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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능가할 것인가?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 2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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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역사 이야기]

 

  스승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능가할 것인가?  

 

전 세계가 서양식문명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양식 대학이 설립되고, 서양식 주택이나 투표와 같은 일상적,사회적 삶의 방식을 그대로 수입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서양을 단지 겉으로만 받아들이다가 2차대전에서 된통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있습니다. 또 현재의 중공은 거기에 더해 아예 서양쓰레기인 공산주의(혹은 개인의 책임이 증발된 사회주의)라는 정치체제까지 받아들여서, 중국의 오래된 전제주의적 전통을 병합시켜, 괴물 같은 정치체제를 만들어 14억의 인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정신 나간 짓을 전 세계에 벌일 것이며, 바로 옆에 사는 우리는 어떤 피해를 볼까요? 또 우리 북쪽에는 거의 천년동안 정치적 전통이라고는 폭력적 전제군주제에다 공산주의까지 경험하고도, 스스로는 늘 서양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정체성 자체가 혼란스러운 러시아가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뿌띤 같은 자가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지만, 70% 이상의 국민 지지를 얻는다고 하니,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염려됩니다. 
그러면 이 세 무시무시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양과 동양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세 나라 사이에 끼인 한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질문은 단지 이 세 나라와 초강대국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줄타기할 것인가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폭넓은 우리 삶의 총체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서양에서 이어받은 기술과 기업에 한국식 빨리빨리와 솔직성을 병합시켜 세계적 성공을 거둔 삼성,현대,SK,LG 등이나, 서양적 문화형식을 한국적 정서에 접목하여 코로나 시절에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BTS나 오징어게임 같은 성공에 만족하면 될까요? 이대로 서양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좀 더 빨리 하면 모든 것이 잘 될까요? 서양인들은 세계를 제패한 자신들이 만든 것들에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조금 더 좁혀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더 근본적으로, 즉 동서양을 어떻게 종합할 것인가 하는 것을 다룰 수 있습니다. 우리의 스승을 제자들은 어떤 식으로 이어갈 것인가? 스승을 그대로 따라하고 답습하기만 하는 습관이 있는 우리에게는 답이 이미 나와있는 것 같기 때문에, 물어보기 싫어할 질문입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동양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제자였다가 시간이 지나서 동료가 되는 것이 일상이며 심지어 스승을 능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서양의 길을 갈 것인가? 이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음악사에 있었던 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라는 천년에 한 번 나올만한 음악가를 이어, 백년에 한 번 나올만한 두 명의 걸출한 음악가가 등장했습니다. 이 둘은 위대한 스승의 길을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는 스승의 길을 그대로 따르려고 했지만, 다른 하나는 스승의 길을 확장하여 아예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 겁니다. 전자는 그의 음악적 삶이나 심지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보수성이 농후하게 보이는 초상화의 주인공인 브람스입니다. 