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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정치적 정체성은 왜 폭압적,독재적인가?

2021년 8월호(14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8. 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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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화(명) 4]

 

     러시아의 정치적 정체성은 왜 폭압적,독재적인가?

 

21세기의 세계패권이 이동할 동아시아의 삼국(중국,일본,러시아)과 한반도,한민족
21세기에는 세계의 정치적 패권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미국에서 동아시아로 넘어오는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아날학파의 예견이 점점 실제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이동할 20세기 초에는 같은 서양문화(명)권에, 앵글로 색슨이라는 민족적,역사적 공통성을 비롯한 여러 유사성 때문에, 그 전환이 폭력적이지 않았고 아주 매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있어서 패권의 이동은 단순히 민족,국가 차원이 아니라, 문화(명)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매우 폭력적일 위험이 있습니다. 트럼프 말기부터 현재 바이든의 초기까지, 미-중 사이에 점증하며 폭발적으로 치닫는 갈등 관계는 양당사국뿐 아니라 그 주위에 상관되는 나라들, 특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을 우려하게 만듭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지난호에 미국이 중국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근본 원인은 지금부터 50여년 전에 ‘미-중화해’를 주도하였던 미국의 책사인 키신저(H.Kissinger [World Order] 2014)의 잘못된 정책에 있었음을 선명하게 지적했습니다(2021년 4월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이점을 거의 지적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양 나라인 미국은 근본적으로 ‘동양 나라인 중국’과 ‘변질된 중국공산당’이라는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 한반도,한민족은 매우 놀라운 역사적 장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끝의 작은 나라인 우리는, 2000년의 고구려-신라-고려-조선을 이은 장구한 역사를 지나면서, 동양에서 그 절대적인 크기 때문에 패권을 저절로 가질 수밖에 없던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중국을 매우 지혜롭게 다루어 철저히 독립을 유지해 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조상의 지혜를 현대화하여 중국의 역사,문화를 철저하게 파악하고(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18년 9월호~2019년 2월호), 또 중국이 서양에서 수입한 돌연변이인 중국공산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섬세하게 상대해 간다면, 심지어 ‘문화적으로 무지한 면이 많은 미국’이 하지 못하는 일까지 할 수 있을 겁니다. 즉 현재 중국정치형태가 1) 수천 년 동안 중국인에게 익숙한 동양적 전제정치(2000년의 역사), 2) 프롤레타리아(노동자,농민)의 독재라는 아주 간사한 미명 하에 공산당(약 1억명)이 최상위계급을 차지하는 독재정치(100년의 역사)로 이 둘이 합쳐진 괴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극복한다면 말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패권 이동을 매우 매끄럽게 이루어내어, UN의 구멍난 국제정치의 한계를 넘어서, 진정으로 지구가 하나의 정치단위를 형성해 각 나라들이 하나의 지방처럼 되어 광활한 우주로 나가는 데 에너지를 집약하는 지구정치, 우주정치를 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 패권이 이동할 동아시아에 중국 외에 또 다른 초강대국인 일본,러시아도 있기에 이 두 나라를 이해,포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본이 정상적인 강대국이 되기 어려운 조건을 늘 유지해 왔음을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17년 10월호~2018년 7월호). 19~20세기에 서양을 화혼양재(和魂洋才 일본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라는 헛된 슬로건으로 서양의 껍질인 기술만 받아들이고 문화(명)의 본질에 있어서 일본적인 것을 그대로 가지려는 태도로 2차대전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이 헛된 슬로건을 가지고 있는 극우파를 허용하는 일본의 민주주의를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은 절대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될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이 접촉한 일본에 비해, 우리 북쪽에서 영토상으로는 아주 작은 부분만 접촉한,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우리가 마주친 경험도 일천하며 일반 국민들도 매우 생소합니다. 이런 일천함과 생소함 때문에 그들과 이루어야할 앞으로의 관계를 그르칠까 염려됩니다. 그래서 우리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는 올해동안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되는 ‘러시아니즘’을 통해 러시아 음악을 접하고 러시아를 조금씩 경험하면서, 8월호에는 러시아의 정치적 정체성은 왜 폭압적,독재적인가하는 주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뿌띤의 정치적,정신적 스승, 이반 일린
