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정권찬탈자들은 어떻게 종교(신도)를 정치에 이용하였나? (1)

[큐슈를 통한 일본 사후여행으로서의 연구]

메이지유신 정권찬탈자들은 

어떻게 종교(신도)를 정치에 이용하였나? (1)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17년의 후반부(10, 11, 12월)에 큐슈를 통한 일본 사후여행으로서의 연구주제로 ‘메이지유신’을 잡았던 이유는 일본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역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과연 그 역사가 그들이 자신들 뿐 아니라 세상에 내어놓고 자랑해도 될 건지 아니면 정반대로 자신들과 아시아인들을 파멸로 내몰았던 청일전쟁(1894)부터 2차대전(1945)까지의 전쟁의 광풍을 일으킨 기초를 세운,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그 역사는 불행하게도 후자 쪽에 속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우리의 해석(부끄러워해야 할 역사)과 일본의 해석(자랑스러운 역사)이 다름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극명한 차이 때문에 2차대전이 끝난 지 70여년이나 지난 후인 현재까지도 일본이 과연 밝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 또 이런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두 개국(한·중)이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하나를 이루어 21세기에 새로운 역사를 과연 잘 써나갈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부정적 답변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고통스러운 실제입니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우리는 일본을 혐오하고 쳐다보기 싫은 존재로 버려둘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해서는 늘 애매모호 두리뭉실로 일관하는 일본을, 더 가까이 바짝 눈앞으로 끌어당겨서 더 근본을 파헤치며 더 포괄적으로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근원이었으며,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었던 ‘신도’(神道)를 다루려고 합니다. 이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일본을 불안해하면서 궁극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가며 “지긴 했지만 한국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는 무서운 말을 상기하면서, 일본이 과연 한반도를 다시 정복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다시는 미국이 주는 해방을 넙죽 받아 삼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또 중국이나 러시아에 기댄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정말 피하려고 한다면 최소한으로 해야 할 일은 이런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이런 시도를 다시 한다면, 일본은 메이지-쇼와 시대(1868~1945)의 정신적 종교적 기초였던 ‘국가신도’를 반드시 동원할 것이기 때문에 신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본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염려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일본역사의 실체와 종교적 기원,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일본인의 본성을 끝까지 추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메이지유신 정권찬탈자들은 어떻게 종교(신도)를 정치에 이용하였나’라는 질문을 주제로 던져놓고 그것에 답하는 형식으로 써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루는 세부적 부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A. 메이지유신의 신도란 무엇인가?

B.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정치와 종교의 다양한 관계들 

C. 고대일본에 나타난 종교의 정치지배[외적] - 정치의 종교지배[내적]의 모습

    (2018년 1월호)

  D. 중세와 근세에 신도가 다른 종교(불교)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단계

  E. 메이지유신이 고대신도에서 이용하고 새롭게 발명한 종교인 국가신도의 전개과정

  F. 절대종교적 성격을 지닌 국가신도와 절대종교 기독교와의 세 번의 대결

  G. 일본의 신사신앙에 나타난 일본인의 정체성 확인

  H.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질문 : 일본은 또 다시 아시아에 피의 광풍이 몰아치는 

      역사를 재현할까?(다음호)

A. 메이지유신의 신도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로서의 신도국가주의(Shinto nationalism,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종교로서의 국가신도(national Shinto), ‘천황교’(박규태, 신도와 일본인, 2017, 347)이다

  메이지유신을 연구하면서 이것이 일본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긴 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일본의 외적 현상/역사에 불과하고 그 속을 채운 진짜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란 바로 전형적인 일본 종교인 ‘신도’(神道),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신도’(國家神道, State Shinto), 아주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와 천황을 종교적으로 섬기도록 일본 뿐 아니라 정복한 모든 나라에도 섬기도록 강요한 국가종교’입니다. 그래서 저는 메이지유신이 섬기도록 강요한 신도란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신도국가주의’(Shinto nationalism)라기 보다 하나의 종교로서의 ‘국가신도’(national Shinto)라는 정의를 먼저 내리려고 합니다. 독일의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라는 이데올로기와 미묘한 차이를 인식해야 합니다.

