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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 나디아와 마리사의 한옥살이

2022년 9월호(15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2. 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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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 나디아와 마리사의 한옥살이

 

한국어는 어렵지만!
아침마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대문을 나가던 나디아와 마리사의 목소리가 한옥 마당을 가득 채웠다. 2022년 미국 국무부 청소년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되었다. 40일간을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로 지내다 돌아가니 더 이상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어려워했다. “ ~에 갔다 오겠습니다!”보다는 “ ~에 다녀오겠습니다.”로 말하는 것이 더 예의 있는 듯해서 가르쳐 주었지만,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어른들께는 존댓말로, 때로는 자기를 낮추는 말 등이 있다는 것과 한자에서 온 말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영어를 할 때 발음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몰라요”를 “모라요”로 받침이 있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쌍디귿과 쌍비읍 등 경음 발음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우리말을 외국인이 배울 때는 이리도 어렵구나!


한국어와 한국문화 즐겁게 배워요!
나디아는 미시시피주에서 왔고, 마리사는 인디애나주에서 왔다. 딸 유진이와 비슷한 또래여서 같이 지내면 서로 도움이 되겠다 싶어 홈스테이 코리아에 신청을 해서 오게 되었다. 주중에는 한양대학교 어학당에 가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웠고, 주말에는 DMZ, 경복궁,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강남이나 홍대도 가고, 한국어 말하기를 도와주는 대학생 언니를 만나는 등 다른 곳에 갔다가 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 좀 늦는다 싶으면 지하철을 거꾸로 타고 갔다가 돌아온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이 익숙해진 듯 이곳저곳 맛집도 찾아다니고, 쇼핑도 하고 한국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 즐기고 다녔다. 어느 날 “TXT 콘서트에는 꼭 가고 싶어요.”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 좋아하는 그룹이 콘서트를 한다고 신이나 있었다. 그런데 티켓을 구하는 것은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고 걱정을 했다. 티켓을 팔기 시작해 거의 1분도 되기 전에 매진이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PC방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국 PC방은 처음 가니 서툴까봐 딸 유진이가 따라갔다. 일찌감치 가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마리사는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나디아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낙심에 빠져 있는 나디아를 유진이가 겨우 표를 구해 주는 바람에 얼굴이 다시 펴졌고, 콘서트에 가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은 한국어 공부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음식의 재료와 이름 익히기, 젓가락질 연습 등으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저는 참외를 좋아해요!”를 시작으로 과일 이름들을 외웠다. 포크보다는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도록 했는데, 젓가락질이 서툴다 보니 과일이 미끄러져 포크처럼 찍는 게 편할 때도 있었다. 젓가락으로 “찍어서 먹어!”가 영어로 궁금해서 물었더니 “Stab it!”이라고 했다. 우리도 짬짬이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했다. 
이웃 사람들께도 나디아와 마리사를 인사시켰다. ‘방선생 웃음밥상’ 사장님은 아주 반가와 하면서 맛난 빈대떡과 수박으로 대접을 해 주었다. 그리고 행복을 찍는 사진사는 창경궁에서 모델처럼 예쁘게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동네에 맛난 도너츠를 파는 곳이 있는데 나디아와 마리사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장 도너츠를 한 아름 사주신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의 편집장님, 교회의 선생님들과 친구 등 모두가 환대를 해 주었다. 


외교관이 되고 싶은 나디아
나디아는 베지테리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식성이 까다로와서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집에서도 거의 베지테리언처럼 먹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디아는 가족 중에 엄마만 빼고, 모두가 베지테리언이어서 아빠가 주로 음식을 한다고 했다. 목사인 아버지는 빵도 잘 굽고, 야채로 된 요리들을 맛있게 해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집에는 게스트룸도 있으니 유진이와 같이 와도 된다고 해서 머지않아 나디아 집으로 미국살이를 하러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류에 관심이 많아서 BTS를 좋아하고, 다른 가수들의 한국 노래까지도 잘 알고 따라 부를 정도였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는 매워하지 않나 걱정이 되어 물으면 “고추장을 사서 언니하고 한국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어요.”라고 했다. 


