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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잘 추는 남자, 주빈 메타

2018년 8월호(제10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8. 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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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이야기 5]


추는 남자, 

주빈 메타




회상

십 오년 전쯤이었을까요.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이스라엘 필)를 이끌고‘칠레 싼띠아고 시립극장’에 왔었습니다. 보통 고마운 행차가 아니지요. 그래서 지인 부부와 친구 둘을 초대해 4층 난간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들었습니다. 제가 음악공부를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초대를 한 건데 이민 초기라 돈이 없어 가장 싸구려 표를 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연주된 곡이‘브람스 1번 교향곡’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잠이 온다던 지인의 남편이“이날 곡은 잠이 안 오고 좋았다”고 하여 일행을 놀라게 했었습니다. 아무튼 지인의 남편에게 가장 싸구려 좌석표를 선물하고 싼띠아고에서 가장 비싼 일식집에서 근사하게 저녁식사를 대접받았으니 다소 민망스런 밤이기도 했더랬습니다. 



음악 외적인 즐거움

당시에 연주된 교향곡이 브람스 1번이었는지 다른 곡이었는지 확실치 않았던 이유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감상하며 즐기려 했다기 보다는 초대한 일행들에게 음악회의 즐거움을 소개하려는데 신경을 너무나 쓴 탓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음악회에 같이 대동한 일행이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거나 조금 알지만 궁금한 것이 많은 경우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려다 보면 이리 삼천포로 빠지기도 합니다.“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각각 16, 14, 12, 10, 8명인데 왜 숫자가 다르냐?”혹은“수자폰은 군악대에서나 쓰이는 악기인데 왜 교향악단에 들어 있냐?”는 등의 예기치 못한 질문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야하는 에너지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뼛속 깊이 한국인이라 대답 못할 경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모른다 하면 될 것을 말이지요.‘싼띠아고 시립 교향악단’이 세계적인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서 소리가 그저 그렇지는 않습니다. 싼띠아고 시립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교향곡을 처음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다만 그 때 어떤 지휘자가 지휘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딱 그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입니다.‘주빈 메타’가 이끌고 온‘이스라엘 필’의 전신은 1936년 창설된‘팔레스타인 관현악단’입니다. 주변국과의 분쟁과 전쟁을 밥 먹듯 하는 나라에서 웬 오케스트라가 있는가 하겠지만 저 유명한‘라파엘 쿠벨릭’이 떠오르지 않습니까?‘아르투로 토스카니니’로 시작하여 귀에 익숙한 인물들만 거론하면‘세르게이 쿠셰비츠키’,‘레너드 번스타인’,‘주빈 메타’,‘게오르그 솔티’,‘라파엘 쿠벨릭’으로 이어집니다. 후에‘쿠어트 마주어’까지 합세하고요. 이스라엘 필이 왜 유명세가 있냐하면 처음 창립했던‘팔레스타인 관현악단’의 단원 대부분이 클래식의 나라 독일에서 쫓겨난 유태인 연주자들이라 수준이 대단히 높은 까닭입니다.


이스라엘 필과 주빈 메타

주빈 메타는 이스라엘 필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자주 지휘봉을 잡았고 급기야 1977년 창단 이후 최초로 음악 감독이 되고 차후 종신 음악 감독으로 승격이 됩니다. 호흡이 잘 맞은 탓이었을까요? 싼띠아고 시립극장에서 펼친 교향곡 연주가 끝난 후 지인의 남편뿐만 아니라 참석한 청중 거의 모두가 기립박수로 환호했더랬습니다. 이후에 재작년까지 칠레 싼띠아고에서 두 차례정도 더 주빈 메타의 지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음악과 춤

예술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이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가 나오려면 일단 목젖이라든가 육체의 일부가 진동해야 하니 원초적인 예술 수단은 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봄의 제전’은 1913년 러시아의‘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발레음악입니다. 스트라빈스키가 말년에 출간한 자서전에 의하면 꿈에서 추상적인 형태의 원시종교제전을 보고 이것을 발레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이‘봄의 제전’을 1913년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을 할 당시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야유하는 파와 조용히 하라는 무리들의 주먹다짐까지 섞이며 급기야 경찰까지 동원되어 겨우 마칠 정도였으며 원로 작곡가‘생상스’조차 무슨 곡이 이러냐고 대놓고 질타했으니 말이 아니었다지요.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대관절 어떤 곡이길래 그 지경이었단 말인가!’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여 도리어 서서히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곡이 됩니다. 기존의 화성체계를 무시하고 귀가 찢어질 듯 불협화음을 연주하여 괴상망측하다고 평가받던 곡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중 최고의 걸작이며 20세기 음악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게 됩니다. 아무튼‘봄의 제전’은 박자가 몹시 까다로워 초연을 맡은 지휘자‘피에르 몽퇴’가 교향악단과 연습으로 한두 번 맞춰보던 관례를 깨고 열여섯 번이나 맞춰보았으며 안무를 맡은‘바슬라프 니진스키’는 무대 뒤에서 무용수들이 박자를 틀리지 않도록 박자수를 고함쳐 가며 불러줬다는 뒷얘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휘자의 제왕‘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봄의 제전’만큼은 자신도 몹시 까다로웠었노라고 술회했습니다.‘봄의 제전!’그토록 까다로운 스트라빈스키의 최고의 걸작 중 하나, 아니 어쩌면 최고의 걸작이라는 이 곡을 어떤 지휘자가 가장 근사하게 연주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선뜻 말하기 곤란할 것이 현대음악의 거장‘피에르 불레즈’가 있고 그 외의 기라성 같은 지휘자 숲이 버티고 있으니 딱 하나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주빈 메타의 평가

주빈 메타는 1936년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피아노, 바이올린을 지휘자인 아버지로부터 배우고 1954년 빈 국립음악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지휘와 콘트라베이스를 배웁니다. 이후 지휘자로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카라얀이나 마젤이나 바렌보임 등과 같이 크게 두드러지며 선두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제왕 격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독히 많은 해외 연주 일정들을 소화하는 성실성과 음악적 선이 굵고 조형의 밀도가 있다는 세간의 평을 받으며 대담한 소리를 내는 지휘자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가 클래식 음악의 전통에 빛나는 빈에서 공부한 까닭일까요? 또한 미국식 현대인의 절도가 배어있어서 일까요? 아무튼 이 두 가지와 그가 태어난 나라 인도음악의 리듬과 함께 엇물려진 감각적 표현을 그는 대담하게 음악으로 나타냅니다.


춤 잘 추는 남자

이십 오년 전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어느 날 주빈 메타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봄의 제전’을 펼쳤습니다. 큰 몸짓에 적당한 살집이 푸근한 감을 주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야말로 누가 와서 지휘봉을 잡아도 최상의 소리를 내주다보니 지휘자냐 오케스트라냐에 있어서 비중의 문제로 어떤 지휘자도 천칭저울의 냉정한 판단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차하면‘오자와 세이지’처럼 동양의 특이한 지휘자 대우받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 이게 웬일입니까? 곡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토록 듣기 고약하다던‘봄의 제전’이 신이 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그가 몸을 꿈틀꿈틀하며 몸으로 지휘하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맘보춤일까요? 아무튼 엉덩이를 슬쩍슬쩍 흔들어가며, 흡사 그 어려운 박자들이 뒤엉키지 않게 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의 음악은 심각하지 않다더니 과연 의도한 것일까요? 음악과 인생을 동급으로 연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지휘자가 주빈 메타가 아닐런지? 그가 보여준‘봄의 제전’은 그 어떤 지휘자의 몫도 아닌 춤 잘 추는 남자의 것임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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