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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니즘’을 소개합니다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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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화(명) 1]

‘러시아니즘’을 소개합니다

 

2021년의 한국은, 백신이 넉넉하게 마련되기 전에는 코로나19로, 여전히 암울합니다. 그런데 춥고 어두운 삶의 현실을 몇 천 년 동안 견디어온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입니다. 이런 러시아에서 인생의 결정적 전환을 경험한 분이 바로 서울음대(지휘전공)의 장윤성교수입니다. 이 분이 지휘자로 계신 군포프라임필은, 사전에 없는 단어인 러시아니즘Russianism이라는 새로운 단어까지 만들어가며 올해 내내 러시아 음악을 브런치 메뉴로 집중적으로 소개하여 현재 한국의 어두움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고자 다음의 음악회를 특별 기획하였습니다. 

 

2021 브런치 클래식에 많이 참여하심으로 러시아인의 중요한 특징이 되어버린 ‘러시아의 인내’를 배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프라임필의 이런 신참한 기획에 발맞추어, 저희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도 올해 말까지 러시아 문화, 특히 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이번호에는 간략하게 다섯 가지 ‘왜’why를 러시아를 향해 던짐으로 시작해 봅시다.

왜 러시아인은 잘 웃지 않고 늘 심각할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러시아인들과 함께 있을 때 함부로 웃으면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합니다.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 실없이 웃으면, 그것이 바로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러시아인들이 잘 웃지 않고 심각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들이 사는 (자연적,역사적) 환경이 지구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척박하고 극복하기에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A.메스로우는 인간이 행동하는 동기의 가장 낮은 단계를 ‘살아남기’, 생존 자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가장 높은 다섯 번째 단계인 ‘(영속적)가치를 추구하는 자아실현’까지 가는 것을 러시아와 같은 극단적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같은 북극권에 처했지만 노르웨이,스웨덴의 바이킹족이 중세에 지중해를 포함한 전 유럽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가 지구온난화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대륙 내부에 처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부동항(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을 찾으려고 피눈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북극권에 있는 캐나다는 오래 전에 아시아에서 건너간 인구 자체가 적었고, 지금도 적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유럽 중에서도 중세에 늦게 잠을 깬 러시아는 유럽인들조차 잘 가지 않으려는 유럽의 동쪽 끝에 있었을 뿐입니다. 그 후 천 년 동안 꾸준하게 연기가 확산되듯이 산발적으로 동양을 향하여 진출하는 가운데, 동(東)서(西)에서 뻗어오는 청나라와 마주하며 겨우 네르친스크 조약(1689)을 맺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또 러시아는 가도 가도 인간이 살 수 없는 영토(시베리아)를 사용할 유일한 방식이 유형지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역사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이런 러시아와 그 문화의 모든 것을, 국토의 70%가 산이며 나머지 30%의 평지에 인간이 모여 사는, 세계에서 산지를 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적 교만일 겁니다.   

왜 러시아 예술(문학,건축,음악)은 깊고 환상적이고 신비한가?
그렇다면 가도가도 인적이 드물고 거의 일년 내내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욕,소망,관심을 어떻게 표현해낼까요? 그 뿐 아니라, 이어서 다루겠지만, 러시아는 자연뿐 아니라 종교,사회,정치체제에서 변화될 소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닫힌 세계’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상상을 뻗어낼 곳은 딱 한 곳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예술의 세계입니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문학(톨스토이,고골,도스토예프스키)은 다른 나라에서는 도달하지 못했던 인간 심리의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또 러시아 건축의 독창성과 화려함은 한 번 보기만해도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입니다. 만약 후기 낭만주의 이후 시작한, 자유로우며 신비하고 웅장한 러시아 음악(차이코프스키,라흐마니노프,스트라빈스키)이 창조되지 않았더라면, 2차대전 이후까지 독일 주도의 서양음악은 바그너의 음악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러시아 예술이 깊고 환상적이며 신비한 이유는 매우 역설적으로 바로 위에서 말한 것 같은 ‘닫힌 자연,종교,역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진(眞)-선(善)-미(美)’의 삼위일체 중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을 ‘미’로 두는 러시아 문화의 매우 특이한 현상을 만들어낸 겁니다.1) 도스토예프스키는‘미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라는 말을 했을 정도인데, 이는 러시아 문화에 있어서 정확하게 적용되는 현상입니다.

