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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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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4]

그림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이 생각난 적 있나요? 이번 한국사칼럼에서 보여 줄 그림은 ‘몽유도원도’와 ‘인왕제색도’ 그리고 ‘세한도’입니다. 안견, 정선, 김정희는 당연히 생각나겠지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니까요. 
그럼 또 누가 생각나나요? 같이 만나러 가 볼까요.

안견의 몽유도원도 덴리대학부속 덴리도서관 소장


‘몽유도원도’는 꿈속 무릉도원에서 놀았던 그림이라는 의미입니다. 꿈을 꾼 사람은 안평대군입니다. 자기 꿈을 안견에게 그려달라고 했지요.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고 수양대군, 훗날 세조의 동생입니다. 안평의 꿈속에 나타나 같이 무릉도원을 거닐었던 인물은 박팽년, 최항, 신숙주입니다. 셋은 모두 집현전 학사이기도 했습니다. 몽유도원도 복사 꽃 마을의 위쪽에 초가집이 보이는데 넷이서 정답게 나누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꿈속에선 의기투합했지만 꿈 깬 현실에선 서로 반대 길을 걸었습니다.
안평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 때 죽임을 당하고 박팽년은 나중에 세조를 죽이려다 사육신의 한 사람이 됩니다. 반면 최항과 신숙주는 수양 편에 섰습니다. 안견도 살아남았습니다. 점점 위기가 다가옴을 느꼈던 안견은 안평이 써보라고 준 먹을 훔치다 들켜 쫓겨납니다. 일부러 훔쳤다고도 합니다. 안평도 일부러 쫓아냈다고도 하고요. 꿈 깬 현실은 꿈과 너무도 달랐지요. 무릉도원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선 시화상간도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에게는 절친한 벗 사천 이병연이 있었습니다. 시를 잘 썼습니다. 이병연이 시를 쓰면 정선이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 서로 돌려 봅니다. 정선은 둘이 시와 그림을 주고받는 ‘시화상간도(詩畫相看圖)’라는 그림도 그렸습니다. 그런데 정선보다 다섯 살 어린 이병연이 병석에 누워 일어날 줄 모릅니다. 비도 계속 며칠간 내리고요. 정선이 문병을 갔겠지요.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을까요. “여보게 사천 훌쩍 일어나보게, 내가 그린 그림을 보게. 며칠 동안 지겹게 비가 내려도 인왕산은 이렇게 우뚝 서 있지 않나” 정선은 마지막 남은 힘을 내듯이 힘차게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그러나 친구는 며칠 뒤 윤 5월 29일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집 한두 채가 보입니다. 두 친구의 절절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지요.

김정희의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갔을 때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이상적의 한결같은 마음을 《논어》에 나오는 ‘세한’에 빗대어 그려준 그림입니다. ‘세한연후지송백후조’라고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늙은 고목은 스승 김정희이고 꼿꼿이 솟은 소나무는 이상적처럼 보입니다. 세한도는 스승 김정희와 제자 이상적만 있는 건 아닙니다. 소나무 잣나무 사이로 집 한 채가 보입니다. 중국집입니다. 왜 하필 중국집일까요? 김정희가 한결같은 제자 이상적으로부터 책을 받았을 때 누가 생각났을까요? 젊은 시절 중국에서 만났던 스승 옹방강과 완원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이상적이 보내준 책에는 옹방강의 글씨와 완원의 글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정희의 보담재나 완당이란 호도 모두 두 스승에게 따온 겁니다. 세한도 속 중국집에서 두 스승과 대화를 나누는 추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요.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만남이 있고 저런 만남이 있습니다. 몽유도원도의 만남, 인왕제색도의 만남, 세한도의 만남처럼요. 여러분은 어떤 만남이 있었고 어떤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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