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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로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2021년 9월호(14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9. 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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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

 

표트로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바이올린 협주곡

 

차이코프스키의 결핍, 러시아의 결핍
1878년 봄, 차이코프스키는 스위스 제네바 호수 근교의 클라렌스(Clarens)에서 결혼생활에 대한 상처를 달래고자 머물고 있었습니다. 레망호수로 불리는 호수 건너편은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둘려있는 지역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노라면, 이런 스위스의 풍경이 고스란히 상상이 됩니다. 이런 좋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고통스러운 결혼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애통과 슬픔이 절절히 바이올린의 카덴차에 담겨 호소를 하지요. 인생의 고통은 가끔 주위의 웅장한 대자연이나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승화하여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나곤 합니다. 그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 바로 한 해 전인 1887년 7월 18일 안토니나 밀리우코바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로부터 끊임없는 구애와 협박도 있었고, 자신에게 있었던 소문(동성애) 또한 잠재워야 하는 현실 때문이었죠. 하지만 결혼 생활은 석 달 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가정교사인 파니 뒤르바흐(Fanny Dürbach)를 통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기에 정서적으로 그녀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불과 10살에 가족과 무려 13,000km나 떨어진 임페리얼 스쿨의 법학예비과정에 들어가면서 선생님과 가족들과 이별하여 기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가 14세 되던 해에 콜레라로 사망하면서 정서적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 곡에서 그의 이런 정서적, 애정적 결핍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이런 개인적 경험을 넘어서 그의 조국 러시아 또한 문화적으로 서방, 유럽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는 것에 대한 열등감에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과거 이반4세(1547~1584)는 변방국의 이미지를 벗고자 동로마제국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을 모델로 삼아 중앙집권과 근대국가 체제를 세우기도 했으며, 표트로 1세(1682~1725)때는 유럽무대에 진출하고자 모스크바에서 서유럽에 가까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독일출신이었던 예카테리나 2세(1762~1796)는 프랑스 문화에 매료되어 궁정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의복을 입도록 했고, 당시의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계몽 군주를 자처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러시아는 더 근본적인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 1861년까지 농노제를 유지했을 정도로 낙후된 봉건체제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반면 러시아의 짜르는 황제 중심적인 전제정치로 백성들을 탄압하며, 결국 제정 러시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혁명으로 소멸됩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대외적 팽창정책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여 가장 광활한 땅을 차지하고, 자신들만의 민족자긍심을 불태우며 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음악, 문학, 건축, 미술 등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입힌 창조적 작품으로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가 활동하였던 시기는 러시아적 자부심이 부상하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마침 유럽에서도 낭만주의 시대를 보낸 이후 민족주의가 부흥하면서 음악에 있어서는 국민파 음악이 활개를 펴는 시기였습니다.

열정을 통해 회복된 차이코프스키
스위스 클라렌스에서 정신적 안정감을 찾은 차이코프스키는 빠르게 작품 속으로 몰입해 들어갔습니다. 그가 한참 바이올린 연구를 하는 가운데, 마침 그의 제자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시프 코텍(Iosif Kotek)이 합류하였죠. 이 둘이 음악을 다룰 때 형성했던 환상적 조합은 협주곡 작곡의 촉매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곧 영감을 되찾아 한 달 만에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협주곡을 함께 한 요시프 코텍에게 헌정하고 싶었지만, 소문으로 인한 제약 때문에 포기하고, 1878년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연주를 부탁했죠. 하지만 곡이 형편없어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차가운 답변이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바이올린 협주곡의 첫 공연은 몇 년 후인 1881년 12월 4일 비엔나에서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의 지휘에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 연주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작품에 대해 그때 비판적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서방의 작곡 방식을 사용하지만, 러시아 민요 및 토착 음악과 통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만들어 불후의 명작을 창조한 것을 그 시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하나! 
지금은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하나로 유명한 이 곡의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마치 슬픔 마음을 토로하듯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제를 제시하고 화답하는 부분은 마치 어디선가 답을 얻은 것 같이 들리죠. 전개부는 알프스 산맥의 거대하고 광활함과 함께 음악을 새롭게 창조적으로 마주하는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메인 주제부는 우울함마저 날려버릴 듯 리드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바이올린 선율과 동일 주제를 새롭게 소화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탁 트인 호수를 마주하는 상쾌함과 함께 새롭고 시원한 정서적 지평을 여는 것 같습니다.
2악장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하듯, 애절한 플룻의 멜로디로 깊이를 더해 갑니다. 그리고 바이올린 카덴차를 통해 초연하게 상황을 벗어나며, 또 이어지는 클라리넷을 비롯한 관악기들과 주고받는 연주마저 의연하게 들립니다.
3악장은 2악장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강하게 몰아치며 들어갑니다. 뭔가의 돌파구를 발견한 바이올린의 카덴차는 경쾌하게 달려 나가지만, 다시 안정을 찾는 바이올린의 걸음걸이는 기쁨의 춤을 추듯 오케스트라와 풍성함으로 함께 승화합니다. 3악장은 러시아적 요소인 거친 소리와 빨라지는 템포의 민속 테마로 영감을 받았습니다.
 
후원자이자 정신적 교감을 나눈 ‘폰 메크’ 부인
그가 이렇게 일상에서 아무런 현실 걱정이 없이 휴양지에서 작곡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폰 메크(Nadezhda Filaretovna von Meck)부인의 후원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철도사업의 개척자인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매료되어 13년간이나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었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차이코프스키와 무려 1200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확신과 희망을 선물해 주었던 은인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중간에 나오는 바이올린과 관악기의 서로 주고받으며 마치 대화를 하는듯한 장면이 있는데, 마치 폰 메크 부인과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그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면서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 한 장을 소개해 볼까요?

“오늘 아침 나는 불타는 영감 안에서 한없이 타올랐습니다. 내가 작곡한 이 협주곡이 심장을 파고들만큼 강력한 음악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군요.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작곡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은 완성되었고, 내일부터 2악장을 시작할 겁니다. 이 협주곡은 작곡하는 내내 즐거웠고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끌렸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하루 종일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고, 이런 속도라면 예상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은 이런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시대를 뛰어넘는 선물로 생각하고 경청하는 것은 어떨까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로운 상황에서 차이코프스키가 회복을 맛보았듯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면서도 깊은 청량감을 전해주는 이 곡에 빠져들며 차이코프스키가 전하는 위로와 아름다운 러시아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곡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링크를 첨부합니다. 지휘자나 연주자의 독특한 해석에 의해 곡 전체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지휘자와 연주자의 곡 해석을 음미해 간다면 이 탁월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깊이를 더 실감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GXtGW6w2Y&t=1693s 

 

(주)그린휠 최승호

ceo@greenwheel.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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