한 멸망의 구렁텅이로 전지구가 떨어질 것이 뻔한 시기가 바로 눈앞에 왔기 때문입니다. 동양인인 우리조차 유럽문화(명)를 대충 땜질해서 재사용하려 한다면, 결국 지구와 문화(명)를 멸망시킨 책임을 우리까지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에 있어 좋지만 너무나 왜소한 대안들(일회용 쓰지 않기, 플라스틱 적게 쓰기, 쓰레기 적게 버리기)부터 국제적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등의 문제에 대한 갈팡질팡하는 해결추구들(UN,WTO,NATO,NGOs)과 같은 지난날의 헛된 발길질을 계속할 뿐, 지구전체에 대한 총제적 위기를 해결할 길이 점점 더 없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이런 유럽문화(명)의 명백한 황혼기를 지나면서 동양인인 우리는 찍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유럽인들에게 휩쓸려서 빛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짙은 어둠의 시기를 같이 지나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한가요? 조금이라도 빛이 남아 있을 동안이라면 다음의 질문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과연 새로운 문화(명)의 여명이 동터오는 일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것에 대한 저의 대답은 정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과감하고, 심지어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매우 오만한 주장일 겁니다. 또 실제 전혀 새로운 문화(명)가 일구어져서 역사 속에서 인정받으려면 몇 세대가 지나야 하는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선구자의 입장이 될 것에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다음의 두 길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1) 단순히 동, 서양의 문화(명)를 종합하기
이 종합이라는 조처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 위험이 아주 큽니다. 좁은 범위에서 보자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원리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취합할 것인가는 현재로서는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동서양의 두 문화(명)는 완전히 상반되는 종교, 철학, 가치관, 원리, 방법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2) 동양인에게 익숙한 동양적인 것의 본질을 찾아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기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거의 무의식중에서라도 다음과 같이 시도할 수 있습니다. 총체적 차원에서 실패한 것이 확실하게 증명된 동양문화(명)를 새로운 문화(명)의 대안으로 제시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문화(명)의 근원에는 언제나 종교(적 태도)가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동양종교의 상대종교 중에 불교,도교는 세상을 떠나고 초월하게 만들려고 할 뿐입니다. 이 종교들은 한 개인의 구원(세상에서의 도피?)은 가능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물질세계와 정신(영)세계 전체를 하나로 합쳐 세상을 역사 속에서 경영하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지합니다. 또 철저히 세속적이어서 세상 속에 머물게 하는 상대종교인 유교는 오히려 초월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권위자(황제, 부모, 스승, 직위를 가진 자)에게 복종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문화(명)의 근본적 발전, 변화를 가져오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3천년의 중국 역사가 증거합니다. 또 5백년 동안 조선을 주도했던 신유학인 주자학이 한반도에 끼쳤던 이루 말할 수 없는 폐해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1) 동양인인 우리는 아무래도 낯선 유럽문화(명)을 멀리 떨어서 관찰하는 것이 유럽인들 자신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심부에 들어가서 그들이 자랑하는 최고과정을 통과해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유럽에서 십년씩 최고과정을 수려한 분들이 한국에 많이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물론 이분들이 과연 유럽문화(명)을 처절하게 배우면서 그것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처절하게 비판하면서 훈련했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사실에 기초하면서 머나먼 여정을 떠나봅시다. 
지난번에는 유럽문화(명)의 네 가지 치명적 약점을 말씀드리면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유럽문화(명)의 근원을 찾아나가는 네 단계를 말씀드렸습니다: 
1) 유럽문화(명)의 본질적 방향을 규정한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
2) 그리스철학의 근원으로서의 그리스 신화
3) 그리스 신화/문화(명)가 철저히 기초했던 고대 서아시아와 이집트의 신화/문화(명)
4) 세상의 배꼽의 문화(명)와 고대 서아시아와 이집트의 문화(명)의 공통기원 문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유럽문화(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발원한 인류가 그 기원에서 문화(명)를 만들어가면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찾아가는 여정인 겁니다. 우리는 21세기의 유럽문화(명)라는 현상에서 출발했지만 그 근원에서부터 차근차근히 흘러내려오는 과정을 찾아가는 순서를 따르려고 합니다. 즉 이번에는 고대 서아시아/이집트 신화, 문화(명)는 성경을 경전으로 가진 세상의 배꼽의 종교, 문화(명)와 어떤 공통기원을 가졌으며 그것에서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겁니다. 아주 복잡하게 꼬인 문제이므로 차근차근히 다루면서 쉬운 질문 하나부터 시작해 봅시다.  


