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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밤바다 ’ 유감 이순신 놀이, 소녀상 놀이

2022년 10월호(15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2. 1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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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행수필]

 ‘여수 밤바다 ’ 유감
이순신 놀이, 소녀상 놀이

 

  올해 추석 여수 밤거리와 바다의 풍경에서 솟아오르는 환상적 보름달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며 우리를 애태우며 감질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밤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중국산 프로펠러 장난감은 두둥실 뜬 달이 있는 하늘과 우주를 향하고픈 마음을 상징이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감동의 대미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순신과 관계된 ‘이순신 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순신 동상’과 ‘승전한 대첩’ 이름들과 ‘거북선’, 그리고 둘째는 저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옆에 놓인 빈 의자에 같이 앉아보라고 초청하는 듯한 ‘소녀상’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놀랍게도 같은 대상인 왜군,왜놈,일본인이 우리를 끝장내려고 의도적으로 가한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동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선조는 400여 년 전의 ‘먼 과거’에는 방어에 성공했으나, 110~80여 년 전의 ‘가까운 과거’에서 실패했다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기는 합니다. 여수시가 의도적으로 이런, 연관되지만 상반되는 과거들을 배열해서 생각하게 만든 점은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점에서 아쉽고 안타까울 뿐 아니라,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과거를 생각하면서, 미래에도 지정학적으로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이 이상한 일본,일본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생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순신이 이룬 업적을 통해 전 국민이 이순신을 영웅으로 우상시하지만, 본인은 수동적으로 박수만 치는‘이순신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소녀상 건립을 추진함으로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진 빚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받아야 한다는‘소녀상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유감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이순신 동상과 거북선, 그리고 남해안 어디를 가나 이순신이 대첩을 거두거나 심지어 들러만 가도 연관성을 찾아 관광과 연결하려고 한 기관과 기업의 태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남해안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문화,역사기행을 하면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지겹도록 들으며, 또 거북선 모형을 신물 나도록 경험하는 것이 너무 과하다는 염려가 들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세종대왕과 함께 거의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외계인 수준의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이룬 업적들을 우리가 감사함으로 칭찬하고 그 역사를 되새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대들은 실제로 많은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일으킨 수군의 혁신을 본받아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일본이 우리를 먹기까지 삼도수군통제사가 무려 100대 이상을 이어갔지만, 외부세상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켜 또 다른 침략을 할 것인가를 하나도 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통영 세병관에 역대 통제사들의 비석이 우측에 있는데, 저에게는 수치스러운 이름들과 비석들로만 보였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순신을 숭상하는 것과 손흥민 개인이 브랜드가 되어 만든 물품(NOS, son을 거꾸로 만든)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는 대중적 관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두 태도가 동일한 것은, 어떤 위대한 것을 성취한 인물을 내가 존경한다고 표현함을 통해, 그 인물과 나를 동일시하려는 위대함에 무임승차하려는 심리 때문이 아닐까요? ‘먼 과거’의 이순신을 조선 후기 내내 진정으로 존경했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인물들이 수없이 나왔어야 하며, 결코 ‘가까운 과거’의 그 수치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이순신 놀이’를 이제는 포기하고, 모든 교육이 실체적으로 한번 본을 보인 이순신과 같은 인물을 양성하는 체제가 되며, 심지어 방어적이었던 이순신을 능가하여, 공격적이고 건설적인 이순신상을 창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또 세계 모든 곳에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서 멸절수용소를 곳곳마다 세우려는 유대인을 배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울 수 있다는, 일본인이 가진‘의’란 개념은, 우리가 지구상 모든 도시에 소녀상을 다 세운다 치더라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 가운데 벌인 자신들의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에게는 모든 사건과 역사는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것에 불과하며, ‘과거’란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슬며시 치워놓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일본인들에게 그런 과거에 대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다시 끊임없이 기억나게 하며 온 세계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인들은, 밤에 계속해서 짖어대는 개처럼 보일 겁니다. 