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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휴전선 걷기 동행

2018년 12월호(제11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2. 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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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여행기]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2) 

아들과의 휴전선 걷기 동행




 적폐의 모든 것은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과거에 집착하는 것에 있다. 잘못된 과거를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가를 알게 하는 풍토가 일어나야 한다. 앞에 지나가는 아들 하나만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무거운 짐이 앞서 걷는 내 아들의 등에 모두 다 얹혀있는 듯 보인다.

긴 다리가 나타났다. 교동대교다. 인도가 없는 차도만 있는 다리. 걸어 선 건널 수 없는 군사용 다리이다. 차를 얻어 타고 교동대교를 건넜다. 강화읍내까지 태워준다는 고마운 배려를 사양해야 했다.

 “이상한 아버지네. 왜 힘들게... 그럼 혼자나 걷지 아들까지 생고생하며 걷게 하는 거여?”

운전하던 60대 후반의 어른이 꾸짖듯이 말한다. 아들이 정중하게 화답한다.

 “제가 걷고 싶어서요. 그냥요.”

그냥... 참 쓸쓸한 말이다. 참 무력한 말이다. 교동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넘어오자마자 두 갈래 길에서 멈췄다. 한 길은 지금까지 왔듯이 서해바다를 끼고 이어진 철책 옆을 걷는 강화도 바깥 길이고, 또 다른 한 길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양사면을 지나는 강화도 안쪽 길이다. 두 길은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만난다. 지도상 길이는 비슷하다.

 “두 시간 반쯤 걸릴 것 같은데, 어느 길로 걸을까?”

약 세 시간 함께 걸었으니 앞으로 걷는 길은 따로 걸어보자고 했다. 아들은 안쪽 길을 택했고 아빠는 바깥 길을 택했다.

 “서두르지 마, 아빠!”

 “조심하자, 아들!”


 ‘지혜로운 사람은 실수와 진실이라는 두 거장 사이를 걷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보다는 실수 가까이에서 걸을 때가 더 많다.’

                                      - 오귀스트 기아르


휴전선을 따라 걷는 길은 나하고도 휴전의 길이다. 휴전선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지만 나의 휴전선은 내재와 외연, 소망과 현실, 과거 또는 현재와 미래, 상상과 실제, 그리고 실수와 진실 등으로 나를 가른다. 대립한 듯 하지만 분명 공존하는 것들 사이에서의 경계선이자 타협선인 휴전선은 어디에도 갈등이 함께 한다. 한반도의 휴전선이든 나의 휴전선이든 모두 갈등을 풀어내는 길이기도 하다. 내 안에서의 갈등을 풀기 위해선 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 할 것이다. 그러자니 걷기였다. 느릴수록, 힘을 더 들일수록 내 안의 나와 더 가까워질 것 같았다. 자전거타기를 좋아하지만 휴전선은 나를 더 제대로 알기위해, 나와 더 친해지게 하기 위해 두 발만으로 걷기로 했다. 


 ‘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주지 않았지만, 걸을 수 있는 다리를 주었다.’

- 알퐁스 에스키로


아직 걷기에 멀쩡한 두 다리가 있어 고맙다.‘아들은 어디쯤 걷고 있을까. 아빠도 어디쯤...’이러면서 우린 걷겠지.‘빨리 걷고 싶으면 혼자 걷고, 멀리 걷고 싶다면 남들과 함께 걸으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들과 아빠가 걷는 길은 따라 걸으면서 따로 걷는 길이기도 하다.


망향대를 출발할 때 아들이 아빠에게 걷기에 대해 아는 것으로 코치를 했다. 걸음수와 호흡수를 일정한 리듬에 맞추는 방법이다. 한 번 들이마신 숨으로 보통 서너 걸음을 걷는다. 중요한 건, 이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요 빨리 걸어야만 덜 힘들다고 한다.

 “중동지방의 대상들이 이 방법으로 하루 60km씩 보름 동안을 걸을 수 있었데.”

아프간식 걷기라고 한다.

하지만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몸은 처지고 속도가 줄어드는 게 온 몸은 물론 맘에서까지 느껴진다. ‘첫날이라 그래’ 위로하며 또 걷고 걷는다. 처음 마주치는 낯선 길에서 내 자신이 더 낯설다. 낯섦이 나를 무지함 속으로 이끈다. 낯선 나에게서 절로 겸손이 움튼다. 조심스러움이지만 위축은 아니다. 여기에 휴전선이라는 철책의 긴장감이 있고, 너머 미지의 땅 북한이 긴박감을 부추긴다. 긴장감, 긴박감, 이것은 무엇을 시작하고자 할 때의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 이래서 긴장은 불안과는 다르다. 희망이기에 긴박감으로 느낀다. 근엄해지게도 한다.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긴장도 긴박감도 없는 삶은, TV앞에서 남들이 놀고 먹는 것을 보면서 웃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TV 앞에서 용기를 낼 필요 없을 테니까.

지칠 즈음, 쉬고 싶을 즈음 핸드폰 벨이 울린다. 아들이다. 떨어져서 걸어야 하니 만약을 위해 핸드폰은 열어두자 했다.

 “쉬지 않고 걷기만 했지? 아들하고 경주하는 것도 아니니...”

쉬자고 전화를 넣었단다.

 “어디쯤?”

 “모르지. 아무튼 출발할 때보다는 많이 와 있고 도착할 곳에는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거야.”

대답을 참 재미나게 한다고 칭찬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사랑해” 아들이 이런다. 스물여덟의 다 큰 놈에게서 듣는 ‘사랑해’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그것이 입 밖으로 저절로 튀어나온다는. 저절로 튀어나온 말, “사랑해”



또바기학당, 문지기(文知己) 오동명

momsal2000@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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