성경은 동양의 책인가, 서양의 책인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그의 대표작품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1968), 어떤 동양인들은 환호했고, 어떤 이는 의아했으며, 심지어는 그것이 무엇이길래 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2) 환호한 이유는 이제 동양인도 서양인들의 인정을 받는 위치에 들어선 것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 의아했던 이유는 도대체 전원 서양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어떤 문학적 기준으로 이것을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중년 이후에 이 문제를 심사숙고해 본 저는 노벨상이 무엇이길래?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서양인들의 인정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지? 저는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20세기의 최고의 비극인 1, 2차대전이라는, 스스로를 살해하고 파괴한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것을 서양인들이 제대로 반성했을까? 의심이 듭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때(1965)라도 유럽인들이 그들 문화(명)의 오만함을 어느 정도 자각한 가운데 느끼는 엄청난 허무감, 죽음에의 초대와 유사한 주제를 문학으로 표현한 동양의 작가에 대해서 동감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과연 일본인만큼, 혹은 우리만큼이라도 일본적 사고와 정서를 깊이 알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생각의 기조를 크게 넓혀서, 21세기를 주도하는 유럽문화(명)의 본질 규명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투사할 것이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질문으로 시작해 봅시다. 서양인들을 통해서 전수되어 아시아까지 온 성경은 서양의 책인가, 동양의 책인가? 


1) 우선 성경에 쓰인, 언어라는 형식을 봅시다.
성경의 두 단위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다른 언어로 쓰였습니다. 구약성경 거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작은 일부는 BC539년 이후 세계를 제패한 페르샤 제국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쓰였으니, 명백하게 서양의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특이하게도 그 당시 세계를 제패한 로마가 쓰던 세계공용어이자 일상통용어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의 첫 네 책인 복음서들은 예수의 행적을 그리스인이 아닌 유대인 혹은 유대인의 절대적 영향하에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내용인 예수의 가르침, 행동은 철저하게 구약성경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비록 그리스어로 쓰여졌다고 할지라도, 철저히 히브리적인, 즉 세상의 배꼽의 종교의 기원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또 구약성경에 완전히 정통한 사도 바울이 그리스어로 쓴, 그 이후의 성경들은 히브리적 원리,내용을 어떻게 하면 그리스적 상황 속에서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쓰여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그리스어로 썼다고 할지라도 그 단어와 표현들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동양의 책인 히브리 성경에서 찾아본 후에, 이차적으로 그리스적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2) 개별성경들의 문학구조도 명백하게 동양적입니다.
(극)동양의 문학에서의 [기-승-전-결]구조는, 서양식의 서(론)-본(론)-결(론) 혹은 3, 4악장 구성과 유사합니다([A→B→C→D]). 그런데 매우 특이하게도 핵심을 중심에 놓고 그 주위에 덜 중요한 것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이른바, 교차적(chiastic [A→B→B’→A’]), 동심원적(concentric [a→b→X→b’→a’]) 구조는 고대 극동과 서양에는 없지만, 고대 서아시아에서는 아주 흔하게 사용된 표현양식입니다, 심지어는 고대인의 공통된 사고구조 자체가 자신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 같은 태도(거울인격체 mirror mentality)를 취한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서아시아의 문학작품에서는 이런 구조가 작은 단위인 한 절에서부터 중간의, 혹은 큰 단위까지 철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완전한 다름’absolute otherness 때문에, 성경이나 고대 서아시아의 문서를 연구하는, 유럽중심주의에 물든 유럽학자들이 정말 정직하다면 자신들이 과연 이 문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를 의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유럽인들의 성경의 해석에 결정적 한계를 보이는 해석역사를 볼 때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3) 내용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복음서 속에 담긴 예수의 가르침,행위는 모세의 글이나 구약의 왕, 예언자, 제사장의 행위와 상관없이는 결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 바울의 13권의 책 속에 담긴 구체적, 추상적 그리스 단어는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개별적,맥락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어는 복음을 침투시키기 위한 껍질에 불과한 것이며, 그 내용은 결코 그리스적인 개념이나 사상으로 타협하여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변하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빛을 잃은 가운데 ‘비관적’(스토아철학) 혹은 ‘도피적’(에피큐로스 철학)인 하위철학들이 주도하던 시대에 기독교가 유럽에 등장했던 겁니다. 만약에 기독교가 이런 무능한 철학들의 내용들을 타협해서 이용했다면, 전쟁, 법, 건축의 물질문명적 위용을 자랑하던 살벌한 로마제국이 예수의 사랑의  종교에 무릎 꿇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사용되었던 코이네 그리스어들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역할을 한 것과 같습니다. 즉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그 당시 전세계인들은 예수의 종교가 구약의 종교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켜 선포한 사랑, 공의의 메시지의 능력, 위력에 감화되었고, 죽음(순교)을 돌파하여 고대사회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겁니다.  
이렇게 동양의 세상의 배꼽의 책인 성경은 그리스 문화(명)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유럽인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표현방식과 내용을 담은 책이었던 겁니다.   


