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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기 같은 노래로 사람을 살리는 '감성전도사' 김관호!

예술/음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6. 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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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주는 전도사]

인공호흡기 같은 노래로
사람을 살리는 ‘감성전도사’김관호!

 

 

 

어떻게 ‘감성전도사’라고 불리게 되었나요?
  사실 굉장히 우연하게 붙여진 것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M.net ‘너목보’에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저는 실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음악 사역을 하는 전도사였죠. ‘너목보’에서의 전도사는 그런 (교회)전도사가 아닌 단순한 수식어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K-POP전도사, 웃음전도사처럼요. 감성으로 여심을 끌려는 의도로 ‘너목보’작가들이 카사노바 컨셉의 패션이 화려한 수트를 코디에게 요청했어요. 그런데 방송녹화 당일 코디의 차가 펑크나 늦게 도착한데다 준비해야 할 화려한 수트는 가져오지 않고 일명 얌전한 전도사 같은 옷을 가지고 나타난 거죠. 결국 서로 사인이 안 맞았던 겁니다. 작가들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그냥 그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갔는데, 의상이 이렇게 (점잖게) 되니 연예인들과 패널들 전부 다 저를 ‘교회전도사’로 인식을 해버렸죠. 출연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음악목사가 꿈이고 꿈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소망을 주며 위로하고 싶다고 이야기해 버렸어요. 그 내용이 그대로 다 방영이 되었는데, 오히려 저의 솔직함과 진정성이 느껴졌는지 유명 포털 사이트에 70만 명이 넘게 긍정적 반응을 했고, 어떤 분들은 힘을 얻었다는 리플까지 달았습니다. 도리어 놀란 것은 저였어요. ‘감성전도사’라는 이름이 어떻게 보면 이렇게 실수 때문에 붙여졌지만, 전 괜찮다 싶어 계속 쓰고 싶은 거 있죠. 진짜 감성으로 다가가서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전하면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으로요. 개인적으로는 일본 쓰나미 이후, 일본에 있는 전국 50개 도시를 6년간 투어하며 쓰나미 지역에 전기난로를 선물하자는 의미로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계속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아내가 딸과 아들 둘을 키우며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2014년 해외 일을 접고 한국에 들어오자 바로 ‘너목보’가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감성전도사’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현재 저는 소년원과 미혼모 쉼터 등에 있는 소외된 10대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 아빠들은 거의 소년원에 있더군요. 제가 아는 분 중에는 이런 아이들을 양육해서 결혼까지 시킨 고마운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계속 돕다 보니 유독 10대 아이들에게 마음이 많이 갑니다. 물론 꿈과 활력을 잃은 어른들에게 음악으로 다가가는 것도 보람을 느끼지만, 좀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대상은 정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 10대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고 돌 던지는 그런 가해자이지만 사실 자기의 연약함을 감추려고 그러는 거지요. 한쪽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왜 돕느냐고, 차라리 피해자를 도우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엄밀히 보면 이 아이들도 사실 피해자인 셈이에요. 아주 잘생기고 전신에 문신을 한 주먹왕이 있었는데, 온 동네의 선배 형들까지 잡는 아이였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아보니, 아버지가 평생을 폭행하고 전신을 담뱃불로 다 지져놓아, 그걸 숨기려고 전신에 문신을 한 거였어요. 보고 배운 게 폭력밖에 없던 이 아이야말로 너무 불쌍하고 처절한 피해자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행동을 피상적으로 겉으로만 보고 돌을 던질게 아니라, 어른들의 악 때문에 빚어진 피해자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좀 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대화하는 것이 꺼려지고 이야기하면 안 들을 것 같지만, 막상 말을 이어나가다 보면 금새 눈이 초롱초롱해지죠. 이 아이들은 본인을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존재로 생각합니다. 자존감도 거의 없고 폭력적이곤 하지만, 실제 내면은 정말 여리고 약하죠. 그 내부적 상처를 감추기 위해 외부적으로 강하게 보이려는 겁니다. 도리어 일반 학교에 가서 공연하고 이야기하면 눈이 ‘멍~’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아이들은 마음에 깊은 상함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정말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라고 생각도 하지만 곧 받아들이곤 하더군요. 이런 아이들에게 뭐라도 잡을 수 있는 삶의 끈을 달아주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와 메시지밖에 없지만 이걸 통해서 10대 아이들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기 때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고 왕따까지 당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더 10대 아이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닌가요?