신사에 들어가는 입구에 문처럼 되어서 신사임을 즉각 알아볼 수 있는 '도리'의 디자인

  메이지유신과 전쟁을 몰아갔던 사람들은 철저히 이 신도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의 종사’, ‘국가예식’이니 기존 종교와 대립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해야 한다고 강요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위하여 먼저 일본에서 다른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신도를 ‘종교(로서의) 신도’라고 구분해서 조직해 놓고, 그들도 천황을 위한 요배를 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많은 신들을 섬기는 데 익숙한 일본인들에게는 이쯤이야 어려울 것도 없는 쉬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타이완, 조선, 만주 등)에 동방요배(천조대신과 천황이 있는 동방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는 예식)를 강요하였고,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을 계통별로 통폐합시킨 후에 철저한 조직관리를 하였으며, 기존 종교에의 예배를 하기 전에 반드시 아마테라스오미가미와 천황을 향한 예배 혹은 요배를 반드시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신도는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와 같은 일종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완벽한 ‘종교로서의 신도’, 즉 ‘국가(종교로서의)신도’였습니다.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나 북한 김정은의 왕조공산주의는 세속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대적 현상으로 ‘종교적 (형태를 띈) 이데올로기’(religious ideology)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국가신도는 천황가(家)를 제일로 섬기도록 강요해서 만든 ‘이데올로기적 종교’(ideological religion)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일본 고대의 종교창고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어 ‘국가신도’로 완벽히 그리고 창조적으로 부활시킨 겁니다. 즉 일본의 천무(天武)천황이 창조한 천황숭배의 고대신도는 처음부터 이데올로기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천황가(家)를 항구적으로 섬기는 종교구조였는데, 그것을 훨씬 강력한 통치 장치로 재활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2018년부터 일본의 신도를 다룰 때에 우선적으로 ‘메이지유신의 기초로서의 국가신도’를 근본적으로 재규명하는 작업을 해보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과거를 정확하게 들여다 보는 것을 넘어 더 확장시켜 일본인들에게 우주시대를 열어야 할 21세기에도 왜 그렇게 가장 원시적인 종교인 신도가 그렇게 시퍼렇게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가도 물어야 합니다. 또 그들이 국가신도를 다시 부활시켜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를 향해 피의 광풍을 몰아칠 가능성이 있을까도 염려스러운 자세로 물어야 하는 겁니다.  

B.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정치와 종교의 다양한 관계들 

  다른 문화 속에 나타난 정치와 종교의 관계 형성의 일반적 경향

  일반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매우 다양한 관계를 형성해 왔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관계는 몇 단계의 범주로 진행되는 것으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가 정치를 장악해서 최고제사장 = 최고정치가가 되는 단계로, 중국의 상나라가 그 예입니다. 둘째는 정치가 종교에서 독립적으로 분리해 나가는 단계로, 왕권(정치)이 신권(종교)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이 이때에 쓰이는 대표적 이론입니다, 셋째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여 종교적 권위를 정치적 통치의 도구로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단계로, 현대에 종교가 대중적으로 퍼진 많은 나라들에서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넷째는 정치와 종교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아무 상관이 없는 단계로 철저한 세속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고대, 중세, 근세를 거쳐 현대의 세속사회로 갈수록 후반부의 단계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각 나라와 문명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보면 획일적으로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 없고 각 상황에 맞게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정치(메이지유신)가 종교(신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를 다루기 전에 먼저 한반도에서의 이 둘의 관계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경우와 잘 비교가 됩니다.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호국불교)로 삼아 불력에 의지해서 나라를 지키려고 했지요. 이때의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위에서 말한 둘째와 셋째 단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진정한 종교라기보다 일종의 사회윤리적 종교인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정치를 했기 때문에 둘째나 셋째 단계의 변형된 형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외적으로는 종교의 정치지배, 내적으로는 정치의 종교지배’를 이룬 일본