서양적 방식으로 세상의 배꼽의 책인 성경을 해석했던 500년의 해석역사
르네상스가 종교개혁에 미친 1차 영향 : 원문성경의 확보(‘약 주고’)
조금 일찍 시작한 이태리(남유럽)의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르네상스와 조금 늦게 그 영향을 받아서 시작한 종교개혁(북유럽)의 상관관계는 풀기 까다로운 또 다른 복잡한 주제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동양의, 세상의 배꼽의 책인 성경에 대한 해석과 이 두 운동은 어떤 관계를 이루었는지를 좁혀서 다루어 봅시다.   
르네상스의 문화(명)운동은 서양문화(명)의 본래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고, 그래서 고대의 문화적 작품이나 저작들의 원본이나 본질에 도달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했습니다. 이러는 중에 서양의 고대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천년 이상 지속된 기독교적 영향 때문에 성경의 원문으로 돌아가려는 경향도 같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물로 처음 나타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의 저작들, 무엇보다도 르네상스기의 천재였던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그리스어 성경](1516)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까지 신주단지처럼 받들었던, 로마교적 해석이 많은, 라틴어 번역인 불가타Vulgata에 대해서 독자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근원 자체로 접근하게 한 겁니다. 그러면 이 책을 누가 가장 반겼을까요? 바로 다음 해에 일어난 종교개혁(1517)을 일으킨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황이라는 거짓된 권위를 대체할,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잊혀졌던 정당한 권위였습니다. 또 루터 자신이 강력하게 체험했던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 바로 로마서라는 성경 자체였기 때문에, 성경의 원전 연구에 대한 열정이 개신교 내에 강력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위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라는 유명한 슬로건이 탄생한 겁니다. 르네상스가 종교개혁에 먼저 약부터 준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약 주고’).


르네상스가 종교개혁에 미친 2차 영향 : 성경의 유럽적, 그리스적 해석(‘병 주고’) 
그런데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확보하게 된, 번역이 아닌 원문(히브리어,그리스어)을 가지게 된 동양의, 세상의 배꼽의 책인 성경을 유럽인들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입니다. 여기서부터 결정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대로 동양의 책인 성경의 ‘완전한 다름’absolute otherness을 유럽인들인 종교개혁가들과 그 후손들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스-로마-고대유럽-중세유럽을 이은 근세유럽의 역사는 한번도 끊어지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졌는데, 이 중에 전혀 다른 종교,문화(명)적 기초를 가진 기독교가 침투해 들어가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국교화(325) 이후부터 종교개혁까지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리스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그리스로 돌아가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기준, 생각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때부터 발굴되던 엄청나게 많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작품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것을 다시 재생할 수 있을까에 전력투구한 역사가 근세유럽의 문화(명)의 역사인 셈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 유럽인들이 동양의, 세상의 배꼽의 책인 성경을 그리스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옛 교부의 부르짖음을 근세의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지요. 그리스를 신주단지처럼 받드는 유럽인들의 기준에서 보면, 동양의 책들은 모조리 쓰레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는 전혀 생소하며 완전히 다른 책인 성경을 앞에 놓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그리스적 기준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1)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아예 해석이 안된다고, 거부하고, 기독교를 떠나거나      
2) 성경은 살리되 유럽인들의 입맛대로 가위질하고 풀칠하여(소위 ‘문서설’) 하나의 편집된 작품(소위 ‘양식,편집비평’)으로 인정하는 어거지로 해석한 역사가 지난 5백여년의 역사입니다. 
즉 르네상스는 근세와 현대의 기독교에 병을 준 것과 같은 영향을 준 겁니다(‘병 주고’).  


