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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디자인’의 한계를 넘어서

2018년 2월호(제10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3. 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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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야기-미니멀리즘]

MINIMALISM DESIGN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한계를 넘어서


미니멀리즘의 배경

  ‘무지’(MUJI:무인無引양품), ‘애플’, ‘샤오미’를 떠올리면 어떠한 키워드가 생각나십니까? 이들 기업이 가진 디자인 철학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는 겁니다. 종래의 군더더기 장식이나 사족 없이 기본 도형과 입체를 중심으로 한 간결한 형태와 색상, 기능들로 통일성과 완결성을 높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서양 미술계에 새로운 조형의식의 하나로 최소한의 요소만을 사용하여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예술 및 문화 사조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화된 형태와 패턴의 반복, 구조와 형태를 한정된 색채의 사용으로 ‘본질로의 환원’을 추구한 것이죠. 


  ‘미니멀리즘’은 단지 회화뿐 아니라, 디자인, 음악, 건축사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리고 2010년 경의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정보의 과포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니멀리즘은 사고과정을 단순화해서 쉽고 직관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게 해 주기 때문에 각광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물건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새로운 지식을 수없이 체득하고 SNS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과 친구 맺기를 해도,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오히려 피로만 쌓이는 ‘피로사회’가 바로 현대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미니멀리즘은 우리가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반드시 갖추고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즉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 질문으로 환원하라고 우리를 촉구한다는 장점이 명백히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의 추구의 장점, 동서양의 미니멀리즘의 차이

  서양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특이하게도 여백, 비움, 절제라는 동양의 전통적 감성과 맥이 통합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미니멀한 디자인 미학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핵심 개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더 우선적으로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 단순함과 더불어 여백이라는 미를 통해 겉만 화려한 제품들을 추구하는 것을 피하도록 합니다. 또 실용성과 절제된 삶에 대한 갈구로 허례허식을 탈피할 뿐 아니라 많이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욕망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또한 물질문명이라는 굴레 속에서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서양의 미니멀리즘적 디자인 요소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먼저, 단순하고 절제된 미의 추구와 기능성의 강조로 시작된 서양 미니멀리즘은 화려하거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외면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죠. 그래서 적은 소유와 간단한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가운데, 좁은 공간에서도 다양하고 기능적 수납을 할 수 있는 실용성 위주의 디자인, 예를 들어 북유럽의 디자인(IKEA)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자연/ 비움/ 여백/ 노자의 무(無)사상과 연관을 가진 것 같은 ‘동양 미니멀리즘’에서는 여백은 단순히 미완성된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으로 다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비움은 더 많이 할수록 삶이 더 풍요로워지며, 아름다움이 더 발현된다고 보는 거지요. 예를 들어 일본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무인MUJI양품’의 아트 디렉터인 ‘하라켄야’는 사치스러운 것을 마구 소비하는 도시에 현명한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공’(空), ‘비어있음’을 컨셉으로 하는 텅 빈 그릇을 광고 전략으로 세상에 내 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저곳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다 보니 하나의 피상적인 유행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자칫하면 단순, 반복, 균형, 실용성이라는 미니멀리즘적 요소가 동양 사회에서는 단순히 노자의 무(無)사상(비움, 여백, 절제)의 영향으로 무소유가 마치 미니멀리즘의 핵심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동양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한계와 그것에 대한 대안

  첫째, 동양에서 개인은 자기 주도적이고 개성적인 삶을 살기보다 남(지도자, 부모, 스승, 전통)의 뒤를 졸졸 따라가야 하며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에게 흠 잡히지 않는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공’, 비움과 절제라는 미니멀리즘적 요소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동양의 개인들을 더욱더 비개성적이 되게 해서 남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단조로운 색깔(순백, 아이보리, 검정, 회색)로 자신을 치장하며 몰개성화, 획일화시킬 경향을 더 부추길 수 있습니다. 즉 ‘각 개인 속에 내재한 무한한 창의성과 다양성’을 제한할 위험이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설 때에야 각 개인과 그 개인들이 삶의 다양한 색채를 창조해 내어야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샤갈’이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동양 속에서도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둘째, ‘공’, 즉 비어있음은 ‘단순한 없음’ 혹은 ‘부재’(不在)가 아닐 때에야만 궁극적으로 인도의 힌두교와 거기서 파생된 불교나 중국의 노장사상의 종착역인 ‘허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위대한 일을 성취했으나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의 ‘피로사회’현상이 사실상 극복되지 못한 채 쓸쓸한 현대문명 속에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 현대인의 궁극적인 운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공’, 즉 사실상 비우고 없애야 할 것은 ‘허례와 허식’이며, ‘내가 스스로 절대화시킨 나의 욕망’이며, 가장 근본적으로는 ‘자기가 우주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일 뿐일 것입니다.