  그에 비하여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국가신도의 경우는 매우 독특한 관계를 이루며, 그것이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일반적으로 진행되어온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거의 영속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즉 일본에서는 외적으로는 정치-종교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원시적 단계인 종교가 정치를 장악하는 모습을 거의 항구적으로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고, 내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이와는 정반대로 정치가 은밀하고 철저하게 종교를 거의 항구적으로 장악하는 형태를 가진다는 겁니다. 천황을 모든 일본이란 가족의 아버지로 만들어서 그를 구심점으로 섬기도록 한 일본제국헌법을 만든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지만, 정작 그는 천황이 허수아비나 꼭두각시와 같은 존재라고 대놓고 이야기할 뿐이었지요. 이런 왜곡되고 뒤틀린 관계의 모습을 그 어떤 민족이나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반인이나 심지어 학자들조차도 너무나 이상해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편입니다. 같은 동양문화에 속하고 바로 옆에 사는 우리에게도 그러한데, 하물며 말과 행동, 혹은 겉과 속의 일치를 전통으로 하는 서양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어떻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일본의 이런 이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은 ‘국가적 공적 영역’에도 나타날 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사적 영역’에서도 드러납니다. 즉 ‘조화로운 질서,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비극’, ‘위계는 명확하게, (그렇지만) 의미는 모호하게’라는 전제가 늘 일본인 속의 행동기준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외부인이 얼마나 일본에 오래 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P. 션 브램블, [일본]). 즉 외적으로는 누구나 인정한 종교적 위계질서 혹은 깔끔함(여기서는 신도)을 주장하며 종교가 모든 것(정치)을 주관하는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모든 것(여기서는 종교)을 장악하며 조종하는 누군가(정치)가 비밀스럽게 존재한다는 겁니다. 즉 겉과 속이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원성, 위선성’을 일본인과 일본문화가 항구적으로 지닌다는 것이죠. 다시말해 ‘위선적임과 겉과 속이 항구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정상적임’이 바로 ‘일본스러움’이며 ‘일본인의 본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철저히 종교(국가신도)가 정치와 모든 국민의 삶을 지배하는 형태를 보이지만, 내적으로 또 실질적으로는 그 종교 뒤에 비밀스럽게 존재하면서 종교를 이용해 모든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명령하는 정치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메이지유신의 경우 이 검은 손을 가진 정치적 실체가 바로 ‘서남쪽 번들의 하급사무라이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특이한 이원성, 위선성의 양상은 단지 근대의 메이지유신과 국가신도에서만 볼 수 있거나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본 역사의 세 단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고대일본에서 외적으로는 종교가 정치를 장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가 뒤에서 종교와 모든 것을 장악하는 원리가 백촌강 전투(662~663) 이후에 창조되었습니다. 이 원리가 천무(天武)천황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기부터 존재했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드러났습니다.

  둘째, 중세와 근세 일본에서 신도가 다른 종교(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특히 불교와의 관계를 이루면서 종교가 정치와 이런 이상한 관계의 형태로 변화, 발전될 기초를 쌓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누적되어 드디어 근대에 외적으로는 종교(국가신도)가 모든 것(정치)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메이지유신(정치)이 국가신도(종교)를 장악해서 모든 것을 조정해 나가는 독특한 관계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셋째, 드디어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자마자, 아주 초기부터 정치는 국가신도(종교)를 앞세우면서 철저히 신본주의적 국가를 외적으로는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메이지시대를 지나 심지어 다이쇼(大政) - 쇼와(昭和)시대(1868~1945)에 이르기까지 뒤에서 비밀스럽게 모든 것을 통치하는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서남쪽 번들의 하급사무라이들’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남쪽 번들이 핵심이었고, 이토 히로부미가 거기서 나왔으며, 또 우리에게 정말 악명 높은 도시인 시모노세끼(下關-조선의 성노예, 학도병, 징용인들이 울면서 도착한 항구)를 끼고 있는, 조슈번의 하급사무라이들의 후예가 아니면 정치권에서 절대로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당시에 쉬쉬하면서도 잘 알려진 진실이었지요. 바로 이들이 ‘외적으로는 종교의 정치지배 - 내적으로는 정치의 종교지배’라는 일본 특유의 칼춤을 추면서 80여 년 동안 일본과 동아시아를 지옥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피의 칼춤을 자기들 안에서 추면 상관없지만, 그것을 밖을 향해 휘두르는 것을 정당화시키며 마치 사탄의 하수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밖에 있는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C. 고대일본에 나타난 종교의 정치지배[외적] - 정치의 종교지배[내적]의 모습