중요한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시편은 거의 모든 절이 대구형식으로 되어서 바로 앞에서 말한 것을 반복하거나, 정반대를 말하거나, 종합하는 문학방법을 썼다는 겁니다. 이 아주 특이한 현상을 유럽에서는 겨우 18세기 후반에서야 발견하고, 이것을 ‘평행법’parallelismus membrorum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시를 반복없이 압축적으로 써야 한다는 근세 유럽의 문학관에 의하면, 이런 성경의 시들은 정말 형편없는 싸구려 작품에 불과하게 보였을 겁니다. 모든 시편의 모든 절에서부터 하나의 시 전체까지 이런 패턴이 발견되므로, 유럽인들은 엄청난 감정적 불쾌감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때까지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생각하던 전통이 없었더라면, 시편과 함께 기독교를 일찌감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적 문학기준을 엉뚱하게도 동양의 세상의 배꼽의 책인 성경에 잣대로 들이대었으니, 이거야말로 생사람(생문학!) 잡은 형국과 같았지요.


이런 가운데 결정적 변화가 유럽에서 일어난 것이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일어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운동3) 과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서아시아에서의 엄청난 양의 고고학적 발굴과 끈질긴 해독이었습니다. (1) 모든 문학을 판단하는 독재자의 지위에서 그리스-로마 위주의 문학관을 확실히 끌어내려버린 겁니다. (2) 성경을 동시대(1500BC-1세기AD)와 동일한 지역(서아시아)에서 발굴,해독된 문서들과 일차적으로 비교하는 가운데 성경의 역사성,표현양식이 이들과 아주 유사한 것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문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이지요. (3)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동일한 단어, 표현방식, 구조가 보인다고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내용에서는 고대 서아시아(우르, 바벨론, 멤피스, 우가릿, 마리)의 내용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그야말로 세상의 배꼽의 종교의 문헌으로서의 독자성이 완전히 드러나게 된 겁니다. 바로 이 서아시아와 세상의 배꼽의 종교, 문화(명)의 공통기원과 그 차이를 다음호에서는 세부적으로 다루겠습니다.


1) 동양인인 우리는 아무래도 낯 설은 유럽문화(명)를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 유럽인들 자신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심부에 들어가서 그들이 자랑하는 최고과정을 통과해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유럽에서 십년씩 최고과정을 수련한 분들이 한국에 많이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물론 이분들이 과연 유럽문화(명)를 처절하게 배우면서 그것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처절하게 비판하면서 훈련했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2) 그는 맹장염 수술 후 퇴원 한 달 만에 자살하고 맙니다. 감수성이 극도로 여린 그는 개인적으로 일본사회를 부글부글 들끓어 오르게 만들며 동아시아 전체를 뒤집어 놓았던 메이지-다이쇼-쇼와 시대에 오롯이 청춘기, 중년기를 보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문학적으로 매우 탁월한 청년이 아주 소극적 자세로 시대를 살면서 삶을 위축시킨 가운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일본에 1500여 년 동안깊은 근간을 형성하였던 일본적 가치관과 정서에 돌아가서 현대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1) 남성, 여성의 세계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2) 현실사회와 아무 관련이 없는 세계를 구축하여, (3) 삶의 엄청난 무료함을 달랠 길 없어, (4) 성욕을 절대적으로 추구해보지만, (5) 짙은 허무감을 피할 길 없어서, (6) 죽음에의 초대에 응하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또 개인적 삶으로 보인 겁니다. 적어도 까뮈,사르트르 같은 위선적 지식인과는 다르게, 그가 쓴 허무, 죽음의 문학답게 허무하게 죽어간 정직한 작가라는 점은 지적할만 합니다.
 3) 마르셀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 청마 유치환의 ‘깃발’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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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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