후자는 바람둥이에다 풍운아적 기질로 격렬한 삶을 살았던 봐그너입니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자신을 지켜보는 베토벤의 흉상이 있는 방에서 작곡하며 가끔 브람스는 이 흉상을 올려다보곤 했을 것인데, 이 때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요? 스승인 베토벤은 음악계에서 음악적 감정과 감성의 흐름을 추구하는 ‘절대음악’(absolute music)과, 정반대로 명백한 주제를 드러낸 ‘표제음악’(programme music) 모두를 작곡하는데 매우 탁월했습니다. 잘 알려진 표제음악의 사례는, 절친인 ‘루돌프 공작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이라는 주제가 선명한 ‘피아노 소나타 26번’(Les Audieux ‘이별’1809~1810)이나, 자연의 변화무쌍함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깊이 표현한 ‘교향곡 6번’(Pastoral‘전원’1808)같은 곡입니다. 브람스 생애의 중기 이후로 갈수록, 음악계는 H.베를리오즈(1803~1869)의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1830)같은 곡에서 드러난 새로운 음악조류인 ‘프로그램 뮤직’(programme music)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브람스는 이런 조류를 거부하고, 정반대 방향인 절대음악의 전통을 따라가며 후기낭만파 음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브람스의 C단조로 시작하는 ‘교향곡 1번’은, 같은 단조로 시작하는 베토벤의 유명한 ‘교향곡 5번’을 닮았고, 투쟁에서 승리로 전환하는 부분에서는 두 음악 모두 C장조로 바뀝니다. 그 피날레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1822~1824) 피날레 주제의 흔적도 보입니다. 과연 그런가를 브람스에게 직접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정말 그다운 것이었습니다. “얼간이라도 그것을 알 수 있지.” 그래서 이 곡이 초연되자(1876) 사람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고 여길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댈 때, 매우 전통적이며 스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우 자기비판적이었던 이 음악가는 아마 자기가 스승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를 처음 만난 선배였던 R.슈만(1810-1856)이, 베토벤을 이을 젊은 작곡가가 나왔다고 음악전문지에 박수치며 그를 소개했을 때에, 이것이 그를 기분 좋게 하였다기보다 평생의 짐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 과분한 목표치에 내가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 하며, 낑낑거리고 애쓰며 살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지향적인 점이 잘 나타나는 사례가 바로 ‘-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잘 썼다는 것입니다: ‘헨델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1862),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1863),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1873).
그렇지만 안달복달하며 어떻게 하든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을 추구하는 유대인 특유의 기질을 따라서, 7음계 대신에 12음계라는 매우 독창적 시도를 한 A.쉔베르크(1874-1951)는 기질적으로 전혀 반대편에 있는 19세기를 넘어 20세기에 브람스를 이렇게 칭찬하며 회상했습니다. 세 번에 걸쳐 브람스를 ‘하모니의 풍성함’ 과 ‘톤의 다양성’ 때문에 매우 혁신적 작곡가로(‘Brahms the Progressive’) 칭찬하였던 것입니다(1933,1947,1948). 즉 전통을 지키는 가운데도 매우 혁신적일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한 겁니다. 이런 점은 J.S.바흐와 유사합니다. 바흐의 젊은 시절의 유행이었던 바로크 시대가 지나가고 고전파 시대가 시작되어도, 그는 여전히 대위법과 같은 음악적 전통에 근거하여 음악의 기본과 본질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였습니다. ‘음악에의 헌정’(Musikalisches Opfer BWV 1079)이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ue BWV 1080) 같은, 바흐의 대표적인 후기작품들은 모두 음악의 본질을 끝까지 파보려한 것이어서 후대 작곡가들이 끊임없이 연구하는 음악의 마르지 않은 샘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그 직후 세대에게는 무려 100여 년 동안 잊혀졌지만, F.멘델스존(1809~1847)에 의해 극적으로 찾아져 알려지므로, 지금은 음악의 아버지로 누구나 아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브람스도 이와 유사하게 본질을 과거에서 찾으려고 했을 겁니다.‘해 아래서 새 것이 없나니.’


