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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해양탐사선 챌린저호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2022년 10월호(15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 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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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해양탐사선 
챌린저호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세계 최초의 해양탐사선, 챌린저호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해상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운명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바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 세계 해양 패권과 무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함께 기술력과 정보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해양 탐사를 최초로 시작한 나라가 영국입니다. 17세기 이후, 항해술의 발달로 바다에 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68년에는 톰슨과 런던대학 교수인 카펜터가 해저300m 보다 깊은 바다의 해양 생물채집과 해저 생태계 연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로 해양 생물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연구 성과의 기초위에 챌린저호의 탐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탐사로 해양학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해양탐사선이 HMS 챌린저호입니다. 

A. 해양 연구의 기초
1) 영국인 최초 프랜시스 드레이크경(Sir Francis Draco, 1540~1596)의 세계일주
해적, 군인, 탐험가로서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1521)이 세계에서는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하였지요. 


2) 해양 연구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관측기기 및 탐사기술 고도화
‘해양 탐사’는 관측선에서 해양관측기기를 이용하여 해양의 특성과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자료를 얻습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항해술과 수중음향학, 무인관측기술, 해저탐사기술을 발달시켰습니다. 

B. 해양 탐사를 가능케 한 조건들
영국의 본격적인 해양 탐사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탐사장비/기술의 자체 발명 및 지속적인 개량 
챌린저호의 선원들은 이미 이전 탐사에서 발견된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발명하고 지속적으로 개량하였습니다. 생물들의 샘플을 수집하기 위해 여러 준설기와 트롤, 그물을 바다 속에서 끌고 다니며 포획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탐사할 동안은 주로 돛의 동력을 사용하였고, 준설선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만 증기기관을 사용하습니다. 음향과 음파기술을 이용하여 바다의 수심을 측정하는 단계를 넘어, 해저지형과 지층을 정확히 그려낼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해수의 이동과 해양의 특성을 상시적으로 자동 관측할 수 있게 되었고, 압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천 미터 깊이의 해저탐사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안전한 바닷길의 확보
전 세계의 해양을 속속들이 조사하고,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16세기 대항해시대부터 세계를 누볐던 영국해군의 해양 경험과, 막강한 해군력으로 대서양, 희망봉, 인도양에 이르는 전 세계 대양을 지배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3) 국가차원에서의 전폭적인 지원 
해양탐사를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왕립협회가 영국 해군으로부터 챌린저호의 사용 권한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립협회는 챌린저호를 과학적인 작업을 위해 일부 개조하였는데, 바다의 깊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챌린저호의 17개의 주포(총)들 중 15개를 제거하였고, 더 많은 공간의 실험실, 추가 선실과 준설 플랫폼을 설치하였습니다. 전문적인 해양탐사를 위해 과학, 해부학, 탐사, 그리고 항해에서 중요한 수력관측 분야별로 역할 담당자를 따로 두었습니다. 

C. 본격적 해양탐사
영국 해양패권이 전성기를 누리던 19세기후반, 영국 왕립학회와 영국해군이 공동으로 해양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박물학자이며 해양학자인 찰스 와이빌 톰슨이 해양연구 책임자로서 계획 전반을 설계 했습니다. 1872년 12월 7일 챌린저 호는 영국 포츠머스 항에서 닻을 올렸습니다. 화학자, 동물학자는 물론 미술가도 챌린저호의 대규모 탐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챌린저호는 1872년 12월부터 1876년 5월까지, 약 3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전 세계의 바다를 누볐고, 무려 125,000km 항로를 탐사했습니다. 대서양, 희망봉, 인도양을 거쳐서 일본 근해와 태평양을 통과 마젤란 해협을 거쳐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D. 해양탐사의 긍정적 결과
1)바다의 정확한 수심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개발된 음파를 이용한 해저탐사 기술은, 수중 통신, 대잠수함 작전, 수로 위험 경보 등의 군사적인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2)해저 지층의 발달 정도를 해석하는 탄성파 탐사장비 기술은 해저지층에 매장된 석유 탐사를 위해 필수적인 기술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3)1950년대 이후에 개발된 음향 탐사기술은 1970년대 말 심해자원 개발에 적용되었고, 특히 측면주사 방식의 음향 탐사기술은 대서양에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조사에 활용되어 침몰선체를 발견하는 데도 이용되었습니다.

E. 미래를 위해 챌린저호가 열어놓은 길
영국의 해양탐사는 자국의 목적을 위해 연구 되었지만 전 인류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챌린저호의 해양탐사 이전의 해양학은 주로 추측에 근거하였지만, 챌린저호 탐사 이후로 해양학의 지식을 넓히고 연구 분야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보고서와 표본은 현재 영국국립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 세계 전문가들이 해양연구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현선효즙 조현선
hyunseon.hy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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