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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이자 독일 민주화의 상징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 Kurt Masur(1927~2015)

2019년 7월호(11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9. 1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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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 이야기 10]

예술가이자 독일 민주화의 상징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1927~2015)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컴팩트 프리앰프
‘세상에서 제일 비싼 컴팩트 프리앰프는 이탈리아의 패션도시 밀라노에 자리한 포르테비타(ForteVita)사에서 만든 오디오비조레(AudioVisore)이다’라는 기사를 작년에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작은 몸체치고는 대단히 비쌉니다. 이 회사의 연구진은 웨스턴 일렉트릭 시절부터 현대의 초하이엔드 프리앰프들의 회로를 살펴보면서, 새로 고안해 낸 최고의 회로로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전기신호를 크게 만드는 증폭소자를 반도체(트랜지스터)나 진공관이 아닌 구형 J-FET를 썼다고 합니다. J-FET가 뭔지 찾아봤더니 빈티지 반도체라는군요. 초기형 반도체가 나올 당시엔 진공관이 흔한 시대라 반도체 하나의 값이 진공관 하나 값의 무려 20~30배 이상 비쌌다고 합니다. 궁금해서 멀쩡히 잘 듣고 있던 1960년대산 필립스 라디오를 하마터면 분해할 뻔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지휘자
카라얀이냐 번스타인이냐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조금이나마 이름을 들어본 지휘자들은 모두가 천재이기에 딱 한 명을 꼽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물리학계의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가 지휘자의 세상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입니다. 독일 사람도 아닌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입니다만 그는 정말 지휘계의 지존입니다.
어릴 때 가끔 “니네 아부지 계급이 뭐야? 우리 아버지는 중령인데!”라면서 기죽이던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이런 원시적인 으스댐이 차라리 세상의 흐름을 빠르게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누가 최고로 빨리 뛰지?”, “누가 제일 이쁘지?”... 그래서 올림픽이 있고, FIFA대전이 있고, 세계미인대회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식 명칭 ‘뉴욕 필하모닉’. 어느 날부터‘오케스트라’를 떼어버리고 ‘뉴욕 필하모닉’이라고 부르게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러모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묘한 면이 있습니다. 가령, 뉴욕 필하모닉이 상주 공연장으로 쓰는 링컨 센터 ‘필하모닉 홀’은 부호 에이버리 피셔가 막대한 기부금을 대자 ‘에이버리 피셔 홀’로 바뀝니다. 최근 또 다른 부호 데이비드 게펜이 기부금을 내자 ‘데이비드 게펜 홀’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어릴 적 배워왔던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기본상식을 많이 넘어서는 미국인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럴싸한 교향악단 하나를 유지할 때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뉴욕 필하모닉은 세계금융 중심지 월 스트리트 부호들의 막강한 후원금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행정 때문에 많은 카리스마적 지휘자들이 열을 받고 뛰쳐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하겠죠.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들
뉴욕 필하모닉은 흔히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또한 그 이름에 걸맞게 역사적으로 명망있는 지휘자들이 이끌어 왔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1909~1911),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928~1936), 브르노 발터(1947~1949),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1949~1950), 레너드 번스타인(1957~1969), 피에르 불레즈(1971~1977), 주빈 메타(1978~1991), 쿠르트 마주어(1991~2002).
2002년 이후는 로린 마젤이 이어받았고, 앨런 길버트(2009~2017)가‘무난함’으로 끌고 갔으며, 작년부터 네덜란드 사람 얍 판 츠베덴이 뉴욕 필하모닉의 정식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실상
뉴욕 필하모닉에 부임했다 해서 내내 찬사를 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피에르 불레즈는 현대음악 작곡가답게 비인기 현대음악 위주로 공연을 하여 빈정을 샀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작곡도 하면서 가끔씩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려 했지만, 피에르 불레즈는 아예 번스타인이 얼씬도 못하도록 원천봉쇄했지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오래 군림하면 좋았으련만 결국 불화로 무대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도 그가 무려 7년간이나 콧대 높은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어 간 것은 대단한 야심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또한 유명한 주빈 메타나 로린 마젤 조차도 뉴욕 필하모닉의 기량을 도리어 쇠퇴시켰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 것이 비평가의 세계입니다.

주빈 메타와 로린 마젤 사이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들 중 주빈 메타와 로린 마젤 사이에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 1927~ 2015)가 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은 주빈 메타의 후임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지목하여 협상을 벌였는데, 그 와중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내정이 되는 바람에 (구)동독의 대표적 거장인 쿠르트 마주어가 그 자리를 이어 받은 것입니다. 마주어는 독일 정통 레퍼토리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뉴욕 필하모닉을 기본부터 다시 다지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음악적인 카리스마를 맘껏 발휘할 수 없는 미국식 관료체제를 싫어했던 마주어는 결국 런던 필하모닉으로 떠납니다.

쿠르트 마주어의 카리스마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 민주화를 위해 성난 7만 여명의 시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의 시위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이었던 쿠르트 마주어는 시위대에게 경찰의 무력진압을 피하라고 게반트하우스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라이프치히에서 발원한 민주화 운동은 결국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 겁니다. 이미 신뢰받고 있었던 예술가인 그는 독일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라이프치히 시위 1년 뒤인 1990년 10월 3일, 독일통일 기념식에서 쿠르트 마주어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습니다. 인기 절정의 마주어는 초대 대통령감으로 거론될 정도였다고 하지요. 하지만 정치적인 활동을 마다하고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을 맡아 지휘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쿠르트 마주어의 도약
Kurt를 쿠르트라고 발음할지 쿠어트라고 발음할지 친구에게 물어보았지만, 별 뾰족한 답을 듣지 못하고 당시 베를린 사람들은 주로 쿠어트로 발음한다고 판단을 내릴 때쯤인 이십여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베를린에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로린 마젤이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왔을 때 공연장 밖에서만 서성대다 온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기를 쓰고 봐야만 했습니다. 
결국 당일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듣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항상 무대 오른편 뒤쪽에 두 줄로 더블 베이스를 포진한 반면, 뉴욕 필하모닉은 펼친 부채꼴 마냥 무대 뒤편을 빙 돌아 더블 베이스를 한 줄로 포진시켰습니다. 이런 포진이 내는 소리는 전체를 감싸는 맛이 있었으며, 듣는 내내 대단한 박력이 있었습니다. 
쿠르트 마주어는 고국 독일에 돌아와서 신이 났던지, 지휘자 단상 위에서 여러 차례 펄쩍 뛰기까지 했지요. 레너드 번스타인의 유명한 ‘레니의 도약’(레너드의 펄쩍펄쩍 뛰는 형상을 일컬어)을 연상할 수 있어서 저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교향곡 ‘신세계로부터’가 끝나고 정말 마음 놓고 박수를 쳤던 잊지 못할 명연주의 밤이었습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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