현재 러시아인들은 블라디미르 뿌띤 대통령에게 70~80%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데, 이는 러시아인들이 그가 행하는 인권 및 언론탄압, 그리고 폭력적 해외 침공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러시아인들은 뿌띤이 가진 폭력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링컨과 같은 탁월하고 선한 정치가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런 뿌띤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를 1200여 년의 러시아 역사상 지금과 같이 풍요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피상적으로 말하곤 합니다. 대한민국의 자주 외교를 이루어내었던 이승만이나 경제건설의 기초를 마련한 박정희의 독재에 대한 찬반이 다양할 정도의 민주주의의 성숙성을 이루어낸 한반도,한민족의 관점에서는 이런 러시아의 현실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뿌띤은 단순한 독재자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의 전체주의인 공산주의(레닌-스탈린) 대신에 또 다른 전체주의인 국가사회주의(히틀러)를 주창한 이반 일린(Ivan Alexandrovich Ilyin 1883~1954)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소련의 해체와 함께 봉인이 풀려 러시아어로 출판(1991)된 이반 일린이 쓴《우리의 임무》(Our Task)라는 책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뿌띤입니다. 이반 일린은 히틀러에 의해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에서 먼저 국가사회주의가 일어나 정권 잡은 것을 시기했으며 매우 애석해했습니다. 전직 KGB의 멤버일 뿐인 뿌띤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인이 지긋지긋해하는 소련과는 정반대일 뿐 아니라, 러시아가 지난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유지해 왔던 러시아 본연의 정치적 정체성을 자극하고 되살리는 방법으로, 항구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기초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심지어 민주주의의 일선에 선 미국 선거까지 조작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치가가 선정되도록 돕는 방식으로 공작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나라에 불과한 우리로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동서양의 문화(명)을 심층적,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이 거대한 땅대국 불곰국을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겁니다. 인구대국 중국을 다루어왔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폭압적,독재적인 정치적 정체성이 단순히 러시아인이 자신들을 현재 잘 살게 만들어 준 것으로 이해한 뿌띤을 허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1200여년 동안 러시아인의 의식 속에 역사적으로 차곡차곡 누적된 결과물이라고 판단합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지난 글(2021년 6월호)에서, 러시아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IBM 지표로, 러시아인이 매우 권위적(전세계에서 6위, 93점)이라는 섬뜩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대통령을 감히 하야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감옥까지 가게 만드는 한국(41위, 60점)이 중간 정도에 머무는 것과는 아주 대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곡차곡 형성되어간 러시아인의 폭력적,독재적인 정치적 정체성의 역사를 처음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러시아인 개개인 모두가 폭력적,독재적이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 개인들보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인품을 가지며, 역사와 문화의식이 높은 분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일본인과 중국인 개개인이 그러할 수 있는 점과 같습니다. 우리는 단지 러시아인의 의식 속에 매우 깊이 자리 잡아 언제 분출될지 알지 못하는 정치적 정체성에 집중할 뿐입니다. 이런 정치적 정체성이 형성된 기원부터 다시 들추어 다음과 같이 여덟가지를 다루려 합니다 : 