그러기에‘이순신 놀이’처럼 우리끼리 계속 소녀상을 거론하며 ‘소녀상 놀이’를 하는 것은 ‘우리만의 잔치’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녀상’도 좋지만, 전 국민이 더 추구해야 할 것은, 개개인이 일본,일본인,일본역사를 더욱 깊이 철저히 연구하며 알고, 그들의 관점에서 이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그것에 맞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이순신이 승리한 찬란한 ‘먼 과거’와, 온 민족이 징병-징용-성노예로 박살 나 버린 수치스러운 ‘가까운 과거’는, 결코 떨어질 수 없이 연결된 하나의 사건입니다. 동일한 일본과 일본인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했으나, 한번은 철저히 실패하여, 운양호사건 이후 무려 70여 년 동안 온 민족과 국토가 어마어마하게 농락당해버린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즉 같은 일본과 같은 세력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먼 과거의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가까운 과거의 일본과 일본인’은, 결코 다를 수 없는 본질적으로 같은 ‘왜놈’들일 뿐입니다. 이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지리-역사’적으로 살펴볼까요?
  북동과 남서로 길게 뻗은 국토를 가진 일본은, 통일하기가 매우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인간 사회의 가장 손쉽고 저질적 통일 방식인 칼을 휘두르는 통일로 무려 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나라입니다: 1) 가마쿠라 막부 → 2) 무로마치 막부 → 3) 전국시대와 서부세력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과 임진왜란 → 4) 동부세력인 도쿠가와 막부의 통일 → 5) 서부세력인 죠슈번(야마구치현, 아베의 고향)과 사스마번(규슈남부현)이 이룬 메이지 유신과 2차 세계대전, 심지어 지금의 자민당 정권조차도, 근본적으로 ‘송하촌숙’이란 학교를 세워 ‘한반도를 향해서는 머리를 두고 자지 말라’며 절대적으로 한반도를 증오했으며 ‘정한론’의 기초를 세워 메이지유신을 일으킬 제자를 키웠던 요시다 쇼인의 정신을 거의 150년을 이어가는 일본 서부 세력의 후예들입니다. 이것이 일본인의 정신세계 가장 밑바닥에 칼에 대한 숭상,복종이 근본으로 깔리게 된 역사적 배경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천년 동안의 4대 계급인 ‘사농공상’의 최고의 지위에 있던 ‘사(侍)’는 칼을 휘두르는 ‘무사’를 의미하며, ‘선비’를 뜻하는 5백년 역사의 조선의 사농공상의 ‘사(士)’와는 정반대입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결은 그야말로 ‘붓’과 ‘칼’의 대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관계에서 핵심은 우리는 항상 적인 일본을 향해서 우리의 장기인‘붓’(선비적 정신)으로 대하려고 하며, 일본은 우리를 볼 때 항상 그들의 DNA인 ‘칼’(무사적 정신)로 대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즉 우리가 매번 우리의 시각으로 적을 바라보듯이, 적 또한 항상 자신의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올해에 히트 친 영화 [한산]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는 바로 일본과 조선의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일본은 ‘칼’로 이기는 싸움을, 조선은 ‘의’를 위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말은 즉각적이며 누구나 시원하게 받아들일 개념입니다. 하지만 ‘칼’이 ‘의’ 자체가 되는, 즉 힘이 진리가 되는 삶을 천년 이상 살아온 일본인에게는 철저히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 ‘의’란 칼을 현란하게 움직여 모두를 정복하는 자에게 종교적으로 복종하듯이 절대복종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인간 밖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그 어떤 절대적 가치는 결코 아닙니다. 즉 인간이 범하기 매우 쉬운 일상적 잘못을 우리 민족 전체가 일본인을 향해서 범하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를 마치 나의 분신, 심지어 나와 똑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미국보다는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과 일본인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분석하지 않는 가운데, 마치 일본인을 조선인,한국인인 것처럼 여기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는 겁니다. 근대화를 이룬 일본의 짧은 근대사가, 일본인에게 결코 인간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개념을 가르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즉 메이지유신 이후, 동아시아와 미국까지 완전히 생지옥으로 만들었던 지난 무려 80여 년(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2차대전 1868~1945)의 역사는 오히려, 더욱 칼의 정신을 일본인의 자의식 깊숙이 갈고닦게 만드는 시간이 된 것은 아닐까요? 또 그 이후 결코 일본인 스스로라면 만들지 않았을, 점령군 사령관인 맥아더에 의해서 강요되어, 천황제 허용 대신 무장을 포기하도록 만든, 평화헌법 체제하에서 경험한, 지난 77년의 정치 역사가 ‘칼’의 자의식을 버리도록 만들었을까요?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개개인이라도 청소년기 이후에는 그 어떤 노력에도 변화되기 힘들기 마련인데, 매우 오랫동안 칼을 마음에 품었던 한 민족 전체의 정신은 결코, 아마 영구히, 변치 않을 겁니다.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다소곳이 고개 숙여 우동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일본인들이나, 일본무장을 반대하며 조용히 일인시위를 하는 ‘존경스러운’ 일본인들을, 일본인의 전형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는지요? 만약 그런 실수를 모든 한국인이 누적한다면, 이번에는 한반도 자체가 아예 끝장나며, 우리의 후손들이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예 ‘일본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게 될 끔찍한 지옥 경험까지 하지 않을까요?      

