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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

2018년 10월호(제10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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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역사칼럼 9]


역사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


 태안마애삼존불


제가 책을 쓰고 ‘역사 이래 이런 책은 없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들이 뭐라 해도 책을 만들 때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그냥 대충 만들어야지 생각하면서 만든 책이 좋은 책이 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나의 이번 강의 목표가 “역사 이래 이런 강의는 없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학생들은 ‘강의가 어떻길래, 모든 강의가 다 그렇고 그렇지, 되게 잘난 체 하네’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강의할 때의 다짐은 그렇습니다. 내친 김에 그들에게 역으로 제안합니다. ‘역사 이래 이런 학생은 없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같이 열심히 공부해 보자고 말이죠.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런 자신감이 사라졌습니다. ‘역사 이래 이런 00는 없었다’라는 말도 사라졌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말이고 우리나라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걸 만들기는 고사하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걸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사 이래 이런 책은 없었다’라는 말도 실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우리 역사가 가르쳐 준 말입니다. 바로 백제의 ‘칠지도’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칠지도에는 ‘선세이래미유차도(先世以來未有此刀)’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역사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라는 뜻이죠. 역사를 공부하면서 수많은 글귀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글귀는 처음입니다. 무수한 칼들이 만들어졌지만,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런 칼이 만들어 진 적은 없었습니다. 백제는 처음 이 칼을 만들면서 ‘선세이래미유차도’라고 당당히 말하였습니다.


백제의 이런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은 웅진시기, 사비시기, 백제 전시기를 통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칠지도가 ‘역사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라고 한다면, 미륵사도 ‘역사 이래 이런 절은 없었다’였죠. 금동대향로도, 서산마애삼존불도, 태안마애삼존불도 그렇습니다. 미륵사는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이 하나의 절을 이루는 3원 1가람의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절들이 세워졌지만 미륵의 용화삼회를 실현하기 위해 3개의 탑을 세운 절은 미륵사가 처음이고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금동대향로가 중국의 박산향로를 모방했다고 하지만 중국 향로에 없는 5명의 악기 연주자를 두었습니다. 수많은 삼존불이 만들어졌지만 서산마애삼존불처럼 협시가 앉아있는 반가사유상은 없었으며 태안마애삼존불처럼 가운데가 보살이고 협시가 부처인 삼존불도 없었습니다.


                                                                        칠지도


우리 역사는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문화를 창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자신감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도 자신감을 가집시다. 자신감을 새로 갖자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 우리 선조가 가졌던 자신감을 다시 한 번 재현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역사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의 칼이라는 자리에 여러분의 꿈과 도전을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명협 조경철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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