  1) 러시아의 매우 광활한 지리(아주 넓게 뚫려있는 동쪽과 북극에 도달하는 매우 추운 북쪽 8월호)
  2) 끼에쁘 루시의 블리디미르 대공의 비잔틴정교회를 국교로 수납한 이유: 미美(988)
  3) 정치에 시녀된 종교로서의 비잔틴정교회와 더욱 변질된 러시아정교회
  4) 몽골의 서쪽 제국인 킵차크칸국의 폭압적 통치 240년(1240~1480)
  5) 모스끄바 공국(이반 4세, 이반 뇌제 Ivan the Terrible)의 폭압적 통치
  6) 로마노프왕조의 폭압적 통치(뾰또르 대제, 예까타리나 대제 1613~1917)
  7) 소련 공산주의의 폭압적,독재적 통치(1917~1991)
  8) 블라디미르 뿌띤의 독재정치(2000~2021)

1) 러시아의 매우 광활하고 생존이 어려운 지리(아주 넓게 뚫려있는 동쪽과 북극에 도달하는 매우 추운 북쪽)
첫째, 국토의 70%가 산으로 사람이 거주할 평평한 땅이 부족해 60% 이상의 주거공간을 아파트가 차지할 수밖에 없는 한반도인들은, 드넓은 러시아 땅을 바라보며 개척하고 바꾸어놓고 싶은 생각으로 근질근질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1억4천4백명 정도의 비교적 적은(?) 인구의 러시아인 입장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광활한 러시아 영토이니, 5천만으로 좁은 땅에 옹기종기 사는 남한인들의 상상력은 러시아에 미치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할 때 러시아의 엄청난 광활함과 극단적 추위를 충분히 상상하고 준비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본인들이 직접 러시아에서 적어도 3년 정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배하고 정권조차도 붕괴하게 되는 자충수를 두고 만 것을 보면, 우리의 관찰은 정말 피상적일 것입니다. 3-4-1원리(어떤 나라든지 3년을 살아보고, 4계절을 지내며, 충분히 언어 익히기)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한 나라의 총체성을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중국과 미국에 비해 2배의 면적이며, 11개의 시간대(한국은 달랑 1개, 동경 135도 기준)로 길게 뻗은 러시아를, 비행기로 서울에서 모스끄바로 횡 하니 가버리거나, 두 개의 시베리야 횡단철도(Trans-Siberian/Baikal-Amur) 중의 하나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트뻬떼르부르크까지 장장 6~7일을 걸려 지겹게 가보아도, 러시아의 무지막지한 광활함을 제대로 체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옛사람들이 개척하며 움직였듯이, 걸어서 혹은 조금 호사스럽고 편하게 말을 타고라도 러시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본다면 그 엄청난 광활함을 조금 체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자랑하는 탁월한 온돌난방의 효과를 잘 알기에 ‘귀뚜라미보일러’나 ‘경동나비엔보일러’를 미친 듯이 찾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장장 6개월의 겨울을, 투박하기 짝이 없는 정통 러시아식 뻬치까, 혹은 보온이 잘 안된 엉성한 정통 러시아식 목조주택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서양식 난방인 보일러로 살아보지 않은 한 제대로 알 수 없을 겁니다. 


