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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출발점은 책임 갑을(甲乙)관계 깨뜨리기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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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농부 이야기 5]

상생의 출발점은 책임 갑을(甲乙)관계 깨뜨리기

 

“사장님! 배지(버섯이 자라도록 원통형으로 만든 참나무 톱밥)를 이렇게 보내시면 어떻게 해요? 튼실하고 제대로 된 배지 뿐만 아니라 종균이 건강하게 잘 나오는 녀석들을 보내주셔야지 이런 배지를 보내면 농사를 어떻게 지어요?” 농부들의 항의성 질문에 “종균은 종균회사 책임이지 배지를 만들어내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공산품도 아닌데 하자는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지요!”라는 단 한마디 말로 책임을 회피해 버리는 배지 공장 사장님의 습관적인 반응들. 
배지가 들어오는 날 또는 배지가 들어와 1~2주 정도 지난 후에 저희 농가에서 늘상 일어나는 대화가 이런 대화랍니다. 단순히 한 농가만이 아닌 많은 농가들과 배지 공장 담당자들과의 사이에서 말이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농부들의 요구가 지나친 요구인가요? 아니지요. 저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에 너무나 당연하게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너무나 습관화 되어버린 일그러진 모습의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답니다. 


갑(甲)이 되어 버린 종균회사
버섯계의 제왕은 종균회사입니다. 쉽게 말하면 종자회사인거지요. 가끔 신문을 보면 종자가 부실해서 농사를 망친 농부들이 씨앗을 구매한 상점이 아닌 종자회사 앞에 가서 시위를 하는 것을 보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요. 버섯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종류의 종균일지라도 우량종균이 보급되어야 튼실하고 좋은 버섯들이 나올 수 있는데, 무언가 오염되었거나 다른 종류의 종균이 섞였거나 등등의 하자가 있다면 아무리 배지 공장과 농부들이 최선을 다해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종균회사는 ‘자기들은 항상 좋은 것을 주었다’고 한다는 거죠. ‘자신들은 좋은 것을 주었는데 배지 공장에서 잘못 만들었다, 농부들이 농사를 잘못지어서 그렇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싫으면 쓰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배지 공장 사장님들은 그저 ‘좋은 것으로 달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없답니다. 왜냐구요? 따지다보면 그나마 받던 종균도 못 받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종균회사는 최고의 갑으로 책임 면제! 


을(乙)이 되어버린 배지 공장? 
그럼 배지 공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할까요? 책임을 질까요? 아니지요. 단 한마디 말로 모든 책임 문제를 털어내 버립니다. 농부들을 향해 “종균 문제는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 쓰고 싶지 않으면 쓰지 마라”라고 말이지요. 겉으로 보면 맞는 말입니다. 배지 기술자가 종균을 만들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정말 무책임한 말이기도 합니다. 농부들이 좋은 배지를 주문하는 것은 종균회사가 아닌 배지 공장이고, 그것을 위해 배지 대금을 주는 곳도 배지 공장이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당연히 배지 공장은 하자 없는 배지를 공급해주어야 하는 것이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종균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 라고 회피해버리는 현상은 너무나 당연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결론은 을이 갑으로 둔갑해 책임 면제!  


병(丙)이 되어 버린 농부
이제 남은 것은 유일하게 남은 농부입니다. 종균 문제, 배지 문제에 관한 모든 책임이 농부들의 어깨에 실립니다. 종균회사는 배지 공장에, 배지 공장은 종균회사에 책임을 돌리고 물건을 공급하고 만드는 측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발생한 것이죠. 
어떤 분들은 말해요. 소송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배지 공장도, 종균회사도 다 안답니다. 종균회사가 하자 없는 종균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닌, 더구나 배지 공장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닌, 농부가 이 모든 사실들을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생물이라 많은 변수가 있기에 그런 변수들이 다 합당한 이유로 둔갑하게 된다는 것들도요. 가령 “온도를 너무 높게 준 것이 아니냐?” “습도를 높게 잡은 것이 아니냐?” 등등의 이유를 들면서 말이지요. 또 하나의 문제가 더 있습니다. 소송을 가면 결론이 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감당하기에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도 있고요. 이런 모든 농부들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종균회사, 배지 공장 등은 해볼 테면 해 보라는 식입니다. 결국 모든 부조리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농부’입니다. 농부는 을도 아닌 완전히 병(丙)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상생의 출발은 책임!
저도 비슷한 상황을 올해 설 명절 때 경험을 하게 되었답니다. 50%정도가 싹이 잘 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생긴 녀석들이(?) 나오는 바람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거래하는 고령의 한 배지회사 사장님은 책임져 주셨답니다. 쉽지 않은 결정임에도 잘못된 배지에 대해 100% 보상을 해 준것이지요. 가장 좋은 것은 정상적인 배지를 받고, 좋은 버섯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수가 있을 때 책임을 짐으로서 서로 신뢰 관계가 세워지는 것 또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대화의 중요성과 책임’입니다. 한 순간 거래관계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닌 평상시에도 고민을 얘기하고, 도움을 서로 주고 받는 마음의 대화가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힘을 발휘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회사를 생각하면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진답니다.   

 

상상농부 한상기 010-4592-3488

01sangsang@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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