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완벽주의자들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하여

2022년 3월호(14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3. 23. 17:36

본문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3]

 

완벽주의자들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하여

 

세계적인 교향악단들의 내한 공연을 보거나 유명 음악가들의 평전을 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했던 음악가들이 많았다. 20세기 거장들의 음악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지휘자 ‘카라얀’인데, 그의 화려했던 예술 인생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인물은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libidache)이다. 
 
첼리비다케는 카라얀과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활동하면서도 그와는 달리 철저히 상업성을 거부했던 음악가였다. 카라얀은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와 상업화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부와 명예를 함께 움켜쥔 화려한 음악 인생을 누린 반면 첼리비다케는 ‘지휘계의 기인 ’혹은‘이단자’로 불렸다. 토스카니니처럼 암보로 지휘하는 것은 기본이고 광적인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휘어잡았다. 수십 번의 리허설을 통한 혹독한 연습으로 완벽을 추구했고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독설가로 유명한 첼리비다케는 다른 지휘자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고 한다. 카라얀에 대해서 는‘젊은 음악가에게 심각한 독이 될 수 있는 본보기’라고 했고, 로린 마젤에 대해서는 ‘칸트를 읽는 두 살짜리 어린애’라고 했으며 리카르도 무티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교양이 결여된 지휘자’라고 혹평하였다. 오케스트라에 존재하는 사소한 문제점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요구대로 움직이지 않는 단원은 오디션을 통해 가차 없이 교체하는 등 자신이 원하는 연주가 나올 때까지 혹독하리만큼 단원들을 훈련시켰다. 자신의 소신을 결단코 굽히지 않는 당당함을 넘어 독불장군식 행동으로 인해 그는 음악계로부터 늘 고립되었고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카라얀 사후 약 5년간 세상에 잠깐 빛을 보였던 그는 1996년 갑자기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첼리비다케에 버금가는 지휘계의 완벽주의자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였다. 그는 모든 음악인에게 있어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그의 지휘를 입신의 반열에 올려놓는 이유는 양팔로 음악을 만들고 박자를 젓는 지휘가 아닌 그의 존재 자체가 발산하는 음악 때문이었다. 그는 테크닉에 얽매임 없이 음악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였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지나친 완벽주의 성향이 때론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지만 결국 퀄리티 면에서 절대 최상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당대 뛰어난 지휘자를 아버지로 둔 아들 카를로스는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과 동시에 아버지의 아들로서 항상 최상의 지휘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그의 완벽주의 기질과 명성은 그에게 큰 부담감을 안겨주며 나이가 들수록 무대를 꺼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음악계의 완벽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현실 속 직장 생활에서 완벽주의자들은 어떤 평가를 받는지 살펴보고 싶어서다.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나 타인에게 현실과 무관한 기준을 가지고 불가능한 것들을 기대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자신 외에는 모르는 ‘디테일’에 몇 시간씩 투자하고 녹초가 되곤 한다. 경제개발시기에 우리 사회가 아직은 월드 스탠다드에 이르지 못했던 때에는 남들과는 다르게 최상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고 능력 면에서 탁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터널을 지나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되는 요즘 완벽주의자는 생각보다 환영받지 못하는 듯하다. 조직관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완벽주의는 직업적으로 자랑할 만한 특성이 아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완벽주의자는 직장 내 업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동료 사이를 멀어지게 하며 각 부서의 화합도 깨뜨릴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는 함께 일하고 싶은 이상적이거나 선호하는 동료의 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결론도 나왔다. 완벽주의자들은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만, 잘 지내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완벽주의가 아닌 이들은 유능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 관계가 순탄하고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원하는 유형이었다. 위에서 예를 든 지휘자들의 예만 보더라도 음악적 성과는 정말 훌륭하지만 주변인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는 힘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일의 퀄리티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던 완벽주의자들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높은 기준으로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었더니 오히려 조직의 화합에는 도움 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만약 여러분 주변에 완벽주의자 동료가 있다면 그들은 어떤 실패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기 쉽다. 또한 그들은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시도를 꺼려할 수도 있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완벽주의자들에 대한 최상의 해결 방법은 자신의 높은 기준은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만 연결 짓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이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약간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이런 균형이 쉽게 달성되기는 어렵겠지만 완벽주의자들이 자신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떠한 이유로든지 직장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9>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