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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실패를 통해  배우는 인생 

2018년 4월호(제 10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4. 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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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스토리]

사업실패를 통해 배우는 인생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긴 하나 좋은 경험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업을 하며 다들 그렇듯 우여곡절이 있었고, 예상보다 잘된 때도 있었으며 예상대로 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내 느낌에는 그때의 사업이 인생의 축약판이었다 말하고 싶다. 사람들과 어울려 진행했던 사업이 우리네 인생에서 겪을 법한 많은 에피소드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첫 시작은 지인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2006년 즈음 서울에 올라와서 와인을 배우기 위해 갔던 사업체에서 어떤 형님을 처음 만났는데, 인상이 참 좋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나 반대로 지나치게 고민하는 성향이 있던 나머지 진취력은 부족하다 싶은 그런. 반대로 나의 성향은 일을 벌이고 몰아치는 스타일이었으나 급한 만큼 뒷수습이나 실수가 많아서 문제였는데, 이런 두 사람의 성격들이 조화가 잘 되었던지 일에 있어 좋은 시너지를 내곤 했다. 아마도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졌나보다. 아무튼 그때의 일이 인연이 되어 몇 년간 좋은 관계가 지속됐다. 


  몇 년 뒤 형님은 와인과 관련된 유통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혼자서 진행하는 일들이 당시엔 꽤나 힘들어 보였다. 자본도 적으니 직원을 둘 수도 없고 그럴 듯한 사무실도 낼 수 없는데다 아이디어나 컨셉도 부족해 보였다. 오로지 믿을 것은 그 형님의 인간성과 대인관계, 즉 영업력뿐이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적은 자본 내에서 실현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독창성이라고 판단됐다. 그것만 부여되면 전환점을 주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생각들을 서로 공유함과 동시에 함께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우선 내가 진행했던 것은 와인을 단순히 마시기만 하는 술이 아니라, 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보자 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보여줄 것이 필요했다. 또한 문화라고 지칭할만한 것들을 융합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 ‘와인전시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품, 혹은 인문학과 융합된 새로운 와인 문화였다. 사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전시회가 종종 진행되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역시 이런 트렌드가 찾아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이다.


  마침 회사의 거래처 중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대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만나서 솔직한 사정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중히 부탁했다. 적은 비용으로 전시회를 열게 해달라고 말이다. 설득이 통했던지 꽤 큰 갤러리였음에도 대표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물론 무료였다. 일주일로 계획을 하고, 컨셉을 잡고 설치에 들어갔다. 나의 생각은 와인을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전시하고, 예술품을 하나의 문화로서 소비하자라는 것이었다. 와인은 전문 소믈리에가 상주하여 시음과 설명을 곁들이고, 예술 작품은 작가가 직접 참여하여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하여 내부의 설치는 기존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루어졌다. 와인을 벽에 걸고, 그림과 조형물들은 아래에 두어 소비자(혹은 관람자)가 와인을 감상하면서 예술품을 가까이 접하는 그런 전시회였다. 


  전시회장 내부에서는 모두가 와인을 마시면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덕에 또 다른 프로그램 한 가지를 추가했다. 전시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위해 윗층에서 요리사들을 초빙해 디너를 열었다. 전문 가수와 연주자들이 참여한 재즈공연도 이어졌고, 비지니스 커뮤니케이션도 병행했다.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사업성이 있겠다 생각했다. 돌이켜 보건데 1년 반에 걸친 짧은 시간이었으나 이런 문화에 있어 내가 첫발을 내딛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추후에 투자도 이루어졌고, 거래처가 늘어가며 수익도 올라갔다.


  하지만 항상 발전할 것 같던 사업도, 역경이 찾아왔다. 아이디어가 좋고 전망도 있었으나 여러 가지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는 시작한 자본이 부족하다보니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투자를 받게 되었는데, 각자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보니 투자금으로 회사를 발전시키는 일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회사를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모두가 배고픈 마음으로 협동하였으나, 회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스스로의 입장이 더 중요해졌다. 이익 배분과 기여도에 대해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달은 내가 더 수고했으니 더 가져가야 한다, 너희들은 무얼 했느냐, 매출의 상당부분이 나의 영업으로 이뤄진 것이니 인센티브를 달라, 수익을 더 달라 등등. 이러한 문제들이 점점 커지며 후에는 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각자의 가정과 삶이 있다보니 이해는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체적인 형편이 좋지 못했고, 자본금이나 여유금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꿈에 부풀었던 나의 첫 사업은 동료들간의 마찰과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경험인 셈이다.


  현재는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고질적인 자본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궁극적인 이유는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세태에서 사업으로 꿈을 키워가려는 이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나의 경험으로는 사람만으로도, 돈만으로도, 뛰어난 아이디어만으로도 승부가 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경험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자본, 적절한 맨 파워가 갖춰졌을 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정재묵 아트디렉터

mookpwr@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2호 >에 실려 있습니다.

 

< 실패 스토리 바로가기 >

[업 실패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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