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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민들레영토’에 이어 인사동 마루 ‘베를린미술관’ 지승룡 대표를 만나다!

2019년 7월호(11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9.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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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카페 ‘민들레영토’에 이어 인사동 마루 ‘베를린미술관’ 지승룡 대표를 만나다!

1990년대 우리나라 카페의 개념을 바꾼 ‘민들레영토’(이하‘민토’)
오래전 인사동 어느 한 카페에 잠깐 차를 마시러 들어 간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한참 앉아있는데 주인이 오더군요. “계속 계실거냐?” 묻길래 저는 말동무라도 해주나 싶어, “1시간 정도 더 있을 건데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버럭 화를 내면서, 지금은 손님이 많이 오는 시간이고 주말에 이렇게 혼자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으면 안된다더군요. 순간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계단을 내려오는데, 퍼뜩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이불속에 밥을 넣고 기다리는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와서 편안하고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해서 ‘민토’를 준비하고 시작한 것인데, 사실 수치스러웠던 경험이 완전히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이루어진 일입니다. 민토의 핵심은 ‘휴머니즘’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누구나 엄마와 관계 속에서 근본적으로 경험하는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는 느낌’을 ‘카페에서의 편안함’으로 가져오자는 발상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직접 토크 콘서트도 진행해보고, 음료, 라면, 책 등을 비치하고 다양한 이용 공간들도 준비했습니다. 손님들이 3천원을 내면 10배인 3만원의 만족감을 누리며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근본적으로 ‘민토’에 손님이 오실 때마다 ‘우주가 하나 들어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들만의 놀라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누며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민들레영토’와 ‘베를린미술관’이라는 이름 탄생
민들레의 씨앗은 무려 240km나 멀리 날아간다지 않나요? 이 민들레처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멀리 뻗어나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카페의 이름을 민들레영토라고 지었습니다. 한국인의 피에 어느 정도 ‘유목민적 정체성’이 있으니까요. 보통 카페이름을 럭셔리하게 지어야 고급스런 느낌이 나는데, 사실 당시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죠. 
그 후 25년이 지난 지금, 저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오는 대표적인 전통 거리, 인사동 마루에 베를린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6월 25일 갤러리를 오픈하려 합니다. 인사동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이지만, 나름 저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목회를 그만두고 3년간 ‘미술치료’에 관계된 공부를 독학했는데, ‘다다이즘’이라는 미술 사조가 찡하게 다가오더군요. ‘다다이즘’이란 1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통을 부정한 예술운동으로, 짧게 다다(dada)라고도 합니다. ‘다다’란 본래 프랑스어로 어린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木馬)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것은 다다이즘의 본질인 ‘무의미함’을 암시하기도 하죠. 
다다이즘은 처음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되었는데, 독일에서의 다다이즘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베를린·하노버·쾰른의 세 곳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청년 미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의 미학을 깨고 신개념의 오브제미술 즉, 캔버스 안에서의 미술이 아니라 ‘삶의 미술’을 만든 것이죠. 저는 이런 철학을 가지고 가난과 절망을 이겨나갔던 베를린의 다다이스트를 바라보며 용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베를린미술관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인사동에서 ‘베를린미술관’을 준비하며 제게 들려오는 소리는 열이면 열, ‘경제가 어려운데 되겠느냐’라며 단 한마디도 긍정적인 말을 듣지 못했지요. 그렇지만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예술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어려울 때일수록 예술에 집중하는 것이 복음(Good News)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예술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물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베를린미술관’의 차별성 
‘베를린미술관’은 이름만큼이나 몇 가지 독특한 방식으로의 운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보통 갤러리는 근무하는 직원들의 퇴근시간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여는 게 보통입니다. 또 대부분 큐레이터가 혼자인 경우가 많죠. 저희는 직원 10명이 근무하면서 저녁 9시까지 미술관을 열고자 합니다. 바로 퇴근후 찾아오는 일반 직장인들을 위해서지요.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전시가 끝날 때 작가들과 관객들이 그림이 있는 갤러리 안에서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미술관 안에 카페와 다른 여유 공간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넓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약 300평 규모입니다. 미술관 안에서 식사뿐 아니라 독서도 하고, 미술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셋째는 보통 전시공간은 화이트가 많은데, 저는 검정색, 주황색 등으로 색다르게 꾸미고자 합니다. 물론 제 취향과 취미대로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균형감 있게 클라이언트의 필요를 따라 조율해야겠지요. 
넷째는 공간대여 수수료를 ‘베를린미술관’에서 50%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 작가들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외국의 좋은 미술프로그램도 우리에게 맞게 전시하고, 미술 드라마 등의 새로운 장르로 창조적인 미술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 등을 구상해 보고 있습니다. 

인생 제2막을 준비하며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적 배경에서 자랐어요. 할머니께서 3.1운동 당시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97세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까지 새벽기도를 하셨죠. 저는 이상하게 할머니와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종교 신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등학교 졸업 후 제 삶을 예수께 드리겠다고 카톨릭 신학대학을 가려다, 부모님이 극구 반대를 하셔서 종합대학교(연세대학교)내 신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저는 사회 정의에 관심도 많아 진보적이기도 하지만, 근본주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 안에서 해석되는 것을 무턱대고 함부로 주장하지는 않습니다.‘베를린미술관’으로 인생 제2막을 준비하며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마다 더 부끄럽고 두려워집니다. 난 성경 말씀을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행할 수도 없는 사람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5리를 가달라고 부탁 하면 10리를 가주라’는 예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런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데는 아직도 너무 부족합니다. 
요즘 저는 편찮으신 어머니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식년을 갖고 있습니다. 3년째 어머니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지만, 귀찮고 짜증나는 게 아니라 감사한 마음까지 들더군요. 어머님이 아들인 저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계시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다녀올께요!”,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어머님께 하고, 어머님의 대답을 듣는 것이 매일의 저의 소원입니다. 
또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죽어가고 소멸되는 게 뭔지, 영원한 게 뭔지를 생각할 수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 남자들은 무심코 서 있는 나무를 발로 툭툭 치고 나무껍질을 손으로 벗기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무껍질 같이 되어 버린 어머니의 몸을 보니, 이젠 나무도 함부로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아마 올해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붉어진 지승룡 대표의 눈가에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이 전달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베를린미술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인문학과 관련된 음식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잘 알려진 윤심덕과 김우진의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들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했고, 무엇을 먹었을까를 허구적으로 생각해 글을 쓰는 겁니다. 소설이니 가능하잖아요. 고전을 오랫동안 해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음식에 관한 인문학적 지평을 소설로 넓혀보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진짜는 돈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개관전으로 영감마케팅‘김치전’을 준비한 지승룡 대표.  KIMCHI(Knowledge: 대안이 되는 지식, Inspiration: 돈을 극복하는 영성, Marketing: 필히 성취하는 경영, Challenge: 도전과 응전, Humanity: 선두가 아닌 이웃, Investiga-tion: 탁월한 대안) 25년 전의‘민토’처럼 출발부터 기획력이 전혀 달랐습니다.‘베를린미술관’이 지승룡 대표에게는 인생의 제2막이 되고, 더 나아가 미술계에 새 바람을 불어 넣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오랜만에 깨끗해진 인사동 공기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5-4 인사동마루 B1
02-2223-2589
베를린미술관 지승룡 대표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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