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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마지막 경순왕만 알고 계신가요?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1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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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5]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만 알고 계신가요?

 

신라의 마지막 왕은 ‘경순왕’입니다. 천년의 사직을 왕건에게 건네 준 왕입니다. 경순왕 바로 이전 왕은 ‘경애왕’입니다.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잔치를 열다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을 당한 왕입니다. 삼국을 통일하고 불국사와 석불사를 지을 만큼 찬란했던 신라의 마지막을 이렇게만 기억하고 계신가요?

 

봉림사지진경대사심희탑


경애왕의 전 왕은 형인 ‘경명왕’입니다. 경명왕은 잘 알려지지 않은 왕입니다. 아마 왕의 이름을 처음 들어 본 분도 있을 겁니다. 경명왕은 망해가는 신라를 어떻게 든 다시 세우려고 했던 왕입니다. 경명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917년입니다. 후백제의 견훤과 후고려(=후고구려)의 궁예가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신라는 나라의 명맥을 겨우 지탱하고 있던 때입니다. 경명왕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918년 큰 일이 벌어집니다. 왕건이 후고려의 궁예를 몰아내고 새 나라 고려를 세웠습니다. 신라에 적대적이었던 궁예가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경명왕은 이 기회를 이용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명왕은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창원 봉림사에 머물고 있는 진경대사 심희를 경주로 불러들입니다. 그때 심희가 경명왕에게 건의한 방책이 기록에는 ‘이국안민지술(理國安民之術)’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책’이라는 말인데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 계책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천하를 셋으로 나누자’는 것인데 제갈량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에 비하여 유비의 촉나라는 약했습니다. 나라가 약한 촉나라가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세 나라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신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지만 이제는 고려, 후백제에 비해 가장 약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려와 후백제를 정식으로 인정해 주고, 신라도 옛 신라 경상도를 경계로 해서 삼국의 균형을 맞추는 게 신라를 지켜내는 방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명왕은 천하삼분지계에 따라 왕건과 서로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창원, 문경, 영월을 잇는 천하삼분 벨트


그러나 경명왕과 뜻을 같이 하던 진경대사 심희가 아쉽게도 5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하삼분의 계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도 전에 심희를 잃은 게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경명왕은 924년 직접 심희의 비문도 짓고 탑과 탑비를 세웠습니다. 왕이 직접 스님의 비문을 쓴 건 이것이 처음입니다. 경명왕은 또 같은 해 문경 봉림산문의 봉암사에 지증대사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지승대사 비문은 일찍이 최치원이 지었는데 비석을 세우지 못했다가 이때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같은 해 924년 경상북도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영월 사자산문 흥녕사 절중대사의 비문을 최언위로 하여금 짓게 하였습니다.

경명왕은 924년에 창원과 문경, 경상도와 접해있는 강원도 영월을 잇는 천하삼분 벨트를 엮어내었습니다. 신라에 군사적인 힘은 아직 없지만 ‘선종구산’의 세 산문을 연결하여‘천하삼분’의 명분을 쌓고 차차 신라의 힘을 키워내려고 했던 거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비문을 지을 정도로 학식도 깊었던 경명왕은 927년 생을 마감합니다. 왕이 된지 7년 만이었습니다. 30세 중반의 젊은 나이였지요. 천년의 신라는 그냥 망하지 않았습니다. 쓰러져 가는 신라를 어떻게든 구해내려고 했던 경명왕이 있었습니다. 경명왕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신라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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