왜 러시아는 자신을 서양이나 동양이라 하지 않고 ‘러시아’라고 말할까? 
러시아는 서양, 혹은 동양 어디에 속하느냐를 물어보면, ‘러시아는 러시아다’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늦게 시작한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서양의 도시와 궁궐을 흉내내어 상트-페테르부르그라는, 현실을 초월한 것같은 환상적 도시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또 앞으로 아무리 동양이 21세기 이후의 세계를 주도한다고 하더라고, 러시아는 결코 자신을 동양으로 여기지는 않고 ‘러시아라는 정체성’을 계속 가질 것입니다. 물론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박쥐와 같이 여기저기 모두 속하려는 ‘경계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양도 서양도 아닌, 제3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앞으로 세계역사에 매우 건설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서양문화(명)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21세기에, 과거 일본,중국이 주장했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서양문화(명)에 대한 반동으로 동양문화(명)을 주장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인 것과 같습니다. 동양문화(명)도 그 한계가 서양문화(명)의 그것만큼 명확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제3의, 아니 원래적 문화(명), 세상의 배꼽의 문화(명)에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만약 이런 일에 한국과 러시아가 하나 되어, 아주 오래되었으나 날마다 새로운 문화(명)에 돌아간다면, 이웃하는 민족과 국가로서 21세기 이후 우주시대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입니다. 

왜 러시아인들은 1인(1당)독재(차르-스탈린-푸틴)를 선호할까?
지금부터 러시아의 부정적 차원 두 가지를 다루어 봅시다. 첫째는 러시아인들은 왜 1인(1당)독재를 선호하는가 하는 겁니다. 극단적 정치환경을 뚫고 독재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한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런데 나라가 폭풍을 헤쳐나가야 하는 난파선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할까요? 민주주의를 이루려고 배 안에서 서로 싸우는 것, 혹은 일단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하여 자연적,역사적 역경을 뚫고나가는 것 중에서 무엇이 지혜로울까요?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몽골에 지배당한 200여년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을 두 번씩이나 막아낸 위대한 나라입니다. 즉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공을 막아내었을 뿐 아니라, 아예 두 모두를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러시아가 이런 매우 열악한 자연환경과 극도로 적대적인 역사를 맞서기 위해 1인(1당)독재에 익숙해진 것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심지어 깊은 내면에서 이런 정치적 성향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전쟁 기간 동안 강력한 독재로 나라를 이끌다가 끝나면 다시 농사꾼으로 돌아간 고대 로마의 집정관의 전통을 이들이 만들어내어 이후의 평화기를 영위하는 것은 앞으로 러시아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긴 합니다. 즉 그들에게는 자연스럽지만 외부인에게는 매우 희안한, 러시아만이 가지는 특이한 현상은, 아무리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등장하더라도 그들은 일관되게 1인(1당)독재를 선호한다는 겁니다 :