  셋째, 미니멀리즘을 따른다고 하며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순백의 티셔츠를 입고, 내 방안에 가득 쌓여 있는 물건을 버리고 심지어 ‘단순한 삶’(simple life)을 영위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더라도, 인간의 마음 깊이에 뿌리내린 ‘헛헛함’을 간단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각 개인의 끓어오르는 소유욕 자체는 줄어들지 않고, 한없이 채워도 항상 채워지지 않으며 끝없이 비워내어도 결코 비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일시적으로 살다가 가는 내가 지금 추구하는 욕망 자체 대신에, 나 아닌 다른 무엇 혹은 어떤 영원한 분의 영속적 가치로 마음을 채우고 싶은 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외적으로 멋있게 표현해 버리는 기술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대신에 ‘디자인이라는 외적 표현의 그릇 안에 인간 속에 내재하는 영원한 근원인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내용물을 담아야 성공한 디자인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사실 세대를 초월한 모든 디자인에서도 동일한 진리입니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한 때의 유행으로 또 지나가 버릴 겁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디자인으로서 오래가는 고전적 가치로 기억에 남으려면, 그 속에 인간을 근본적이고 풍성하게 적셔주는 영속적 가치를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창조성’의 문제입니다. 그 동안 동양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중국의 노자는 현란한 색채는 눈을 어지럽게 하고 어지러운 음악은 귀를 멀게 하여, 화려한 소리와 색은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말하였죠. 이는 오히려 우리의 다양성과 무한한 창조성을 제한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않으리요! 노자의 말처럼 내 마음이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또는 더 소유하고 싶은 덧없는 욕심때문에 비움과 절제, 무(無)를 추구한다면 오히려 내 자신을 속이고 우물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오히려 욕망덩어리인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내려 놓고 대신에 진정으로 영원한 가치 있는 것들로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은 어떨까요? 그럴 때에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넓고 풍성한 창조 세계에 대한 눈이 뜨이지 않을까요?


  다섯째, 와인 오프너로 전 세계에 알려진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단순한 와인 오프너에 사람의 모습이라는 기발한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사물은 사물 자체로 멈춰있지 않으며, 대신에 사물에 재미와 순수함과 활기를 입혀주어서 인간과 소통하는 접점을 찾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현대인들에게 감동과 따뜻함을 전해주고 있지요. 인간은 미니멀리즘으로 구현된 깔끔한 사물들이 흐트러짐 없이 잘 정리정돈 된 비어있는 공간 속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닌 겁니다. 오히려 인간은 - 人間(‘사람 사이’)에서 알 수 있듯이 - 본질적으로 ‘더불어 사는 존재, 공동체적 존재’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뒤엉켜 서로의 아픔과 기쁨으로 함께 울고 웃을 때, 우리는 단순한 ‘공’, 비어있음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진정한 만남의 기쁨과 충일함, 그리고 서로의 창조성을 서로 전염시켜서 영속적 문화를 같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적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지구를 벗어나서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향해서 햇살처럼 뻗어져 나가야 할 우주시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수많은 사물들 속에 미니멀한 제품을 한 번 찾아보실래요? 순백, 검정, 아이보리 색들에 정갈한 여백의 미,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방, 그러나 마음 한쪽에 흐르는 정적과 고요함, 그렇지만 이런 속에서 다양함과 충만함이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다양한 색채 속 꾸밈이나 화려함이 아닌 창조적이고 따뜻한, 인간과 인간이 뒤엉켜 더불어 살아감 속에 인간 근본을 생각하며 살 수는 없을까요? 과거와 현재 곧 다가올 미래 우주를 상상할 수 있는 역사의식을 갖고 살아갈 때에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하여 미니멀리즘이 지향하는 쉼과 참 기쁨의 삶을 누리지 않을까요? 


글로벌솔루텍 디자이너 신동숙

sds1024@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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