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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알아가는 드로잉 시간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 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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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0]

 

마음을 알아가는 드로잉 시간

 

Photo by  Heather McKean on Unsplash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알록달록 귀여운 지우개를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너무 예뻐서 보물 상자에 고이 담아두었죠.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봤는데 여섯 달쯤 지났을까요? 조심스레 꺼낸 지우개는 찐득찐득해져 케이스에 붙고 엉망이 돼서 무척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우개를 오랫동안 그대로 두면 녹아내려 버린다는 걸 몰랐던 거죠.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보고 알아가지 않으면 온전하게 지켜낼 수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소중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운 대상이 있으세요? 어쩌면 그 대상이 ‘나의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마음을 알아가는 1단계 - 시선 가져오기 
작년부터 육아로 힘든 엄마들을 위해 힐링 드로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죠. 하지만 저희가 드로잉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드리는 일입니다. 
“오늘은 어떤 아침을 보내셨나요? 마음의 컨디션 점수를 알려주세요.” 
“4점이요, 아이 준비물을 깜빡하고 못 챙겨서 열린 문구점 찾아 정신없이 뛰어다녔어요. 그러고 보니 아침도 못 먹고 책상 앞에 앉았네요.” 
“9점이요, 오늘은 남편 찬스로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그림 그릴 수 있게 됐어요. 이 시간에 혼자 커피숍, 얼마만인가요.”
마음 컨디션을 묻고 답하는 동안 ‘내가 분주한 아침을 보냈구나,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쉼을 갖게 되었구나.’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어머… 오래간만에 제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네요.” 
순간, 아이가 태어난 뒤로 이름 세 글자가 제대로 불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때론 다른 사람에게 불리는 호칭이 내 정체성이 되곤 하죠. ‘아기 엄마 아닌 나 자신으로 보내는 시간’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외부로 퍼져 있던 시선을 나에게 가져오고 나면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자극에 반응하고 살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좋은 부모, 괜찮은 배우자, 인정받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집중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보세요. 나에게 멈춘 시선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잔잔하고 차분한 마음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마음을 알아가는 2단계 - 천천히 자세히 보기
그림을 그릴 때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는 ‘천천히 자세히 보기’입니다. 
여기 장미 한 송이가 있습니다. 이 꽃을 그냥 볼 때와 그리기 위해서 볼 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흔히 볼 수 있는 장미지만 그리기 위해서는 뒤집힌 꽃 잎, 겹겹이 모인 이파리, 꺾인 꽃받침 하나하나 더 집중해서 보게 되겠죠. 자세히 본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많은 것들 중에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거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죠.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한꺼번에 떠오르는 복잡한 마음들을 하나씩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올라올 때, 스스로 다그치기보다 그저 ‘내가 지금 속상하구나, 정말 잘 해내고 싶었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보다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고 그냥 잘하고 싶었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요? 

마음을 알아가는 3단계 - 생생하게 기억하기
힐링 드로잉의 하이라이트는 채색하기입니다. 다들 펜으로 그려진 밑그림에 알록달록 색을 입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거든요. 생동감 넘치는 색으로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지치고 무기력했던 마음에도 조금씩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색은 감정을 담고 있어서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파동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고요하고 차분하게 비워냈던 마음을 채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채색이 완성되면 내가 많은 시간 머무르는 공간, 잘 보이는 장소에 작품을 전시해요. 한껏 채워진 마음을 자주 보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죠. 마음이 다시 지치고 힘들어질 때, 충만한 마음을 담은 우리의 작품은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 여행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바웃 타임>을 떠올려봅니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놓쳤던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는 완벽한 능력 같아 보이지만 수차례 시간을 되돌렸던 주인공은 결국 시간 여행을 멈추기로 마음먹습니다. 현재를 ‘다시 되돌리지 않아도 될’ 행복으로 채우는 것이 가장 멋진 시간 여행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죠. 오늘 함께 나눈 현재의 나에게 시선을 가져오는 것, 마음을 천천히 자세히 바라보는 것, 충만한 마음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그러한 시간 여행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할 2022년 또한 되돌리지 않아도 될 소중한 시간으로 채울 수 있도록 마음을 천천히 공들여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힐링 드로링 시간에 그린 엄마들의 작품들

재밌어요~!!! 옆에서 응원해주는 아이가 있어 더 행복하네요^^ 오늘도 제 꽃은 한 아이의 행복을 위해 오려졌답니다~ 또 그려볼랍니다!!

 

벌써 마지막 수업만 앞두고 있다니 아쉽네요 오롯이 저만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어 수업이 재미있고 그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수업도 행복한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꽃을 이렇게 세심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애들 없는 동안 어떻게 하면 더 예쁠까? 느긋하게 칠하는 시간이 평화롭고 좋네요.

 

리네아스토리 대표 김민정, 조세화
linea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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