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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1회 춘천국제마라톤 꼴찌는 바로 나다!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2. 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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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완주 후기] 

올해 71회 춘천국제마라톤 꼴찌는 바로 나다!


 올해 춘천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하면, 마치 제가 운동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것처럼 사람들은 와~~ 하고 반응합니다. 솔직히 이런 반응이 저에게는 사실 어색합니다. 마라톤 경력이라면 기껏해야 10km를 2번 정도 완주한 것 밖에는 없지요. 7년 전 중년의 갱년기가 허를 찌르듯이 기습적으로 찾아와서 여성호르몬을 복용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차로 몸에 살이 들어붙기 시작하면서 뛰룩뛰룩 해지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3년 전에는 살을 빼보겠다고 작심한 후에 무식하게 런닝머신에서 연이틀 심하게 뛰었는데, 글쎄 이 ‘족저근막염’이란 놈이 오른쪽 발을 콱 물어 놔주지 않았기 때문에 1년 반을 이 놈 치료하느라 이리저리 병원을 돌아 다녔습니다. 갱년기에 설상가상으로 족저근막염까지 생겨 더 이상 운동을 못하게 되니, 제 키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불어났습니다. 동생 하는 말이 가관이었지요. “언니, 찐빵이네!” 이런 가운데 ‘행복한동네문화만들기운동’에 함께하는 동료들은 모두 2016년 한화 충청 마라톤 20km를 완주하는 동안 저는 꼼짝없이 옷짐 지킴이 역할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몸무게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현실을 외면하던 제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정직하게 저울이라는 심판대에 올라가자로 작정했지요. 올라간 순간 ‘악,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느낌이 팍 가슴을 강타했습니다. 온갖 성인병으로 말이죠. 그래서 즉각 다음날부터 절식하며 차근차근 몸무게를 줄이고 할 수 있는 운동부터 해나갔습니다. 이렇게 6~8개월 하는 동안 무려 12kg을 감량하고 겁도 없이 만용을 부렸습니다. 올해 7월부터 ‘행복한동네문화만들기운동’의 동료와 함께 춘천마라톤 완주(42.195km)에 도전하겠다며 4개월 동안 꾸준히 달리기 훈련에 돌입한 겁니다. 먼저 몸무게가 날아갈 듯이 가벼워지니 뛰는데 훨씬 수월했지요. 동료들은 저의 전과 후를 아는 터라 일단 제가 뛴다는 것 자체에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제가 사는 산본을 조금 벗어나면 공기 좋은 ‘대야미’라는 곳이 있어요. 차가 다니지 않는 이른 아침 5:30부터 달리기를 하면서, 1주일에 2~3번 정도로 4km, 8km, 10km, 15km, 20km 이렇게 점차 늘려 나갔습니다. 



  드디어 춘천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10월호 ‘행복한동네문화 이야기’도 좀 더 일찍 발행하고 배포하는 일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달리기 전날(10월 28일) 춘천에 내려가서 동료들과 차로 풀코스를 돌아보니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음에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이런 제 모습을 본 옆에 있던 남편은 지난번에 10km를 했으니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치고 딱 20km만 뛰라고 하며 격려했습니다. 


  대회당일 10월29일(일)! 온몸을 근육테이프로 중무장한 후 ‘춘천공지천공원’에 모여 엄청난 마라톤 인파에서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었지요. 드디어 ‘탕’소리와 함께 1등 할 아프리카인들이 일찌감치 저 멀리서 다 떠난 후에 처음 참가자들인 G그룹에 속한 사람들과 오전 9시25분 정도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도 뭐 20km정도는 곧 잘 뛰었지요! ‘음...이 정도라면 완주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차오르는 자신감과 함께 달렸습니다. 그런데 전문 마라토너들이 전설처럼 이야기하던 ‘마의 구간’ 30km를 앞에 둔 ‘춘천댐’근처(27km)에서 과연 저도 심한 발바닥 통증으로 도저히 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둘 순 없어!’라고 저를 다독이며 걷다뛰다 반복하던 중 32km 지점에서 왠 천사(?)를 만났지 뭡니까!. 


