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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될 뻔한 ‘홍익인간’을 위한 변명

2021년 9월호(14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9. 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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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6]

 

삭제 될 뻔한 ‘홍익인간’을 위한 변명

 

우리의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입니다.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죠. 간혹 인간세상이 인간으로 잘못 번역되기도 합니다. ‘홍익인’은 홍익하는 대상이 ‘사람’에 한정적이라면 ‘홍익인간’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을 포함한 포괄적 의미입니다.

최근 국회에서 교육이념 홍익인간을 삭제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반대에 부딪쳐 법안을 접었지만 언제 또 제기될지 모르죠. 그런데 홍익인간 삭제 시도에 대해 역사학계를 포함하여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육이념은 보편적 의미를 담아야 하는데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이죠. 단군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도 불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 교육이념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밑에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홍익인간 자체만 본다면 불교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불경에 홍익인간이란 단어 조합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홍익중생’ 또는 ‘이익인간’이란 용례는 보입니다. 유교의 대표 경전인《논어》에는 ‘홍인(弘人)’, ‘홍도(弘道)’가 보이며 실학자 정제두의 글 속에‘홍익’이란 글귀도 있습니다. 홍익인간을 불교적 윤색으로 보는 건 홍익인간이란 가치를 맨 처음 내세운 ‘환인’ 때문입니다. 환웅과 단군도 환인의 홍익인간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였죠. 환인(桓因)은 ‘하느님’을 한자로 표기한 것에 불과한데 역사학계 대부분은 이를 불교의 ‘석제환인’(釋提桓因)의 줄임말로 보고 있습니다.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에서 삭제할 때 학계로부터 자문을 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환인을 불교의 천신인 석제환인의 줄임말로 본 역사는 아주 깁니다.《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에서 시작하여 조선시대 대표적인 역사가 안정복을 거쳐 일제저항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고착화되었습니다. 승려 일연은 환인을 석제환인의 다른 말인 제석(帝釋)으로 풀이했고, 조선시대 유학자 안정복은《동사강목》에서 단군신화를 승려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이야기라고 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환인을 들었습니다. 고조선과 단군을 부정했던 일제는 단군신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환인이 석제환인의 줄임말이라는 인식을 널리 퍼뜨렸죠. 지금 학계도 단군신화의 대표적인 불교 윤색의 사례로 환인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인은 석제환인의 줄임말이 아닙니다. 범어(산스크리트어) 조어법상 석제환인을 환인으로 줄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아가페’란 세례명을 ‘가페’로 줄여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죠. 덧붙여 환인이 석제환인의 줄임말이 아니라는 보다 확실하고 간단한 증거가 있습니다. 해인사에 보관 중인 고려대장경에는‘석제환인’이란 용례가 일천 번 이상 나옵니다. 그런데‘환인’은 한 차례도 보이지 않습니다. 환인이 석제환인의 줄임말이라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곧 환인은 석제환인의 줄임말이 아니라는 것이죠. 

한편《환단고기》를 믿는 재야학계에서는 ‘환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환국은 고조선 이전에 이미 동아시아와 세계를 주름잡았던 나라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 환국의 가치 이념이 ‘홍익인간’이라는 것이죠. 환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높여 홍익인간이라 외치자 사람들은 홍익인간도 환국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환국이 없는 말은 아닙니다. 임신본(1512)《삼국유사》에 환인(桓因)은 보이지 않고 환국(桓国)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파른본(1394) 《삼국유사》에도 桓(囗+士), 곧 환국이라 되어있다고 합니다. ‘(囗+士)’이 글자를 국(国)자로 본 것이죠. 실은 ‘(囗+士)’이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환국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파른본 삼국유사 (1394) '囗+士'
임신본 삼국유사(1512) '환국'


문제는 ‘(囗+士)’이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알면 해결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 이외 어디에서도 이 글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을 떠올렸습니다. 고려대장경은 경판이 8만 여개이고, 글자 수는 5천만 자에 이릅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囗+士)’이 글자가 인(因)과 같은 글자라는 것을 고려대장경에서 찾았습니다.《신집장경음의수함록》이란 경전에 나오는 ‘甫(囗+士)’란 글자가 《문수사리보초삼매경》이란 경전에서는 보인(甫因)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임신본(1512)《삼국유사》의 환국(桓国)이란 글자는 가장 오래된 파른본(1394)《삼국유사》의 ‘(囗+士)’이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모르고 士에다 一을 더 그어 王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국(国)자가 생겨난 것입니다. 결국‘환국’은 실수로 만들어진 허구의 나라였던 것이죠.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에서 삭제하려고 했던 시도는 우리가 홍익인간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 벌어진 일입니다. 환인을 석제환인의 줄임말로 잘못 알고 환인의 홍익인간을 불교적 이념으로 치부한 것이나, 있지도 않은 환국의 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알아왔기 때문이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이념은 흔하지만 사람세상,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이념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홍익인간 이념을 우리나라의 첫 나라인 고조선부터 이어 온 것이죠. 

21세기, 앞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은 ‘시민’도 주인이고, 시민과 함께 더불어 사는 ‘동물’도 주인이고, ‘기후’도 주인인 그러한 세상이길 바랍니다. 바로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말입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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