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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꼰셉시온’에서 ‘산티아고’로 쓰는 사랑의 편지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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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꼰셉시온’에서 ‘산티아고’로 쓰는 사랑의 편지

 

 이 글은 칠레에 20여 년 살면서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의 칠레 통신원이자 필진으로 성실하게 본인의 삶의 스토리 뿐 아니라, 칠레의 상황, 지휘자와 기타 음악 이야기에 멋진 삽화까지 그려 독자 여러분께 재미있게 전해 주시는 노익호님의 따님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어 부모님 몰래 보내온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어릴 적 자주 쓰던 편지를 결혼하고 나서 갑자기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기억나세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은 아빠의 음악 공부를 위해 독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엄마는 저와 동생을 돌보셨죠. 스티커를 엄청 좋아한 저는 ‘카슈타트’백화점에 놀러 가는 걸 참 좋아했어요. 갈 때마다 반짝거리는 스티커를 보며 사 달라 조르기도 많이 했는데, 엄마는 그럴 때마다 비싸다고 다음에 사 주신다고 그러셨죠. 크리스마스 날 제일 비싼 스티커 몇 장을 예쁘게 포장해서 저에게 선물로 주셨던, 너무나도 행복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아빠만 독일에 계시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 많이 힘드셨죠? 아빠 없이 혼자 과외 하러 다니며 우릴 키워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때 IMF만 아니었어도 계속 한국에 있었을 텐데, 얼마나 어려우셨으면 이민 갈 생각을 하셨을까요? 일 년 반 뒤, 한국을 떠나 칠레란 나라로 오게 되었는데 그땐 칠레가 이렇게 먼 줄 몰랐어요. 완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낯선 나라에 발을 디뎠을 때 엄마는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저는 저대로 칠레 학교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1년을 다시 공부하며 너무나도 힘들었죠. 엄마는 이런 저를 위로하며 과외 선생님까지 불러 주셨고, 그 덕분에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우고 공부도 잘 마칠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일 년 늦게 가는 게 별 것 아닌데, 그땐 왜 그리 심각했을까 싶어요. 


 머나먼 이민 생활이 힘들었는지, 결국 엄마는 아팠고, 아빠는 독일 음악 공부를 포기하고 칠레로 오게 되었죠. 부모님은 어려운 스페인어 배우랴, 일하랴, 적응하랴 정말 힘드셨을 텐데도, 저희를 우선해 챙겨주신 거 감사해요. 그리고 지금도 하고 계신 문방구를 어렵게 운영하며, 답답하지만 칠레 직원들과 소통하고자 엄청 참으셨지요. 얼마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셨을까요.


 제가 올해 1월 결혼하고 같은 칠레에 살면서도 못 만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네요. 32년 동안 부모님 곁에 살았는데, 결혼한 이후 500km나 떨어져서 자주 만나지를 못합니다. 칠레가 길긴 긴가 봐요. 게다가 요즘 코로나로 돌아다니지 못해서 그런지 부모님 생각이 자주 납니다. 우리 가족 첫 칠레여행 기억나세요? 남쪽에 있는 ‘이슬라 데 칠로에’, ‘뿌에르또 바라쓰’, ‘후르띠쟈르’ 등 참 멋진 곳으로 여행했었죠. 버스 타고 15시간을 달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었는데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길고도 긴 칠레여행을 드디어 할 수 있어서 참 기뻤었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일주일 휴가 내고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신 것 너무 좋아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그 당시 겨우 스페인어를 하셨을 텐데, 어떻게 그런 대단한 여행을 생각하셨는지, 저라면 엄두를 못 냈을 것 같아요.

 집에서 가끔 피아노를 칠 때 엄마,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어렸을 때 독일에서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집에 악기조차 없었을 거예요. 비록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음악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니까요. 저도 부모님처럼 이러한 귀한 선물을 앞으로 태어날 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부모가 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전 신랑과 지금 둘만 사는데도 이것저것 챙기느라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부모님께선 이민 와서 어떻게 그리 많은 것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제 남편 ‘로드리고’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나고, 제 모습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요. 사람들은 아빠 닮은 남편을 대부분 좋아하게 된다고 그러지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로드리고의 착하고 머리 좋은 부분이 아빠를 많이 닮은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요리할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빠, 엄마랑 같이 살 때는 거의 요리도 안 했었는데… 맛있게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오랜 경력이 필요한가 봐요. 엄마가 만든 한국 음식이 정말 그립답니다. 무엇보다 오래전 엄마가 아이들 가르치는 걸 보아온 저도 칠레에서 영어 선생님이 되었네요. 엄마가 최선을 다하며 가르치던 시절을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잘 해보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답니다.

 제 인생의 반 이상을 남미에서 보내면서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어릴 적엔 왜? 독일로 가야 했고, 왜? 다시 한국에서 칠레로 와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고, 불만이 많아 말도 듣지 않고 그랬었죠.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지금에 되돌아보니 참 철 없었던 시절이고 죄송하다는 말밖엔 드릴 게 없네요. 그런 모든 것들을 참아주시고 사랑으로 절 받아주신 거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2020년 9월 
사랑하는 딸 노다연 올림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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