  61세 된 남자로 올해 난소암으로 부인을 잃고 회복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완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참가하신 분이셨어요. 자녀들은 모두 말렸지만 떨치고 왔노라고 하더군요. 이분이 이런저런 말을 붙이며 또 저에게 보폭을 맞추면서 1.5km를 같이 뛰어주었지요.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후 저에게 다시 발동이 걸려 비록 뛰다걷다를 반복했지만 계속 목표를 향해 치고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달리는 사람들은 다 보이지 않고 거의 막바지 주자여서인지 주최 측이 마련한 포기한 주자들을 쓸어담는(?) 버스들이 뒤따라 오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이 차타고 가실 거냐”고 유혹(?)하길래, 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아닙니다. 저는 끝까지 달릴거예요!” 그러다 또 얼마 안 되어 경찰차가 오더니 저와 제 뒤에 오시는 70대 할아버지에게 마이크로 다음의 말을 냉정하게 쏟아내지 뭡니까! “거기 거기 (달리시는분), 위험하니 (이제는 차도로 달리지 마시고) 인도로 올라가세요!” 왜냐하면 달릴 사람은 다 달렸고 이미 도로통제는 해제되어 차들이 제 옆으로 씽씽 달리고 있었거든요. 물론 몸도 힘들고 잘 뛰지도 못하지만, 곧 죽어도 마라토너로 나섰는데 정식으로 도로에서 못 뛰고 인도로 나가라니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군요. 하지만 존심을 꺾고 민중의 지팡이의 말을 순종하는 자세로 인도로 올라가 또 열심을 내어 한손에는 초코렛 또 다른 손엔 에너지 바를 들고 달렸지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차가 제 옆에 서는 데, 바로 남편 차였죠. “이제 그만 달려! 이 정도면 됐어, 차타고 가자!” 전 그 말에 대꾸하기보다 물과 휴지를 달라고하며 모른척 했습니다. “정말 뛸 수 있겠어?” 남편의 우려에 저는 “나 끝까지 갈거야! 그러니 차타고 먼저 가세요”라고 당차게 선언했지요. 


  드디어 거의 마지막인 40km를 앞둔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는 ‘소양2교’를 지나니 찬바람이 온몸을 때렸습니다. 골인지점까지의 사투는 장난이 아니었고 정말 외로운 사투였지요. 그런데 희안하게도 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휙휙 스쳐지나가더군요. 특히 여기까지 오게 하고 나를 있게 도와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행복한동네문화 이야기’라는 특이한 신문의 편집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제가 끝까지 누가 뭐라던 이 길을 묵묵히 갈 것이냐를 다시금 묻고 정직하게 답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 마라톤 완주가 가지는 의미와 어떤 극한상황까지 나를 몰아붙이면서 발견하는 나의 한계가 무엇이며, 그런 것조차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뼈져리게 느끼는 짧은 순간들이었습니다.  



  50대인 제가 합세한 ‘마라톤 꼴찌들의 행진’의 대열에는 그래도 40대와 60대 아줌마 2명,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포기하지 않고 걷는 20대 청년, 또 키는 작지만 탄탄하게 보이는 70대 할아버지가 마치 인생동료처럼 존재했었지요. 이들조차도 이미 골인지점에 들어섰고, 정식 시간은 다 지나 정리하며 파장분위기더라고요. 그래도 나를 끝까지 기다려 준 동료의 축하를 받으며 손에 V자를 그리고 따뜻한 차안으로 들어가 빵 2개를 단숨에 해치워버리는 것으로 그 기나긴 사투의 시간을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완주 후 곧바로 저의 춘천국제마라톤 대회 풀코스 완주기록은 ‘7시간40분10초’란 문자가 제 휴대폰에 뜨는 겁니다. 이것을 받은 순간 정말 울컥해 지더라구요! 물론 10km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각진 디자인의 완주 메달도 범상치 않고 자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저희 남편도 무척 놀라워 했는데, 도저히 못 뛸 마누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실 남편도 같이 나가기 위해 달리기 훈련을 하다 그만 강철같은 의지를 너무 발휘에 연습량을 갑자기 늘리면서 왼쪽 골반과 무릎에 무리가 생겨 걷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기에, 정작 춘천마라톤에는 뛰지 못하고 뛰는 동료들을 격려하기 위해 차로 중간중간을 이동해 다니면서 움직였거든요. 이번에는 남편이 옷짐 지킴이 역할을 한 셈이지요.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의 편집장은 영광의 마라톤 상처(후유증)로 왼쪽무릎의 후방십자인대가 찢어졌고, 후각전각연골의 깊은 뿌리 쪽이 찢어졌다라는 병원의 무서운(?) 판결을 받고 조용히 움직이고 쉬면서 치료와 함께 약도 먹고 있긴 합니다.^^ 다행히 수술은 안하고요!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도전을 한 번 해볼까 생각해 봅니다. ‘아~ 내년엔 철인삼종경기(1.5km수영, 10km달리기, 40km사이클)에 나가볼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그동안 하다만 수영부터 이 겨울에 다시 시작하는 겸손함을 보여야겠지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장 김미경
hasun2001@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8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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