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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늘 그렇듯 또시(다시) 온 귤 ‘또시온’

2021년 10월호(14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0. 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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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제주청년 농부스토리]

겨울이 되면 늘 그렇듯 
또시(다시) 온 귤
‘ 또시온’

 

귤 아가씨의 시작
저는 대부분의 과일을 진짜 싫어합니다. 딸기도 싫어하고요. 사과와 배는 누가 깎아줘도 먹지 않는데, 유일하게 먹는 과일이 바로 귤입니다. 귤은 정말 너무너무 맛있죠. 아버지께서 40년 동안 제주에서 도매업을 해오시며 귤이 맛있다고 제가 있던 목포로 많이 보내주셨어요. 대학 방학 때 그런 귤과 사랑에 빠져 아버지를 따라 제주로 들어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귤과 함께 일하는 것도 너무 즐거웠지만 이 일은 심지어 워라벨(Work-life balance)까지 완벽합니다. 가을, 겨울에 일하고 봄, 여름에는 여행을 갈 수 있기에 이건 천직이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5년째가 되어갑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정말로 가을과 겨울에만 일을 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철없이 번 돈을 모두 가지고 봄, 여름 동안 기나긴 해외여행을 다녔습니다. 사실은 여행을 좋아해서 가기도 했지만, 제주에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떠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가 많이 개방적이 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외부에서 들어와 정착하는 입장에서 보기엔 아직도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70~80대 할머님들과 대화를 할 수는 있었지만, 일주일에 말을 한 마디 하면 많이 했을 때도 있어서 저의 외로움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죠. 그런데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제주도에서 외지인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억지로 마음을 두기로 작정했는데 마침 코로나 덕분에 못 나가게 되었어요. 그전에 마음을 잡게 되어서 다행이지요.(웃음)


제주살이의 안타까움                          
불과 5년 전만 해도 청년 농부를 보기 힘들었는데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효리네 민박 같은 느낌의 제주살이를 꿈꾸고 오더라도, 육지에 살던 젊은 청년들이 막상 시작해 보니 농사가 힘들기도 하고, 마음 둘 곳이 없어 떠나는 분들이 절반이 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노하우가 있는 농부들도 완전 맨땅에 헤딩하느라 쉽지 않은데 청년들이 견디기엔 너무 힘든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솔직히 옛날에는 나보다 더 잘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도 조금 했었는데 지금은 누구라도 오래오래 버텨서 나와 함께 잘 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에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한 개라도 더 도와주고, 뭐라도 하나 더 챙겨드리려고 합니다.
이미 제주에서 농사짓고 있는 분들의 2세들이 자기 밭의 귤이 맛있으니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3년 이상을 버티기가 힘듭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작물들의 해거리 때문입니다. 작물들은 첫 번째 해와 두 번째 해는 맛있는 귤을 맺더라도 그 이듬해에는 해거리를 해서 귤이 열매를 잘 맺지 않거나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올해 귤이 맛있더라도 그 다음 해에도 동일하게 맛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한 해 귤이 좋지 않아 기존 고객들에게 연락을 못하면 고객들은 더 이상 그 농가가 안 한다고 생각하고 바로 다른 집을 찾아버립니다. 그 해만 지나면 괜찮아지는데 고객들은 그걸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자연의 현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참 많이 안타깝지요. 
다른 밭의 작물을 소매로 시작해 보려 해도 한 컨테이너만 소량으로 구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가 입장에서는 밭 전체를 다 맡지 않고 한 두 컨테이너만 팔게 되면 나머지 안 팔린 과수들은 나무에 매달린 채 그 다음 판매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그 다음해에 해거리를 아주 심하게 해서 손해가 너무 커지기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소매를 기다려줄 수가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뱅쇼키트


아버지의 도매를 이어 소매를 개척하다
아버지와 같이 매년 새로운 밭을 200~300개 정도 돌아다니며 과실을 선택합니다. 모든 밭들이 다 해거리를 하지만 그래도 다양한 밭의 과일들을 구입하다 보니 해거리를 하는 밭의 과실은 안 될걸 알면서도 그 이듬해에 더 맛있게 농사를 지어주십사 말씀드리며 의리로 구입해드리고, 다른 밭의 맛있는 과일을 판매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대량으로 넘기는 도매에 비해 소매가 힘들다며 처음에는 제가 소매하는 것을 반대하셨죠. 그 덕에 저는 밤에 몰래 밭에 자동차 쌍라이트를 켜놓고 귤을 따서 택배를 포장한 후 자는척하고 그랬답니다.
저는 못난이 귤로 소매를 하는데, 못난이 귤은 도매하는 분들도, 농협에서도 상품 가치를 쳐주지 않기에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귤이 못난이가 되는 이유는 농사짓는 80~90대의 어르신들이 많은데, 약을 꼭 쳐야 하는 시기에 아예 아프셔서 아무것도 못하고 시기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다른 소매업자들은 본인 밭의 귤을 팔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은 직접 파실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냥 나무에서 썩어 그대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건 귤을 예쁘게 키우려고 약을 치는데, 그 약을 안 치면 귤은 더 달고 맛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소매로 판매하는 귤은 너무 달아서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좋은 귤만 가져간다고 저를 타박하기도 하시지요. 세상에 고객이 너희 고객밖에 없냐고 할 정도로 실은 제가 유난을 떠는 편이긴 합니다. 귤 한 박스에 120알에서 완전 꼬맹이는 200알 정도 들어가는데 그걸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만져보며 판매하고 있거든요. 