1) 교황과 황제가 수위권을 다투었던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교회를 확실하게 자신의 발아래 두었던 비잔틴 정치체제를 그대로 가졌던 러시아의 차르시스템.
2) 1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그 중에는 항상 1인독재(레닌-스탈린-후르시초프-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를 유지하였던 소련공산당.
3) 고르바초프를 거쳐서 대통령이 된 후에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푸틴정권.          
앞으로 그 어떤 외적 정치형태를 만들어내더라도, 내면적으로는 독재적 통치형태를 선호할 것까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더 중요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왜 러시아에 역사상 최악의 정치시스템인 공산주의가 가장 먼저 뿌리내렸으며 그 악한 영향력이 지금까지 세계를 덮을 정도일까? 
이것은 아주 대답하기 어렵고 고차원적 질문이 될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출발했지만, 영국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자본론을 썼고, 영국사회에서 가장 먼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정치시스템인 것이 이제는 자명해진 공산주의 시스템이 가장 먼저 뿌리를 깊숙이 내리게 했을 뿐 아니라, 동유럽 전체와 아시아 전반과 남미와 아프리카에 그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70여년 수출하여 그 고통스러운 영향이 21세기인 지금까지 지속되게 한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이 악의 거점이 왜 러시아여야 했을까요?
이 문제는 러시아의 역사와 특히 종교와 관련됩니다. 러시아의 자의식이 일어나는 초기에 전달된 기독교는 우리가 경험한 서방교회의 두 형태(로마교,개신교)가 아닌 동방교회, 정확하게는 동로마제국인 비잔틴(그리스)정교회입니다. 서유럽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430,476)에 서로마의 황제는 없어지고 서방교회만 남아서 고대후기와 중세 내내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유럽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인 왕,황제의 등장과 더불어 교황과 주도권을 놓고 경쟁한 역사를 이룬 겁니다. 이런 가운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개신교와 더불어 로마교조차도 교회와 사회에 대한 좋고 나쁜 역사를 쌓아갔습니다. 즉 교회가 타락하면 정치와 사회가 도전할 수도 있었고, 또 정반대로 세상이 부패할 경우에 종교가 나서 도전하여 사회를 새롭게 한 역사도 많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동방교회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제2의 로마’로 정하여 수도를 옮기면서, 황제가 교회회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교회는 황제 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콘스탄티노플의 멸망(1453) 이후 모스코바가 ‘제3의 로마’로 자처하게 되었으며 황제와 교회의 관계는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와 사회의 잘못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교회를 생각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치와 사회의 부패,타락을 정면에서 정죄,심판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제도,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동방교회는 자신이 가진 종교적 능력을 거의 대부분, 개인적 신비체험, 시각,촉각,후각을 총동원하는 환상적 예배의식,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신과의 합일을 경험할 것 같은 천상을 닮게 건축한 화려한 예배당 쪽으로 발산하게 되었습니다. 즉 자연,역사의 혹독한 외적 도전뿐 아니라, 정치,사회의 부패와의 싸움이라는 내적 도전을, 적극적으로 성취하는 종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만 겁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에서 수입한 절대왕정을 복제하려는 황제의 의욕을 따라, 서구보다는 한참이나 늦게 농노제가 실시되고, 농노제의 폐지(1861)조차 - 매우 형식적 결과만 남았음 - 너무나 늦게 일어났습니다. 사회 전반에 부패.타락, 그리고 폭력,범죄가 극성인 상황에서 교회를 시녀로 거느리며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는 것만 목적으로 삼은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은, 러일전쟁과 1차세계대전이라는 근본적인 세계변동을 제정신 차리지 못하고 맞이하면서 종말을 맞았습니다. 
이 속에서 다른 나라가 아닌 바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10월 혁명(1917)이 일어났으며, 20세기 내내 전 세계로 그것을 수출하여 온 세상과 한반도에는 지금까지도 고통,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왜 하필 러시아가 공산주의의 기원국이 되었는가에 대한 우리의 거대한 질문에 대해, 정치,사회,교회의 총체적 타락에 대해, 세계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의 심판의 차원이 분명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분은 교회가 자기 역할을 하지 않고 부패한 것을 가장 엄중하게 보며 교회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신의 자비가 주어지는 희년인 70여년 만에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와 러시아교회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이 교회가 자신의 역사적으로 취약한 근거인 비잔틴전통에서 스스로를 해방하여 근본 뿌리인 예수의 종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사회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빛이 되고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고, 국가로서의 러시아는 인간이 우주로 나가는 첫 우주시대에 세상의 빛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부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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