둘째, 이 광활함과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지역적으로 아시아가 75%를 차지하지만 정작 아시아인은 22%에 불과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화한 아시아인에 대해서 러시아 정부는 어느 정도 안심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본토에서도 차고 넘쳐나 중국 밖으로 저절로 삐져나오는 중국인들이(모택동의 탄식‘중국인들은 많아도 너무 많다!’), 극도로 빈약한 인구를 가진 극동 러시아 변경도시들에 몰려들어 중국화되는 것을 러시아는 심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탈린은 일제가 만주를 넘보기 시작하자, 이미 연해주로 도망쳐 온몸을 다해 개척하여 살던 우리 조상들이 아시아의 독재국가 일본의 앞잡이가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곳의 우리 조상들을 우즈베키스탄으로 죽음의 여정을 가게 했던 폭압적 역사적 상황을 우리의 입장에서보다 먼저 러시아의 입장으로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셋째, 이제 동쪽에서 러시아의 기본을 이루었던 서쪽으로 가서, 이런 극단적 환경 속에서 러시아가 끼에쁘 루시로서 서양국가에 비해 아주 늦은 9세기 경에서야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사실은 매우 당연하게 보입니다. 북쪽의 발트해에 가까운 전통도시인 노보고로드에서 출발하여 길고 긴 드네프르 강 언덕을 따라 쭉 남쪽으로 진행하다 드디어 흑해까지 도달해, 남쪽의 비잔틴제국이나 이슬람제국을 만나기까지, 그 중간에 놓인 끼에쁘에서 드디어 자신만의 완전한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기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넷째, 이렇게 서쪽에서 시작되어 러시아의 긴 역사속에 계속 누적되어간 중앙정권의 독재적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베리아로,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그들이 아꼈던 러시아정교회의 이콘(성화)을 앞세우며 신앙의 자유를 위해 힘겹게 개척해 나간 역사도, 이제는 그들이 개척한 영토와 함께 러시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들은 베링해협을 넘어서 북아메리카로 건너갔으며, 알래스카를 정복한 후, 다시 거기서 남진해 19세기 초에는 미국 서해안인 샌프란시스코 인근까지 도달했고, 서진하여 팽창하는 미국과 만나고서야 행진을 멈추었습니다. 아시아인인 아메리카 인디안이 걸어갔던 옛길을 그대로 따라간 거지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알래스카를 형편없이 싼값에 할양해 버리고 베링해협으로 국경선을 삼은 러시아의 행동이 어리석게 보일 겁니다. 하지만 넓어도 너무 넓으며 길쭉하게 퍼진 땅을,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당시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속이 후련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때에야 러시아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이제 러시아의 남진을 다룰 차례입니다. 서쪽과 남쪽 국경선은 유럽과 아시아 전역을 마주할 정도로 광활합니다. 지금도 다양한 국가와 마주하지만, 러시아가 소련시절일 때는 13개국과 국경을 직접 맞닿았으니, 이 모든 나라들을 다 상대하기 위해 러시아가 고려해야 할 복잡성,다양성이라는 고등수학을 풀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과연 존재할까요? 물론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나라들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이들 나라에 쳐들어가는 ‘공세적 차원’을 공포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이들 나라 중 하나에서 어느날 갑자기 징기스칸과 같은 영웅이 등장해 자신들을 이전처럼 지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클 것입니다. 개별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대국인 러시아만을 상대하지만,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이들 나라 모두를 고려해야 하며 특히 강력했던 몽골과 오스만 터어키, 현재 아주 강력해지는 중국을 마주해야 하는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여섯째, 이런 극단적 지리 속에서 러시아가 외부와 전쟁을 치렀던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로마노프 왕조의 300여년의 역사 속에서 러시아가 웅비하면서 가진 궁극적인 관심은 서쪽의 유럽, 남쪽의 이슬람권, 나중에는 동쪽의 중국,일본이었습니다. 특히 인간이 공중으로 날기 전에 웅비할 수 있는 도구가 말에서 배로 변한 시절에, 러시아의 핵심과제는 그 넓은 땅에서 얼지않은 항구, 부동항을 얻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힘든 것이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일본을 상대한 러일전쟁(1905) 때, 유럽에 있던 북해함대가 영국해협을 빙 돌아 6개월이나 걸려 일본까지 와야 했기에, 영일동맹으로 전쟁에 간접 참여한 영국의 방해로 인해 제대로 해전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지구상의 해상 거점을 다 장악한 영국이 석탄이나 물과 같은 생존 필수품을 러시아가 제대로 공급받도록 허락할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 특히 대한해협에서의 도고 헤이하치로 장군이 단순한 T자형 대형으로 거둔 승리를, 모든 것이 불리한 가운데 23전 23승을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의 승리와 비교하려는 일본인들의 헛된 해석을 결코 우리는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또 러시아는 이전에도 남쪽의 흑해에서 확고한 부동항을 얻기 위해 벌인, 나이팅게일이라는 영웅을 탄생시킨 크림전쟁(1853~1856)에서 또 한 번 영국,터어키을 비롯한 연합군에게 패배한 사실은, 러시아인 속에 지리적 약점을 부정적으로 각인시킨 사건일 겁니다. 그렇지만 자칫 러시아전체의 괴멸이 될 수 있었던, 전통적으로 항구적인 갈등관계에 있던 서쪽에서 두 번의 침략(나폴레옹과 히틀러)을 영웅적으로 방어한 역사는 영원히 러시아의 자랑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둘을 막아낼 뿐 아니라, 그 정권 자체를 붕괴시킴으로써 세계 역사가 달라지게 한 것은 확실히 러시아인의 공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극도로 광활하고 극단적으로 추우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다양한 역사적 쟁투 속에서 러시아는 국가적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하는 우리의 근본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독특하고 비교불가능한 러시아를 함부로 판단하는 자, 너는 누구냐? 물론 독재를 좋아하거나 이상적인 것으로 여길 사람은 독재자 당사자 외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명체에게 당장에 중요한 것은 생존 자체입니다. 매년, 매 지역, 매 역사마다 그런 생존욕구가 발동되어야 하는 긴박한 처지의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앞에서 화끈하고 분명하게 이끌 독재체제를 선호하는 정치적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이런 가운데 국가,사회,공동체 전체를 이끄는 정치체제로 민주주의만 고집하는 것은 정말 지혜로운 일일까요? 아주 쉽게 잊혀지는 진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정상적으로 작동할 전제는 그 구성원 중에 누가 나서도 지도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성숙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 러시아인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뿌띤을 향한 서구, 특히 미국의 비판을 들으면 ‘너희가 과연 러시아를 알기는 해, 러시아에서 살아봤어?’라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다행스럽게 그 넓은 땅덩어리라도 효과적으로 통치할 정치력과 추위를 가볍게 이길 기술이 많이 발달한 21세기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에게 매우 유리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아주 쉽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그동안 형성해온 폭력적,독재적인 정치적 자의식을 스스로 고쳐가려고 힘써 노력한다면, 그 유리하게 전개될 시절이 자신들뿐 아니라 주위와 지구 전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노력에 한반도,한민족이 도울 길을 찾는다면 동아시아 4국이 패권을 함께 가지는 시절에 지구가 가장 행복했다는 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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