  천무천황의 등극과 일본의 새로운 진로설정

  여기에 매우 역설적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이 이런 ‘이원성, 위선성’의 칼춤으로 한반도에서 일정기간이라도 휘두른 역사(1910~1945)의 시작은 백제의 멸망기 때였습니다. 백제가 멸망(660)하자, 그것을 돌이키려고 일본은 3만2천명을 파송하여 나당연합군과 전쟁을 벌였으나 전멸하다시피 패배한 것이 백촌강 전투(662~663)입니다. 이 전쟁을 본국에서 지휘한 천지(天智)천황(668~671)은 자신의 아들인 ‘오토모’를 옹립할 것을 명하고 죽었으나, 천황의 동생인 ‘오아마’ 왕자가 결국 ‘진신의 난’(672)을 일으켜 조카인 오토모를 제거하고 천왕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와 유사한 인물인데, 이 사람이 바로 ‘천무(天武)천황’(673~686)입니다. 그는 매우 야심찬 정치가로서 왕권을 영구화하려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밀고나갔습니다. 그의 가장 첫째 행적은 일본의 종교인 신도를 황권을 섬기는 구조로 창조해낸 것인데, 자신의 정치권의 권위가 종교적 권위 자체라는 근거를 마련한 겁니다. 즉 신권에서 왕권을 수여받았다는 ‘왕권신수설’ 정도가 아니라, 천황 자체가 신의 가계에서 나왔으니 숭배의 대상이라는 매우 독창적인 신도이론을 수립한 것입니다. 이것을 이론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역사서들이 바로 일본 최고(最古)의 서적들으로 알려진 「고사기古事記」(712년 완성)와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 완성)입니다.

중심에는 메이지천황이, 그 주위에는 그 이전의 인간천황들이 배열되었으며, 그 주위에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이 묘사되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핵심인 아마테라스오미가미와 천황숭배로 국가신도의 기초 이룸

  이 두 책은 일본형성의 고대신화로 채워져 있는데, 이 신화 속에서 최초로 ‘외적으로는 종교의 정치지배 - 내적으로는 정치의 종교지배’ 신학이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7세기에 만들어진 이 신학이 1200년 후인 19세기 후반에 갑자기 부활해서 메이지유신(정치)이 국가신도(종교)를 이용하는 역사적 기초가 된 사실은 일본의 신도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 사실은 일본에 의해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던 모든 외부인들(특히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서라도 잊지 않아야할 진실입니다.