리햐르트 봐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스승의 어깨에 올라탈 뿐 아니라, 그 보다 더 높이 나가려는 전형을 보인 사람이 바로 봐그너였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C.M.von 베버(1786~1826)와 같은 낭만주의적 음악으로 시작했지만, 곧 그것을 버리고 기존의 오페라까지 넣은 ‘종합예술’(Gesamt-kunstwerk)로 자신의 작품을 명명하고 혁신을 추구하며 자신의 작품만 연주할 전용극장(Bayreuth Festspielhaus)까지 마련했습니다. 즉 거대한 산과 같았던 베토벤이 남겼던 둘째 전통인 표제음악(programme music)을 극도로 발전시키려고 한 겁니다. 
그가 이런 음악적 경향을 가진 데에는, 일찍 죽은 친아버지를 대신한 드레스덴 극장의 연기자 겸 극작가였던 의붓아버지 L.가이어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9세 때 그는 C.M.von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Der Freischuetz)에 내재한 고대 독일의‘고딕적 요소’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 때는 극작가가 될 야망을 가져, 1826년에 세익스피어나 괴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문학을 넘어서 표현을 아름답게 종합하는데 음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음악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출발은 음악이 아니라 문학이었던 셈인데, 이것이 그가 표제음악쪽으로 방향을 고정한 원인이었던 겁니다. 또 그는 존경하는 스승이자 선배였던 베토벤이 지휘하는 ‘교향곡 7번,9번’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 중에 9번은 그의 음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고 심지어 이것의 피아노 버전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이제 첫째 요소인 ‘문학’과 둘째 요소인 ‘음악’을 병합한 후에 드라마의 소프라노였던 Wilhelmine Schroeder-Devreint의 연주가 그의 마음에‘거의 마귀적 영향’을 미쳐서, 셋째 요소인 ‘오페라’를 덧붙이는 것을 자신의 이데아로 삼았다는 것을 자신의 삶의 회고록인 ‘나의 생애’(Mein Leben)에서 밝혔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행적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영상,음성 기술의 진화와 더불어 새로운 예술 창조에 기초를 놓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살던 격동적 사회현실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으며, 넷째 요소인 ‘철학/정치사상’을 덧붙이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종합한 예술을 생각하다 보니, 철학, 특히 당대의 사회주의 혁명과 정치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54)를 만들 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칸트 이후로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인 A.쇼펜하우어(1788~1860)의 주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9)였습니다. 이 때는 음악적으로는 고전파적 ‘지성’(Vernunft)이나 낭만파적 ‘감성’(Gefuehl)은 이미 지났으며, 지금부터는 ‘의지’(Wille)의 시대가 펼쳐지리라는 예감을 적극 드러낸 겁니다. 온 세상과 그 역사는, 각자가 절대화시킨 의지들이 각축을 벌이는 충돌판이 될 것이 빤한 이치였습니다. 그 이후로 ‘초인’사상을 주장하다 나중에는 스스로를 초인으로 여기며 자살해 버린 F.니체(1844~1900)와, 그처럼《나의 투쟁》(Mein Kampf 1925)이라는 유명한 책을 쓰며 전 지구에 엄청난 고통을 야기한 히틀러가 걸어갈 길을 미리, 음악적,독일적으로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 바로 봐그너인 것입니다. 심지어 히틀러가 실행하게 될‘반유대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놓은 ‘음악의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 1850)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다시 우리의 작은 질문에 돌아가 봅시다. 우리 앞에 만약 베토벤이라는, 천년에 한번 나올만한 음악 스승이 있을 경우, 브람스와 봐그너의 길 중에서 어떤 길을 택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 음악과 역사보다 더 근본인 ‘종교적 요소’를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나오는 종교적 요소(‘우리 아버지’,‘형제’)는 기독교와 함께 당대의 모든 계몽철학,낭만주의(자유,평등,박애)의 철학적 요소를 혼합한 겁니다. 즉 본래적 기독교가 아니라 혼합주의적 종교 기초 위에 음악이 적용되어 작곡된 것입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에 이어서 등장한 혁명철학(사회주의,공산주의)의 한계 혹은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지난 2백여 년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만약 위선적 종교로 변질된 기독교(로마교,개신교,러시아정교) 대신에, 자기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인 예수를 정말 따르는 종교가 실제로 역사에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위대한 베토벤을 배출한 나라가, 온 세상을 극악한 상태로 만든 사탄의 직계 하수인인 히틀러를 탄생시킨 나라로 변질되는 것을 막지 않았을까요? 브람스나 봐그너가 갔던 두 길이 아니라, 스승인 베토벤 자신의 한계조차 음악적으로 뛰어넘는 제3의 제자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바로 그 예수가 제자들을 크게 격려하면서 한 말을 따라서 말입니다 :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요한복음 14장 12절).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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