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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이름 ‘고려’와 영문표기

2022년 9월호(15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2. 1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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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2]

나라이름 ‘고려’와 영문표기


나라 이름 ‘고려’는 태조 왕건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Korea란 영문국호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란 나라 이름은 태조 왕건이 맨 처음 사용한 나라 이름이 아니다. 후삼국의 궁예가 먼저 사용한 나라 이름이다. 궁예는 처음 고려란 나라 이름으로 시작해서 이후 마진, 태봉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데 궁예의 고려도 궁예가 처음 사용한 나라 이름이 아니었다. 고구려가 4~5세기 평양천도를 전후하여 나라 이름을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국호변경까지는 아니지만 4~5세기 고구려는 고려란 나라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고려란 나라 이름을 주로 사용했다. 정리하면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꾼 이후 궁예와 왕건 모두 ‘고려’란 나라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또 Korea란 영문 국호의 유래도 왕건의 고려가 아닌 고구려의 고려까지 앞당길 수 있다.

현 한국사 교과서는 주몽, 궁예, 왕건이 세운 나라 이름을 고구려, 후고구려, 고려라 하고 있다. 일반 한국사 개설서도 마찬가지다. 현 고구려-후고구려- 고려로 이어지는 계승관계를 통해서는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거나, 궁예가 처음 세운 나라 이름이 ‘고려’라는 사실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국호계승의식을 통한 역사계승의식이 드러날 수 없는 구도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국호계승의식이 드러나도록 나라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주몽의 고려를 전고려, 궁예의 고려를 후고려, 왕건의 고려를 고려 또는 통일고려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현실 여건상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적어도 고구려-후고려-고려로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후고구려를 후고려로 바꾸어야 하다.
현 영문국호도 별반 다르지 않다. Goguryeo(고구려)-Later Goguryeo(후고구려)-Goryeo(고려)다. 후고구려는 Later Goguryeo, Hu-Goguryeo, Hugoguryeo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Hugoguryeo의 Hu는 원래 나라 이름이 아니므로 붙여 쓰지 않고 ‘-’으로 이어주는 Hu-Goguryeo가 좋을 것 같다. 다만 ‘후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은 없는 나라 이름이므로 후고려에 해당하는 영문표기는 Later Goryeo 또는 Hu-Goryeo가 좋을 것 같다. 고조선의 영문표기 Go-Joseon도 마찬가지다. 또한 서양인들에게 ‘고려’란 나라 이름이 계속 계승되어 사용된 점을 강조한다면 전고려-후고려-통일고려의 의미를 담아 Former Goryeo-Later Goryeo-Unified Goryeo로도 할 수 있다.
그런데 Goguryeo나 Goryeo의 Go는 실은 예전에 Ko였다. 한글영문표기원칙에 따라 Ko에서 Go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Go로 바뀌다 보니 Korea라는 영문 국호와 Goryeo라는 영문 국호의 상관성은 더 엷어졌다. 영문 국호 코리아가 ‘고려’에서 유래했는데 코리아의 코는 Ko, ‘고려’의 고는 Go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Korea의 첫 알파벳이 C였던 적은 있었지만 G였던 적은 거의 없다. Korea와의 연관성을 고려한다면 한글영문표기법에 고유한 나라 이름은 예외를 적용하여 Koguryeo나 Koryeo도 고려해 볼 만 하다. 고려대학교도 Ko를 쓰지 Go를 쓰지 않는다.

Former Koryeo(전고려)-Later Koryeo(후고려)-Unified Koryeo(통일고려) 로의 영문표기는 Koryeo라는 나라 이름이 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있었고 통일된 고려도 있었고 영문 국호 Korea로 계승되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영문표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는 효과도 있다. 고구려가 ‘고려’로 바꾼 나라 이름이 한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계속 사용되었고, 현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 코리아로 계승되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고려’의 역사가 어느 나라의 역사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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