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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칠레에서 온 편지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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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칠레에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 
칠레에서 멜기세덱 문방구를 경영하는 노익호입니다. 얼마 전 아들이 쓴 편지를 받은 소회를 짧게나마 한국에 있는 독자들과 나누고자 이리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문구점에 몇 가지 물건이 떨어져 직접 사오느라 시내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죠. 
 “아버지께! 카톡, 
페이스북에 올리면 죽음

 

아들의 귀여운 협박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일단 테이프로 붙여진 면을 뜯고 편지글을 읽어 내려갔다. 짧지만 아들의 인생과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감동이 일었다.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을 칠레교민들에게서 많이 들었다. 없이 살다가도 결국 잘 사는 날이 온다는 말이겠지만, 금전적인 것을 떠나 가슴 한편 뿌듯하니 벅차오르는 희열을 맛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들었다.

 1991년에 태어난 아들은 다섯 살 때부터 독일에서 2년 반을 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1년을 산 후, 지금까지 주~욱 23년째 칠레에서 살고 있다. 대다수 교포2세 남자애들은 여자애들과 달리 적응을 잘 못한다.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몹시 까다로운 아들이었지만,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30세가 넘어가면서 아주 공손해지기 시작했다. 고된 직장생활을 18개월간 하며 부모님한테 그동안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꼭 한국 남자애들이 군대 갔다 철들어 제대한 것과 흡사했다. 아무튼지 간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파‘힘내’라는 뜻에서 편지를 쓰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그제서야 ‘아버지께! 카톡, 페이스북에 올리면 죽음’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어 막막 웃었다. 자기 한국말 실력이 만천하에 들통 나면 창피스러울 것이기에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면 안된다는 경고문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수준도 안되는 필체도 필체려니와… 아들의 편지 내용인즉슨 이렇다.

 

칠레교민 2세대 30대 아들이 쓴 손편지


우리 아버지께!
어렸을 땐, 참 쪽팔리게 생긴 게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이 참 창피했다. 하지만 못생기고 키 작은 아빠가 없어진 게(주: 아빠가 혼자 독일로 유학을 떠남)더욱 더 슬펐다.
나이 먹으면서 아빠의 다른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천재끼다.
물론 사춘기땐 내가 철이 없고 또 인생이 만만해 보이니까 아버지는 쫌팽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었다. 이젠 아버지가 우스워보였다. 옛적엔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하든지 어리석고, 아는 척만 하고, 제대로 배운 것은 없는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제서야 그 매력을 드디어 느낀다. 우리 아버지는 간단한 사람이다. 작은 것을 크게 보고 큰 것은 소 닭 보듯, 우리 아버지는 오리지널, 인생을 행복하게 즐긴다.

 

칠레는 겨울, 두꺼운 옷 입고 부자지간 한 컷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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