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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는 전시장에 가야한다

예술/Retrospective & Prospective 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2. 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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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7. 전시장안의 숨은 이야기]

비오는 날에는 전시장에 가야한다


  2011년 여름은 우리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은 시간이었습니다. 7월 말 서울의 강수량은 ‘100년에 한번 내리는 폭우’라는 초유의 기록을 기록하며 강남을 강타했기 때문입니다.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예술의 전당’도 폭우의 공격을 피해가진 못했지요. 우면산 산사태로 오페라극장 5층에 위치한 사무실의 뒷문으로 2미터가 넘는 진흙뻘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와 100여평의 사무공간이 진흙탕 속에 잠겨버렸습니다. 디자인미술관의 책임 업무를 담당하며 전시기획 업무를 담당하던 제가 있던 사무실은 오페라극장이 아닌 미술관에 있어서 남들은 얼마나 다행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남몰래 마음 졸이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미술관에서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진품들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오르세 미술관특별전>이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중요한 작품들이 전시되는 전시장에는 항온항습기를 설치하여 그림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면산 산사태와 연일 계속된 폭우로 정전이 되어 전시장의 항온항습기가 만 하루 이상 작동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림들은 벌써 표면이 물결모양으로 구겨지는 1차 변형이 나타났었고, 공동주최사측의 대표는 망연자실해서 전시장 바닥에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지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장님께 긴급 보고를 하고 예비비 2천만원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간신히 허락을 받아낸 저는 약 50여개의 서울시내 에어컨 대리점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 오늘 당장 설치 가능한 에어컨 10대를 바로 구입했지요. 한 여름이라서 에어컨의 확보도 쉽지 않았지만, 당장 설치가 가능한 곳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요? 간신히 인력추가와 함께 당일 설치해주시겠다는 기사님을 수배하여 전시장마다 에어컨을 설치했습니다. 다행히 변형을 보이기 시작했던 일부 그림들은 에어컨 바람을 쏘여 준지 8시간이 지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하늘이 뻥 뚫린 것 같았던 비도 서서히 그쳐갔고 홍수로 인한 피해는 빠르게 복구되었습니다. 호사다마라던가요? 그 해의 <오르세미술관>전은 최다 관람객수를 기록하며 최고의 전시가 되었지요.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저는 비가 오는 날이면 별일이 없어도 혹시나 하고 전시장을 한 바퀴 휙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에어컨은 잘 나오는지, 항온항습기는 잘 작동되는지 저도 모르게 살피는 겁니다. 우리는 일상을 아무 문제없이 보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큰 일을 당해보고 나서야 깨닫곤 합니다.


  이제 가을이 점점 깊어가며 겨울로 넘어갑니다. 한여름 무성했던 잎을 자랑하던 아름드리 나무들도 서둘러 겨울 맞을 준비를 하는군요. 우리 옆에 있는 소소한 일상들을 소중히 여겨길 것을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예술의전당 창의문화팀장 손미정

mirha@sac.or.kr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8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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