  이 신화의 핵심 내용은 여신(‘태양’)으로 알려진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천조대신)가, 첫째 천왕으로 등극하여 일본을 통치한 ‘신무(神武)천황’(BC 660)의 신적인 조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첫째 천황 이후의 모든 천황들은 ‘아라히토가미’(現人神현인신)으로 숭배되는 존재였습니다. 신화를 조작해서 겉으로는 종교의 정치지배의 구조를 만들어놓고 실질적으로는 정치의 종교지배를 획책한 것이죠. 그런데 BC 660년으로 소급한 최초의 천황등극 년도는 천무천황의 통치(AD 673) 이후 무려 1200년이 지난 AD 1868년의 메이지유신 정권찬탈자들이 임의와 억지로 거슬러 계산했던 년 수일 뿐입니다. 그런데 백촌강 전투 이후의 천무(天武)천황이 등극했던 시기인 AD 673년이란 년도는 전세계적인 종교발달 단계로 보면 신화를 만들어 조작하기에는 매우 늦은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이렇게 왕권 자체가 신권이 되는, 즉 왕을 신으로 섬기는, 아주 원시적 신화들을 사용하거나 만드는 나라나 문화는 이미 없어졌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를 후대에 창조해 낸 것은 매우 유치할 정도로 조작적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유치한 고대의 신화를 1200년 후인 메이지유신에서 다시 끄집어내어 재활용하려고 작심한 그 지도자들과 그들을 목숨을 바쳐가며 처절하게 따르고 피의 광풍을 몰아쳤던 일본인들을 대체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역사적 치매’에 걸리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조작에 조작을 더한 역사를 만들 수 있을까요? BC 660(신무천황) → AD 673(천무천황) → AD 1868(메이지천황) 이 허구를 자신들의 국민들에게 강요할 뿐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아주 체계적으로 자신들이 정복한 땅의 백성들에게 그 신화를 섬기도록 강요하며 2천 만 명 이상의 생명을 내어놓게 만든 광풍을 몰아쳤던 80여년의 역사(1868~1945)를 만든 일본을 ‘정신적 문화적 치매’에 걸린 나라 이외에는 어떻게 다르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가운데 우리는 그 무서운 나라 옆에 오래 살았고, 앞으로도 영구히 오래 살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해야 하지 않나요?

  이 신화들의 원천이 무엇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신화의 많은 부분들이 실상 다른 고대 문명의 신화들(심지어 그리스 신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화, 박혁거세의 신화)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동명성왕의 어머니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부여로 떠나는 아들에게 두 가지 보물을 주어서 보내었다는 신화는, 아마테라스오미가미가 천황에게 신기 삼종을 주었다는 신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경우는 그런 신화들을 그저 신화로 여기며 그 신화의 주인공이나 가계를 어느 정도의 신성함을 가지고 대하는 정도로 하다가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일본은 천황의 정치적 지배권을 종교적으로 극단적으로 정당화시키되, 이 지배권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권력이 나올 수 없는 것으로 못 박은 ‘종교와 정치의 영원한 이원성, 위선성, 일본스러움’이 유달리 드러납니다. 다시 말하면 천황은 ‘현인신’이므로 천황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며, 이어서 일본적인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일본적 경향이 강하게 드러날 역사적 상황에서는 천황만이 최고의 유일한 숭배의 대상으로 폭발적으로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상대종교가 거의 절대종교 수준으로 발전’해 버린 상황에까지 가며, 이 뒤에서 실질적으로는 불확실한 검은 정치적 실체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치를 종교적으로 장악하려는 철저한 계획을 실천한 천무천황 

  천무천황은 천황가(家)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만드는 일에 매우 야심적이고 체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그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용어로 ‘오키미’(大王) 대신에 ‘스메 라미코토’(天皇)를, 왕자들은 ‘친왕’이라는 명칭을 부여했습니다. 용어부터 먼저 승격시킨 거지요.

  둘째, 자신을 ‘현인신’으로 추앙하도록 했는데, 가장 오래된 책의 하나인 ‘만요슈’(萬葉集)에서 실제로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찬양하는 가사가 등장합니다.

  셋째, 그는 본격적으로 당나라의 율령을 차용한 성문법에 기초한 율령(681~689)을 제정했고, ‘금식(禁式) 92조’(681)를 통해 왕자부터 서민에 이르는 복식을 규정했으며 관리를 48계로 분류했습니다(684).

  넷째, ‘데이키’(帝記)와 ‘구지’(舊辭)를 만들어 국사편찬사업의 출발점(681)으로 삼았습니다.