목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귤 아가씨 떴다!
처음에는 못난이 귤을 소매로 판매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귤이 못생겼다며 귤로 얼굴도 맞아봤으니까요. 그때는 진짜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못난이 귤의 참 맛이 입소문을 타서, 화력이 무섭다는 맘 카페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 ‘로컬푸드 귤 아가씨’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개시하자마자 귤 아가씨가 돌아왔다며 그 자리에서 5박스씩 쟁여 가시면서 “어머~ 귤 아가씨 왔네! 전화 돌려!” 하시는 분들 덕에 250박스를 이틀 만에 다 팔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목포농협에 직접 귤박스를 들고나가는 날이면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도 전단지를 뽑아서 홍보해 주시기도 한답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저를 인정해 주시니 이 직매장 자체가 저에게는 큰 보람이 되고 있습니다. 

귤라멘


내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보물들
‘귤 라면’을 들어보셨나요? 일본의 영귤 라멘에서 착안하여 만든 것인데, 소매 작업을 하다 보면 손톱에 긁히기만 해도 상품가치가 없어지기에 그런 과일들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디저트를 가장 선호하니 ‘귤 에끌레어’도 만들어보고요. 물론 시도했다가 실패한 ‘귤 몽블랑’도 있습니다. 소매판매는 실제 소비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기에 너무 좋습니다. 하루에 500개가 넘게 팔리는 ‘풋귤 수제청 키트’도 고객들과 이야기하다가 나온 제품이고요.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만든‘뱅쇼키트’도 고객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답니다. 
딸기 같은 다른 과일들은 케이크 등의 디저트로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귤은 유독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귤 can anything!’이라는 저만의 해시태그를 가지고 ‘레몬딜버터’, ‘황금향 파운드케익’, ‘레드향 크렘당쥬(프랑스 디저트)’ 등 다양한 활용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귤이 하루에 수백 톤씩, 정말 심할 때에는 백만 톤까지도 버려진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이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시작한 저의 이런 다양한 시도가 나비효과처럼 어느 날 누군가가 따라 하면서 언젠가 귤도 딸기처럼 활용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저는 새로운 요리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귤 에끌레어


나만의 아지트 ‘또시온LAB’ 카페를 오픈하다.
제가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귤 제품들을 본격적으로 판매하려면 반드시 집이 아닌 허가된 장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올해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의 콤플렉스이기도 했던 부모님빽을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벗어나 보고자 처음으로 저 혼자 오롯이 도전해 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부모님 몰래 해보겠다며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 카페 공사는 바닥에 에폭시를 깔다가 아버지께 걸렸고요. 대출받는 것을 몰라 작년에 번 돈을 그대로 계좌이체 몰빵해서 모든 걸 다 일시불로 처리하고 났더니 인테리어를 이제부터 해야 하는데 통장 잔고는 텅 비어있답니다.(웃음) 요즘 카페들은 인테리어가 절반 이상 차지하고, 손님들이 예쁜 공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입소문도 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럴만한 게 전혀 없으니 시작부터 망한 것 같아요. 카페는 현실이더군요. 
하지만 저에겐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기에 한편으로는 카페도 여전히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공장에서 소매 제품들 작업을 하느라 땀 뻘뻘 흘리며 고생했다면, 이제는 에어컨 틀어놓고 시원하게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천국인가요. 겉으로는 망한 카페이지만 안에서는 미친 듯이 바쁜 카페이지요. ‘귤 can anything’도 바로 이 또시온LAB에서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환상적인 제주여행을 위한 꿈
지금의 카페는 3년 정도 연습용으로 시도해 본 후, 열심히 입지를 쌓아서 저희 과수원 밭 구석에 본격적인 카페를 차리고 싶습니다. 창문 너머로 한라봉 밭이 보이고, 한라봉 따기 체험을 한 뒤, 제가 직접 딴 과일로 다양한 디저트도 만들어보고, 레드향, 황금향, 천혜향 등 다른 과일들도 맛볼 수 있는 기회도 드리고요. 그렇게 하면 귤만 따고 끝이 아닌, 좀 더 알찬 제주도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 여름에 과실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디저트 클래스 하는 분들을 섭외하고, 제주도 고사리도 같이 따러 다니며 팜파티도 진행해 보고 싶어요. 실제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이니 얼마든지 더 크게 꿈꿔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사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이것들을 다 말씀드리려면 밤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답니다.

 

또시온 대표 오윤선
010-4754-2888
blog.naver.com/yoonseun0407
인스타@ddosy_on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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