  저도 청소년 시절에 자살을 생각했고 삶의 이유와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1997년 IMF 때, 아버지 사업이 완전히 무너지고 채무자들이 구두 신고 안방까지 들어와서 가구들에 빨간 딱지를 다 붙이며 살림을 빼가고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정말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춘기인 중1 때라 너무 괴로웠지요.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어 어렸을 때 천재소리 들으며 4살부터 미술에 집중했고 고3까지 계속 하려고 했어요. 미술선생님들에게 촉망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도 미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는 것을 꿈으로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깨끗이 포기되었고, 집이 가난해지면서 밥을 굶을 때도 많았습니다. 동전 몇 개를 만지작거리며 분식집을 맴돌고, 너무 배가 고파서 정자위에 올라가서 울기도 했죠. 더구나 학교에 가면 여드름 때문에 피고름이 맺힌 얼굴을 보고 친구들이 “너랑 밥 먹으면 역겨워서 못 먹겠다. 저기 가 있어라”라며 왕따 시켰죠. 이렇게 11년을 살면서 아무 소망이 없는 가운데 자살하려 했으나 용기가 없어 실패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노래 부르게 되었나요?
  고1때인데 그 때는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았습니다. 더 이상 그림 그리는 게 재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노래를 잘 못했습니다. 하루에 13~14시간 연습을 하다가 1년 3개월쯤 지나 부활의 김태원씨를 만나기도 했었죠. 먹을 게 없어 거의 굶다시피 하며 연습하니 위에 구멍이 뚫리고, 4달 만에 10kg 이상 빠졌는데도 노래가 미친 듯이 좋아졌어요. 한편으론 현실을 도피할 수 있었지요. 고개를 삶의 다른 쪽으로 돌리면 생지옥이었으니까요. 엄청난 가난 속에서 그나마 노래할 때는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노래가 인공호흡기와 같았죠. 노래연습을 할 때에만 꿈꿀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참 힘들게 연습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연습이 선물이 되었죠. 이것을 꿈을 잃은 아이들에게 정말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관호님을 통해 한 아이라도 변화된 경우가 있었나요?
  제가 진짜 감격했을 때는 꿈을 버린 아이들이 다시 꿈을 찾았다고 말할 때입니다. 한 예로 노래방에서 아줌마들을 접대하는 일을 하던 20대 청년이 자살하려고 하다가, 인터넷에서 제 음악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노라고 연락을 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신발가게를 하면서 사업가로서의 꿈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결심했죠. ‘사람을 죽이는 음악도 있지만 살리는 음악도 있구나!’, ‘사람 살리는 음악 진짜 하고 싶다’라고요. 의사가 꿈이었던 아이가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고3때 포기하려고 했을 때 저의 이야기를 듣고 울면서 이렇게 말을 했지요. “잃었던 꿈을 다시 꾸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청소년, 부모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한 아이가 경찰서에 왔는데 형사 분이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하니 그 아이가 “맞아요. 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했다더군요. 이런 아이들에게 “아니다! 넌 반드시 태어나야 했다. 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다. 정말 생명이 팔딱팔딱거려야하는 그런 존재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 외할머니께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요?”하니 “죽기 전까지 힘들어 이놈아!”하시더군요. 저희 부모님은 너무 집이 가난하고 힘들다보니 제가 알아서 다 하라 하셨지만, 뭘 결정하든 마음으로 응원해주셨어요. 고3때 별밤 뽐내기에 나가 주 장원, 월 장원 하고, 연말에 2등해서 떨어졌는데, 부모님이 정말 저의 팬처럼 들어주셨죠. 저를 믿어주신 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 자신들이 가난하면 아이들을 굉장히 힘들게 하는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믿어줄 때 그런 아이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얼마 전 ‘너목보’뿐 아니라 복면가왕, 슈퍼스타K 음악감독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송봉조님이 사람살리는 음악을 같이 해보자고 찾아오셨습니다. 현재는 이분과 함께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누어야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제대로 치유하고 길러내어, 3~4명 정도라도 같이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여드름이 있었나, 그 힘든 청소년기를 어찌 보냈나 싶게 깔끔한 얼굴에 베레모를 쓰고 나타난 ‘감성전도사’김관호님은 아주 밝아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노래와 메시지로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깨우고,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열정이 느껴지는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1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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