  다섯째, 그를 이어서 천황이 된 그의 부인 지토(持統)천황, 그리고 그녀가 양위한 그녀의 손자인 몬무(文武)천황은 일본 최초의 법전인 ‘다이호율령(大寶律令)’(AD 701, 관제, 사법제, 신분제, 호적제, 토지제, 조세제, 병역제 등)을 완성하여 완벽한 통치체계를 수립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황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조직된 정치체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 모든 정치적 조직과 체계의 중심에 천황숭배의 신화를 조작한 종교로서의 신도를 창조해낸 겁니다. 그는 당시 당나라의 중국식 율령제도를 도입하면서도 매우 특이한 조처를 취한 것이죠. 중국에서는 당나라보다 무려 1700년 전인 하·상나라 시대에도 최고통치자를 ‘하늘의 아들’(天子) 정도로만 불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를 종교가 지배하는 형태이며 매우 원시종교적 개념인 ‘하늘의 황제’(天皇)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은 그 용어를 사용하길 바랍니다. 이것은 종교발전의 과정이 가장 원시적인 첫 단계인 제사장이 바로 왕인 정도가 아니라 거기서 더 원시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왕이 신인 체제를 만든 겁니다. 아마 이 체계는 인류가 국가를 이루기 전에 씨족, 부족들이 모여 살 때에 조상을 숭배하는 종교적 전통, ‘조상신 숭배’에 기초한 것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리하여 일본은 ‘만세일계’(萬世一係) 천황이라는 한 아버지 아래에 있는 거대한 가족이 되는 겁니다. 또 신도의 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신사’라는 명칭도, 그리고 본격적 ‘신사건축’도 바로 이 천무천황의 시기에 처음으로 생겨났다는 사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외적으로 종교의 정치지배 - 내적으로 정치의 종교지배를 영구화한 도구로서의 신기제도 

그리고 이런 ‘종교의 정치지배[외적]-정치의 종교지배[내적]’라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 ‘신기’(神祇)제도(‘신’神은 하늘의 신령, ‘기’祈는 땅의 신령, 중국어의 ‘천신지기’天神地祇의 준말)를 다이호령 이후에 확립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천황을 섬기는 신사신앙을 주관하는 ‘신기관’(神祇官)을 만들어,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太政官)보다 우위에 놓았습니다. 또 전국각지의 신사에서 실제로 천황숭배를 집전하는 자에게 ‘신기백’(神祇伯)이라는 직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14세기 이후 약 오백 년 이상 폐기되었던 ‘신기관’을 19세기 중엽인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자마자 메이지유신 정권찬탈자들은 지체없이 부활시켰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아예 처음부터 작심하고 아마테라스오미가미와 천황숭배를 시작하도록 했던 천무천황의 고대종교를 부활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고대의 천무천황시절에는 이런 신기관이 정치를 담당하는 태정관보다 높았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것을 역전시키기로 결정하고 신기관을 ‘신기성’(神祇省)으로 격을 낮추어 부른 후에 태정관 아래에 두었습니다. 결국 도대체 어떻게 뽑혀지는지 알 수 없는 태정관[정치]이 실질적으로는 국가신도[종교]를 철저히 지배하는 구조를 만든 겁니다.   

메이지천황을 섬기는 메이지신궁의 전경

  천황숭배의 외적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이세신궁을 발명해 냄 

  이어서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후에 실제로 모든 천황숭배의 ‘공간적 중심’으로서 아마테라스오미가미 신앙의 기원으로 마련한 ‘이세신궁’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신궁은 현재까지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신사로 남아있습니다. 이세신궁의 ‘외궁’에는 원래부터 이곳에서 섬기던 토착신인 ‘도유오케오미가미’(豊受大神)을 배치하고 ‘내궁’에는 ‘아마테라스오미가미’를 섬기는 특이한 구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렇지만 매우 역설적으로 이세신궁의 내원은 한반도에서 들어간 도래인의 후손들이 이미 자리 잡고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백제 멸망 이후 거의 5천명이나 되는 백제 귀족과 유민들이 일본으로 들어간 이후 일본의 최고위직을 많이 장악하였고, 그런 중에 만들어진 이런 신화는 아직 덜 개화한 일본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더욱 공고히 지배하기 위한 종교적 수단으로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당시 다른 나라들(당나라나 신라나 발해)에서는 이런 너무나 원시적인 것을 신화로 만들어서 정치적인 지배권을 높이려는 발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 발달 단계에 이미 도달하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메이지유신기에 이것을 다시 꺼내어 사용하려한 것은 우주시대를 바라보며 우주선을 띄워야 하는 시점에서 구석기 시대의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겁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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