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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아이돌

2018년 12월호(제11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 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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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17]


내 마음 속의 아이돌  



 전 세계는 지금 BTS(Bangtan Boys)열풍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인기곡 제목인 ‘피, 땀, 눈물’의 결과라는 것을 BTS의 팬클럽인 ‘ARMY’는 잘 알고 있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보이 밴드의 노래를 벽안의 소녀들이 목청껏 따라 부르는 것을 보노라니 나도 ‘나만의 스타’를 처음 만났던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1989년 초여름,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프랑스어에 심취해 있었고 어떻게 하든 프랑스를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내 돈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알아보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퀴즈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7승을 거두면 부상으로 프랑스에 보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방법은 프랑스 문화원이 주최하는 샹송 경연대회에 출전하면 프랑스에 보내준다는 사실도 입수했다. 퀴즈 아카데미는 2인 1조로 참가해야 하니 똑똑한 남자친구를 만들어 나가기로 하고, 또 나 혼자 할 수 있는 샹송 경연대회에 참가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과연 실제 참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 먼저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결선대회에 가 보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 참가자들의 노래를 들어보았다. 거기 나온 대학생들은 기성 가수들보다 훨씬 뛰어난 노래솜씨를 가졌고 프랑스인 사회자와 대화도 가능할 정도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00대학교 3학년의 어떤 여학생은 외모도 청순하게 아름다웠고 노래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샹송 경연대회 참가를 깨끗이 포기했다. ‘여긴 내가 나올 곳이 아니구나...’


 모두의 예상대로 그녀는 그해 대회 1등을 차지했다...그녀의 이름은 나.윤.선.


 그렇다.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재즈싱어 그 나윤선이 그 당시 내 마음에 쏙 들어왔던 샹송대회 1등을 차지했던 여학생이었다.


 세월은 흘러 나는 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어느 휴일 방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진행자의 멘트에 낯익은 이름이 들려온다.“...네, 파리에 있는 나윤선 리포터 소식 전해주세요...”


 ‘아! 그 때 그 나윤선이 프랑스에 갔구나’ 샹송대회 1등의 부상으로 얻게 된 프랑스행 티켓으로 그녀는 파리에 가 있으며 한국에 프랑스 소식을 들려주는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거다.


  C'est la vie!! (이것이 인생이다)


 세월은 또 흘러 나는 그렇게 바라던 ‘예술의 전당’에 입사해서 멋진 워킹우먼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유소극장을 대관해 달라는 대관신청서가 내 책상에 놓여있었다. 신청자 이름을 보니 나윤선 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파리에서 귀국했구나. 귀국 음악회를 하고 싶은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가 대관 심사를 통과하기 바랐다. 그러나 그 때 ‘예술의 전당’에는 파리에서 막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나윤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부장님께 그 공연을 꼭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회사에서는 이름 없는 연주자에게 극장을 빌려주었다가 대관료도 못 내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던 때라 주저하였다. 그러나 어린 막내 사원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떨치지 못하셨는지 나윤선은 대관심사를 거쳐 극장을 대관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나윤선 공연의 리허설이 있는 날 진행을 위해 매니저와 만나 이것저것을 체크 하다가 꿈만 같았던 샹송 경연대회의 추억을 들려주니 나윤선씨에게 전하겠다며 리허설 하러 오면 꼭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리허설 시간이 다가오고 드디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자유소극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다리가 너무 떨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극장 문을 열고 사운드체크를 하는 나윤선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매니저가 나윤선씨를 데리고 다가온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혹시 1989년 샹송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00대학교 3학년 학생 아니셨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나윤선씨가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매년 연말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윤선의 콘서트가 열린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녀는 영원한 나의 아이돌이다. 매년 한 해를 마감하는 의식처럼 혼자 콘서트를 보러 간다. 맨 앞줄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그 옛날 샹송 경연대회에서처럼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박수를 친다. 30년 전 꿈 많던 대학 신입생은 어느덧 꿈꾸던 공연장에서 일하는 중년의 워킹우먼이 되었고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줍게 노래하던 참가자는 세계적인 재즈가수가 되었다. 


C'est la vie!!


예술의 전당 미술부 차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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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appytownculturestory.tistory.com/398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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