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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에서 꿔보는 꿈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 

2018년 10월호(제10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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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여행기]





휴전선에서 꿔보는 꿈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 








 '꿈을 꾸어라’ ‘꿈을 품으라’고 하지만 현실은 꿈 앞에서 좌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꿈을 버릴 순 없다. 하니 우린 지금 꿈과 휴전 상태이다. 이는 미래에 떠넘긴 유보인가? 꿈의 비현실에 대해 종전선언을 내가 해야 할 것 같다.


 ‘이 운명의 주인공은 당신이에요. 지금 당신이, 당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으면 해요.’



 우리(아빠와아들)는 휴전선을 따라 걷기로 한 첫 날, 조조 영화 한 편을 먼저 봤다. 단지 영화 팸플릿의 이 문구에 끌려서 선택한 영화였고 둘 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빠와 아들이 함께 본 건 십년만? 이보다 더 오래 됐단 기억으로 가물가물하다. 영화를 보고난 뒤, 아빠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고?” 아들이 아빠에게 되묻는다.
 “장면? 대사? ‘내 안에서 빛나는 태양을 찾으세요.’ 영화의 마지막 대사이면서도 영화의 제목(Let the Sunshine in)이기도 하네. 이거!”

 영화는 그 빛나는 태양을 내 안에서가 아닌 남에게서만 찾으려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거의 우리 모두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 

 “빛나는 태양? 이것을 어떻게 알겠어. 아빠는 육십년 넘게 살았는데 그 태양을 찾았어?” 아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감을 보인다.
 “이렇게 휴전선을 아들과 또는 혼자라도 걷기로 한 것, 이런 것!” 아빠는 의아하단 표정을 짓는 아들에게 괴테의 짧은 시를 들려준다. 

용기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마라.

 “이것? 이거라고?”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미루고 미루던 군입대를 몇 달 남겨둔,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의 아들과의 휴전선동행걷기를 아빠가 제안했다. 처음엔 ‘미쳤어?’이런 표정으로 아빠의 말을 일거에 무시했던 아들이었다.

 “군대에서 2년 썩을 것도 암담한데, 끌려가서 2년 내내 보게 될 휴전선 철책을 따라 걷자고?”
 ‘썩는다’‘끌려간다’는 표현은 대한민국의 20대 남자들이 치러야 하는 군복무에 대해서 흔히 하는 말임을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40년 전 나도 그랬다는 아빠 역시 다른 대한민국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기왕 가는 거잖아.”
 “지났으니 그렇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 아들도 남이니까.”
 “나이가 들었다는 거지 뭐. 근데 휴전선 걷기를 아들과 함께 해보자는 계획은 정말 잘 한 것 같구나. 한번쯤 나도 다른 것을 해보는 거니까. 하루 거의 열 시간씩 약 이십일 간 꼬박 걸어야 한다는 것도, 걸으면서 그날그날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도, 무엇보다도 군에 들어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다... 한번쯤이 아니네.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해보는 거네.”

 고개를 세차게 저어대며 ‘No!’했던 아들이,
 “바빠서 전구간은 같이 걷지 못하지만 시간 내볼게. 아빠, 근데 환갑을 넘은 노인이 지금 하고자 하는 걸 보면 누가 떠오르는지 알아?”
 “응. 알 것 같아. 육십 넘어서 프랑스에서 중국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걸었다는 전직 기자 출신 올리비에? 나는 그 분에 비하면 택도 턱도 없지. 고작 다 해봐야 사백 킬로미터?”
 “아니. 돈키호테.”
 “뭐라고? 또라이라고? 아빠가?”
 “결코 부정적으로만 말한 건 아니야. 키호티즘, 알지? 비현실적이지만 이상주의자. 순수하단 말이야, 그 나이의 아빠가.”

 아빠는 잠시 멈칫 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 젓는다.
 “현실적인데. 그것도 극히.”

 현실적이라 한 것은, 군복무기간 동안을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기, 그래도 대한민국의 시계는 돈다며 시간 떼우기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소모하고 낭비하지 않기, 이래서다. 더욱 현실적인 것은‘그러고 싶다’든가 남이 해내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걷고 사색하는 모든 일을 몸소 겪어보겠다는 것이라서다. 젊은이들이 당면한 사랑에 대해서, 공부, 직업, 결혼, 재산, 권력, 행복, 성공 그리고 나와 사회를 돌아보며 되새기는 역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려고 하니 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을까. 군입대를 앞둔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1년 반, 2년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그 시기를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 그러자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시간을 족구만 하다가 나왔다는 허송세월일 뿐이다. 돌아가지 않는 시계바늘의 시간을 보낸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동행걷기 하며 서로 나누고 싶은 소통의 여러 가지를 대화하고 싶었다. 이만한 현실적이고도 실속 있는 주제가 또 있겠는가. 아빠는 실사구시라고 장담하지만 실리에 맞추기만 하는 처세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꼭 이 군입대를 앞둔 대한민국의 청년들만의 고민이나 고충, 그리고 소망은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중·장년의 대한민국 아저씨들이 또 겪어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의 시간, 자기와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해볼 시공간으로서의 휴전선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극히 현실적이라고, 꼭 이 돈키호테만은 아니라고 아빠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 이전에 나다운 나!

 휴전선 걷기의 출발지로 삼은 강화군 교동도 지석리 망향대로 떠나기 바로 전에 본 영화 포스터의 한 구절,

 ‘이 운명의 주인공은 당신이에요. 지금 당신이, 당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으면 해요.’

 이는, 내가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길 때 이 운명의 주인공으로서 내가 될 수 있다는 말일진대, 휴전선 걷기는 내가 삶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걷는 길이 되길 소망하며 따라서 휴전선 길은 나라로는 평화의 길이 되어야겠지만 나에게는 주인공의 길이 되어 줄 것이다. 

 완주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힘들 때마다, 주저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빠는 이 말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것, 그리고 견뎌내는 것! 이것만이 인생이고 기쁨이며, 왕국이고 승리이다.’
퍼시비시 셸리(19세기 영국 시인)


  또바기학당
문지기(文知己) 오동명
momsal2000@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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