  김구가 말한 ‘문화의 힘’이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해, 겉과 속이 철저히 다른 보통의 일본인에게 묻고 자기들끼리 이 두 가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게 한다면 어떤 대화를 할까요? 이들은 보이기 위해서 혹은 이성적으로는 ‘그게 옳아’라고 고개를 끄떡일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역시 칼이 최고지!’라고 반드시 외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위대한 두 어른의 이론은 우리가 마음에만 새겨야지, 역사적 대형 사고를 언제든지 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한 일본인들을 향해서 결코 내보여서는 안 될 카드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필수적 ‘의’가 ‘칼’ 자체가 되어버린 일본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두 가지가 가능합니다. 
  첫째, 일단은 그들의 표준인 ‘칼’에 대해서 일본을 확실하게 이기는 길입니다. 단순히 축구나 야구할 때만 냄비 끓듯이 - 그들은 우릴 이렇다고 늘 비웃고 있습니다 - 목청껏 응원하는 대신, 개개인,가정,기업,교육,군대,문화,정신,정부,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 ‘확실히 보여지는 물리적 힘’을 행사할 능력을 항구적으로 가지는 길입니다. 문화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인다면 우리가 침공하지 않아도 일본은 굴복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남긴 두 가지 역사적 빚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에 남겼던 엄청난 피해를 청구하는 일입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이어 정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를 향해 선조는 전쟁배상을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했는데, 이제 그것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막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일본인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며, 그 일본의 정권을 도쿠가와 막부와 현재의 일본정권이 이어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배상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박정희 때에 임시변통으로 체결한 대일청구권 조약을 다시 재조사하여, 운양호 사건 이후 1945년까지 일본이 한반도에 끼쳤던 모든 총체적(대물,대인,심리 등)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겁니다. 물론 지금 현재의 국력으로는 요구할 수 없는 청구이지만, 만약 우리의 국력이 진정으로 커져서, 그들이 이렇게 역사적으로 정당한 우리의 배상 요구를 피하므로 막대한 손해를 받을 정도가 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적 기억력이 생생해야 하며, 동시에 탁월한 논리적 정합성으로 배상 요구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쯤 되면 우리의 국력이, 이 두 번의 손해배상으로 강한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혼쭐낸 결과, 전 일본 국민이 무릎 꿇고 반성한다면, 1엔으로 모든 것이 배상 되었다고 우리가 선언함으로 역사적 자비를 드러내어 두 나라 사이의 평화를 진정으로 정착시킬 수 있을 겁니다. 또 이런 사실을 역사적 기록에 확고히 남겨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가졌고 용서까지 빌었던 일본이 영구히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위의 능력을 가지기 위해 우리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한계를 가진 상대(종교)적 ‘의’와 ‘문화’에서 한 차원 높여 절대적 기준인 절대(종교)적 ‘의’와 ‘문화’로 승화시키는 길입니다. 조선의 ‘의’는, 가장 칼을 잘 쓰는 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일본의 그것과는 다르게, 신유학(정주학)을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스림 받는 민초들도 왕권에 도전하기도 한 상대(종교)적 ‘의’였습니다. 그러나 민초들의 욕망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이런 민초들을 이용하여 정권을 장악하거나 또 지금도 공산주의/사회주의자들이 내세우는‘의’자체가 잘못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런 태도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냐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답할 수가 없습니다. 즉 절대자 없이 인간들끼리의 삶을 규율하는 윤리 수준에 머무르는 상대종교인 유교적‘의’는, 칼밖에 모르고 일자무식하게 주군과 오야붕에게만 충성하는 야쿠자적 일본의 ‘의’보다는 낫지만, 근본적 해결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의 ‘의’는 우리와는 다르게 절대적 기준, 절대신 앞에서 따지는 ‘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 신념을 따라서 행동하는 윤리의 수준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이런 절대적 ‘의’를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영원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자의식을 가질 정도로 서양의 ‘의’는 절대적 개념입니다. 이런 ‘절대(종교)적 의’란 개념을 가지고 대할 때에만, 일본이 가진 칼의 ‘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종교라는 외적 형태를 가졌지만 죽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것이 반 쪼가리 기독교인 한국교회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제 시절 일본의 ‘칼’의 위협에 굴복하여 일본의 최고신인 천조대신에 대한 세례를 부산의 송도 앞바다에서 다시 받게 하고(김길창 목사), 그 여신에게 예배드리는 신사참배를 공적으로 가결한 절대적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때 기독교인 3~5백만 전체가 순교를 각오하고 실천했다면, 일본제국이 미군의 공격 이전에도 무너졌을 것이며, 이는 앞으로 한국이 21세기에 놀라운 세계를 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방신을 섬기기로 공적으로 가결한 것은 -십계명 제1,2조를 어긴- 기독교 역사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죄악입니다. 그 결과 그것을 가결한 장소인 평양에 세상 역사에서 가장 악독한 정권인 김씨 왕조 공산주의가 들어선 것을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썩은 종교는, 로마제국의 핍박 300년을 순교로 이겨낸 근본적 기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근본적 절대(종교)적 기초 안에서 ‘신성불가침의 인권’ 개념이 서양에서 생겨날 수 있었으며,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될 ‘4대 자유’라는 정치적 개념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서양은 그런 권리를 처음에는 자기들끼리만 인정하고 다른 인종에게는 적용하지 않다가, 서서히 다른 존재들에게도 인정하는 쪽으로 문화를 발전시키기는 했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길은 이 두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둘째를 먼저 이룬다면, 첫째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아무리 물리적 힘이 크고 놀랍더라도, 정신적, 윤리적 힘,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적 희생과 실천 능력을 상실하면, 순식간에 무너지며 문화는 파멸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여수 밤바다’는 우리 입에서 무의식중에 흥얼거리게 되는 낭만적 곡이지만, 여수의 청명한 밤하늘은 지난 5백여 년을 가로지르는 역사적 상념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경기도 군포시 당동 윤희섭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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