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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예술/Retrospective & Prospective 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0. 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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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5. 새로운 도전]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살다가 휴직으로 인해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어떻게 하면 그 소중한 시간들을 좀 더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까가 여간 고민이 아닙니다. ‘회사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 배우지 못했던 많은 것 들 중에 뭘 배워볼까?’, ‘100세 시대라는데 인생 2막을 위해 뭔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막상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하면 누굴 가르쳐야 할 나이에 뭔가를 배울 생각을 하니 여간 거북한 게 아니었지요. 하긴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몇 년 전, 졸업을 앞둔 제자가 진로 상담을 하러 왔는데 인생에 대해 자신감 없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녀가 한 말 중 가장 어이없었던 것이 있습니다. “저는 뭘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요…” 그때 그녀는 24살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오페라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일입니다. 당시 출연할 성악가를 한·중·일 오페라가수 중에서 선발하기로 결정하고 오디션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갔었죠. 중국 측에서는 공식적 회의를 위해 조선족 출신의 통역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역 아주머니는 나이도 좀 들어 보이고 외양은 허름했지만, 중국어와 한국어를 완벽히 해내어서 회의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날 스케줄이 일찍 끝나서 기분 좋게 시내 관광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 통역 아주머니가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를 관광할 계획인가요?”
  “글쎄요… 홍코우 공원에 가 보려고요.”
  “가는 길 알아요? 같이 가 줄까요?”


  통역 아주머니와 저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65세이며 한국으로 치면 외교부에 해당하는 정부 부처의 국장 출신이고, 조선족 출신으로는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이었습니다. 아들은 북경에서 의사로 일하고 딸은 홍콩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등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였습니다. 정말 사람은 외양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확 깨달은 순간이었죠. 이렇게 타국에서 인텔리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저의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퇴직 이후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이렇게 중국어, 한국어 통역도 하고, 일어 통역도 하고 있어요.”
  “어머나 일어도 하세요?”

 


  그녀는 한창 일할 50대 초반 일본과 관련된 업무를 할 때마다 일어 통역을 하는 부하직원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일해야 하는 것이 답답해서 그때부터 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52살에 시작했던 일본어 공부가 지금은 통역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 통역 아주머니를 만났던 그때 제 나이 30살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도 ‘난 무언가를 새로 배우기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하며 주저될 때마다 상하이에서 만났던 그 통역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친구들에게 또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때, 우리는 그저 다시 시작해 보라고 가벼이 조언하곤 하지만 막상 자기 자신에겐 어떤 격려를 주었던가를 떠올립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 할 때 자신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등, 수많은 이유를 대가며 주저하지 않는가요? 단언컨대 무엇을 새로이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가을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엔 딱 적당한 때이니 ‘망설이지 맙시다’라고 나 스스로에게, 또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 외치며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의전당 창의문화팀장 손미정
mirha@sac.or.kr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6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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