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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병아리를 키우면 안 될까요?

2022년 3월호(14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3. 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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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병아리를 키우면 안 될까요?

 

유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손에 노랑 병아리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우리도 어릴 적에 학교 앞에서 노랑 병아리를 보곤 했는데, 아직도 그런 일이 있나 싶어 의아해 하면서 “병아리는 왜 데리고 왔어?”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를 키워 닭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작은 두 손으로 병아리를 조심스레 싸안고 온 유진이를 보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아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느껴지는 무심한 말투와 목소리 톤이 좀 높아진 소리에 유진이가 더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은 작은 병아리라고 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생명이라고 여겨져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레 병아리를 살피면서 생사부터 확인을 해야 했다. 

병아리를 손에 안고 어찌할줄 몰라 하염없이 울고 있는 유진이


“병아리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어?” 
“네, 살아 있어요. 삐약 삐약 소리를 내기도 해요.”라면서 병아리를 데리고 온 사연을 들려주었다. 
친구인 지수가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샀다고 했다. 한 마리만 사려고 했는데, 한 마리 값으로 두 마리를 주었다고 했다. 지수는 자기가 두 마리를 다 키우는 것은 힘드니까 한 마리만 데리고 가고, 나머지 한 마리는 유진이에게 주었다고 했다. 병아리 한 마리 정도라면 자기들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했다. “외롭지 않게 두 마리를 같이 키워야지. 한 마리씩 나누어 오면 어떻게 해?”라면서 병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횡설수설했다. 유진이도 친구가 데려가지 못하는 병아리를 받아 오기는 했지만,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집 밖을 한참이나 서성였다고 했다. 혹시라도 다른 친구가 병아리를 잘 키워 줄 수 있을까 해서 묻기도 했는데 그 친구도 엄마가 허락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병아리를 데리고는 왔지만,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듯한 겁먹은 얼굴을 하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엄마가 병아리를 키우지 못하게 하면 어떡하나?’하는 마음이 아주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키울 수 없다고 하는 작은 병아리를 보살필 수 있는데 까지 힘을 다했다. 작은 상자를 꺼내어 집부터 만들어 주었다. 포근한 천을 깔아 편하게 쉬게 해 주었다. 아주 작은 좁쌀 먹이도 주고, 물도 주었다. 유진이는 병아리에게 ‘노랑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는 “노랑아, 노랑아~” 부르면서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노랑이는 계속해서 울어대기만 했다. 유진이는 노랑이랑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노랑이는 잠도 자지 않았다. 방에서 어찌나 크게 울던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밖에 살짝 내다 놓았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가 않아 자주 가서 동태를 살피느라 잠을 못 자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병아리에게 가 보았다. 병아리 울음소리가 안 들려서 병아리도 잠이 든 줄 알았다. 그런데 병아리는 지레 예감을 했듯이 하룻밤을 못 넘기고 말았다. 벌써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유진이가 알면 얼마나 슬플까 싶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그렇지만 노랑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병아리를 데리고 왔을 때 엄마가 왜 깜짝 놀라서 큰 소리를 쳤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죽음에 대해, 생명은 우리가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병아리를 통해 배웠다. 병아리가 살아서 오래도록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유진이가 자기 곁에 작은 생명이 왔다가 홀연히 떠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주 이른 나이였지만, 슬픔, 이별, 죽음에 대해 첫 경험을 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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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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