좋은 약을 만드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리사
마리사는 나이도 한 살 어리기는 했지만, 수줍음을 탔다. 처음에는 자신이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자신감이 없었다. 무엇인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해도 되요?”라고 말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대단한 질문을 하나 싶어 귀를 기울이면 그냥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마리사, 집에서는 학교에서처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하고 싶은대로 말 해”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편하게 말했다. “마리사도 한국어 발음은 좋아”라고 해 주었더니 자신감이 생겨서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한국어 말하기 시험이 있을 때는 예상 질문을 미리 준비해서 연습을 했다. 선생님이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고 했다. 베트남 출신의 엄마가 약사인데,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좋은 약을 만드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자기의 일을 꼼꼼히 잘 챙기는 성격이라 꿈도 꼭 이루어 낼 것 같았다.  


나디아의 코로나 확진 소동 중에도 한국이름 짓기를!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던 나디아가 아프다고 하더니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 집안 식구들과 학교 관계자들 모두가 초긴장을 했다. 당장 보건소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진짜 확진이 되면 어찌하나? 걱정이 되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있어 친절하게 모든 것을 도와주는 바람에 검사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속으로는 엄청 놀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나디아 괜찮아! 금방 나을거야”라고 안심을 시켰다. 나디아는 일단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혼자 외롭게 격리하는 동안 병이 깊어질까 걱정이 되어 자주 전화를 했다. “별로 아픈 곳은 없어요. 그런데 한옥으로 빨리 가고 싶어요. 유진이 엄마와 아빠, 유진이, 유진이 사촌 오빠랑 모두 보고 싶어요.”라고 징징거렸다.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고 목만 조금 아프다고 해서 겨우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그 와중에 나디아는 자기 한국이름 자랑을 했다. 성은 ‘임’, 이름은 ‘나비’라고 했다. “임나비라는 이름은 예쁜데, 고양이 이름에 나비가 많아”라고 알려 주었더니, “네? 그럼 저는 고양이네요!”하면서 농담까지 했다. 마리사 역시 한국 이름이 갖고 싶다고 했다. 마리사의 성은 ‘Roundtree’라고 했다. 특별한 성이었다. 머리를 짜내어서 ‘tree’가 있으니까 ‘목(木)씨’라고 해야 하나? 했지만, 한국에서도 귀한 성이고 발음하기도 어려워서 마리사의 ‘마’를 성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름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나디아가 ‘혜화’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 우리 동네 이름이 혜화이니까 혜화동에 살았던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혜화라고 해도 좋겠네.”라고 했더니, 마리사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마리사의 한국 이름은 ‘마혜화’가 되었다. 한국어로 된 이름을 짓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온라인에 ‘한국이름 짓는 가게’를 만들자고까지 하니 말이다. 그리고 내 영어 이름도 꼭 지어 주어야 한다고 했더니, 돌아가는 날 ‘샤론’이라는 예쁜 영어 이름을 선물로 남겼다. 


“미국에 다녀오겠습니다!” 
올 때도 선물을 잔뜩 사왔더니, 가면서도 선물을 또 사왔다. “학생들이 돈도 없는데 이런 것을 뭣하러 사왔냐?”고 했더니, 딸 유진이가 그런 말 하면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줄 안다고 무조건 고맙다고 하는 것이 예의라고 일침을 가했다. 마리사는 또박또박 한글로, 짧은 편지를 써서 주었다.
‘한옥이 너무 아름다워요! 한옥에서 지내게 되어서 한국문화를 더 많이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어 배우는 것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메로나를 같이 먹었던 것도 정말 즐거웠어요. 보고 싶을 거예요!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 드려요. 마리사 올림’ 
유진이는 유진이대로 자기가 직접 제작한 엽서에 영어와 한국어로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서 전달했다. 나는 내가 쓴 책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여행 한다》를 선물로 주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로도 꼭 번역해달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나디아, 미국에 가니까 좋지?”, “아니에요. 엄마는 보고 싶지만, 미국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미국에서 12학년이니 우리나라의 고3이다. 한국에 와서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배우느라 비교적 여유롭게 지냈다. 그런데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대학 진학 준비를 해야 하니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디아, 조금만 참고 노력해서 가고 싶은 대학에 입학하고,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다시 오면 되니까 슬퍼 하지마!” 그리고 오늘은 “미국에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해!”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한참 후에야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미국에 다녀오겠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유진하우스 김영연 대표
yykim65@daum.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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