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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다시 시작된 귀농일기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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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명의 만평팜 스토리 1]

평창에서 다시 시작된 
귀농일기

9년 전, 전남 무안에서 양파농사를 야심차게 지어 본 것이 엊그제처럼 기억납니다. 좌충우돌하며 농사초보가 시작했다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 3~4년간 손을 놓고 있었죠. 다른 일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농사에 대한 미련,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지 충주와 서산 등 농장에서 일을 하며 농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차에 일손을 돕기 위해 평창을 방문하게 되었고 작년 지인을 통해 평창에서 제2의 귀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고랭지 부추 재배 작목반이 막 형성되고 있었기에 마을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 함께 배워가며, 공판장에 납품 하면 유통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 부추재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종을 공동으로 키워 옮겨 심을 때도 함께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자라는 부추를 볼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조리며 자세히 보고, 오래보려고 노력하니 예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부추 모종을 막 심어 놓자 갑작스런 꽃샘추위가 와서 어린 모종에 살얼음이 오면 어찌해야하나 발을 동동거리며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죠. 다행히 부추는 추위에 강한 성질이 있어 기온이 오르면서 얼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고추 모종일 경우는 얼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휴~ 부추로 잘 선택 했구나’하고 스스로 위안을 하곤 했습니다. 

첫 회 수확하며 출하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죠. 작업장과 기계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잘 키운 부추를 상품으로 출하하지 못하고 베어 나누어주거나 버리게 될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빠른 결정과 타이밍을 놓친 큰 실수였죠. 스스로 일을 진행하고 책임지며 하다 보니 제 안에 오랜 습관처럼 밴 느슨하고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일을 망칠 수 있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또 손이 빠르지 않아 부추 작업이 있는 날이면 새벽에 한 시간 먼저 작업장에 도착해 일 하러 오는 외국인들보다 먼저 시작하곤 했죠. 공판장으로 나가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제때에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을 섭외하지 못해 혼자 끙끙거리며 출하해야 하는 하루는 얼마나 고된지요. 농번기에는 일손의 귀함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 일이 끝나면 고단함도 있지만, 오늘 분량을 잘 마쳤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땀 흘린 농부의 보람이죠. 더욱이 다음 날 상품에 대한 좋은 피드백과 경매가가 잘 나오면 더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듭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작년 평창에서의 귀농 1년은 주변 농부님들의 모습만 보고 열심히 따라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놓치고 흘려보낸 것이 많았습니다. 먼저는‘사람’입니다. 부추를 보듬듯이 스쳐갔던 사람들을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도록 노력했다면… 하는 후회가 듭니다. 함께 수확 때면 와서 부추 작업을 해 주었던 태국인 로이, 위, 그리고 대화면 집하장까지 부추 상자를 트럭에 옮겨 주셨던 이웃 방초사장님, 부추농가에 가서 일을 같이 했던 회원들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많이 도와주고 격려하며 농사의 끈을 이어가게 한, 바로 작년 연말 고인이 된 신 농부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올해는 그래도 ‘꿈’을 꾸어봅니다. ‘내가 어떤 농부가 될까?’,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주변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등 말입니다. 눈에 보여지는 것에 연연해하며 순간순간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놓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가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가며 하려고 합니다. 새해 들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아 더욱 허리띠를 조이게 됩니다. 사실 1년 부추농사를 경험해 봤으니 잘 하겠지? 생각 할 수 있지만, 제겐 엄청 부담이 됩니다. 다시 시작한 귀농 2년 차를 어떻게 맞이하고 후회 없는 해로 만들어갈지 말이죠. 지난해 부추를 타지방 공판장으로 출하해 보았습니다. 물량이 많이 쏟아질 때는 도매 경매가격이 매우 낮습니다. 매일 경매가에 따라 농부는 희노애락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아니라 농산품의 상한가선을 규정하고 내보내는 방법은 없을까도 고민하게 됩니다. 또한 내가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여 소비자에게도 공급한다는 마음으로 친환경농업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농지매입과 자금 마련을 위한 귀농 창업자금 지원도 알아보며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발을 움직여 살아있는 땅을 만드는 수고와 노동이 있어야 생명력 있는 작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새해는 기대하면서도 부담감이 큽니다.

제가 있는 곳은 기본 해발이 350m이니 조금만 올라가도 500m, 700m 고지입니다. 그러다보니 고랭지 배추, 부추, 사과 등 해발 높은 곳에서 생산하는 농산물만의 맛이 있습니다. 물론 농부들의 수고와 정성어린 마음이 담겨져 있지만요. 그래서인지 공판장에 출하할 때 담당자가 평창부추를 더 보내줄 수 있느냐며 초보 농부에게 전화를 해 주었을 때는 무척 고맙고 격려가 되었습니다. 농부의 마음은 최고의 상품으로 최고의 맛을 인정받을 때 수고와 힘든 어깨가 가벼워집니다. 또한 그에 상응한 경제적 보상도 이루어져야겠지요. 현장에서 더 피부로 경험하며 농촌의 현실이 좀 더 행복해지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농부 한 분 한 분이, 그리고 농촌 공동체 일원이 되어져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행복해 하는 농촌을 꿈꾸며 말이죠. 

 

하얗고 예쁘게 핀 부추꽃, 부추씨앗을 받기 위해 꽃을 피우게 함

 

공판장에 내놓을 내 자식같은 부추

 

마지막으로 독자여러분들에게 제가 부추농사를 지으며 읊조렸던, 일명 저에게는 노동시가 되겠군요. 이 시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풀 꽃 
        - 나태주(1945~)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평창군 방림면 만평팜
나선명 010-6312-7770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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