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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가 유사하지만 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3)

2019년 6월호(11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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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23]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가 유사

하지만  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3)

 

첫째보다 둘째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 세상의 장남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장남보다 차남이나 막내가 성공할 확률이 훨씬 크다는 객관적 사실을 아시나요? 햄스터를 키워보니 가장 먼저 낳은 새끼의 항문을 어미가 핥아주는 것을 잘 몰라 죽이는 경우가 있지만, 둘째 이후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경우도 첫째를 낳은 부부가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미숙함 때문에 장남을 잘 키우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둘째 이하의 자녀들이 첫째의 실수와 성공을 간접으로 경험하면서 미리 배우는 것도 아주 중요할 것입니다. 이런 현실은 조금 더 넓은 차원, 인류의 두 문화(명)인 동양과 서양을 놓고 볼 때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지나친 일반화는 금물입니다. 즉 모든 문화(명)가 동양이 먼저 시작했고 흥망성쇠를 먼저 겪었던 것에 비해, 서양은 후발주자로서 동양을 배우는 과정에서 심지어는 동양을 추월하는 현상까지 벌어진 것으로만 지난 600여년의 문화(명) 역사를 이해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만 동양인의 한 사람, 장남의 입장에서 심리적 저항감 때문에 이 이해를 거부한다면, 차남이었던 서양인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말도 되지 않을 것이고, 21세기에 전지구인으로서 해야 할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객관적, 이성적 차원은 모든 관점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이 20세기 초에 밝혀지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더욱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원의 문화(명)를 해석하는 관점이 지식의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라면, 그런 해석이 정말 매우 제한된 차원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동양인이 소위 장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주도권을 가장 먼저 쥐어본 장남으로서의 명예심, 절제심, 깊이를 나타내면서도 서양인의 존경을 받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이룬 문화(명)의 본질을 꿰뚫어 보며 그들도 동의할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일이 매우 어려운 이유들 중의 하나는 이 글을 쓰는 저부터 유아에서교육이 마무리되어 독립할 40세까지 서양의 영향을 철저히 받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즉 스승에게서 잘 배우고 스승의 학파에 속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 당연한 전통이라 여기는 동양인적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서양에서 배웠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서양이 자신을 주장하고 변호하는 핵심근거를 자신도 모르는 체 그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서양에서 배운 동양인은 우리를 서양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받아들여서 결국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우리 존재 자체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장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이것을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서양인들의 삶의 핵심 기초이며, 자랑인 그리스-로마 문화(명), 특히 그리스 문화(명)에 대해서 그들이 제시한 것보다 탁월한 새 해석을 내어놓는 겁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로고스(이성)가 그리스에서 출현한 것은 서양의 기적으로 여겨져서, 그 이후로는 그리스가 먼저 닦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했습니다(J.Burnet Early Greek Philosophy 1892). 그렇지만 자연과학이 더 심원해지고 무엇보다도 서양인들이 1, 2차 세계대전 동안 거의 전 지구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간 경험을 통해서 문화(명)를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상실을 겪으며 어느 정도 겸손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이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근본을 뒤집는 문화(명)비평을 감행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범위에서 보자면, 독일인들이 2차 세계대전의 기간동안 그렇게 지독한 악을 온 세계에, 특히 유대인에게 행하고 난 뒤에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공적으로 사죄하는 1970년 대 초까지만 해도 쉬쉬하면서 과거에 대해 침묵하며 위선을 범한 것과 유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동양인인 우리가 서양인들이 내어놓은 자화자찬적인 문화(명)해석을 뛰어넘으려면, 서양학문을 받은 학자로서의 한계 자체도 뛰어넘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인들이 근본으로 생각하는 그리스 문화(명) 자체를 그들보다 더 뚫어질 정도로 바라보고 인류역사 전체에서 그것을 재조망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 문화(명)의 시원기에 그리스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철저히 근접해 있던 서아시아와 아프리카(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양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서양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슬쩍 언급하며 재빨리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매우 독창적 정신을 발휘하여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다. ”마치 AD 7세기 후반에 제작된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분명히 가까운 한반도와 중국, 심지어 그리스적 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면서 마치 모든 것이 일본에서만 시작된 것처럼 표현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서양 문화(명)의 시원에 고대 동양과 아프리카에서 받은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쳐 놓고 자신이 모든 것을 독창적으로 이룬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거짓이고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 아니라 동양인과 아프리카인과 아메리카인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이 얼마나 고대 그리스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드러내려 합니다(J.P. Vernant Mythe et pensee chez les Grecs 1965). 서양 철학자들이 그렇게 신주단지처럼 보듬고 다니면서 애지중지했던 그리스 철학이 철학자들의 독창적 창조물이 아니라 그들에게 이미 있던 신화의 변형판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한국 서양철학자들도 그들의 서양인 스승을 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모른 척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잘못 부르는 고대근동아시아(Ancient Near Eastern Asia), 더 정확하고 중립적 표현인 고대 서아시아(Ancient West Asia)의 신화에서 그리스철학의 기초가 되었던 그리스신화를 베낀 것이 분명하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어서 인류 역사 전체 차원으로 더 넓게 생각을 확장해 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는 이미 동양의 신화가 배경으로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고대 서아시아에는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힛타이트 제국)와 팔레스타인(가나안 왕국들)이 많이 공유하였던 것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차이나는 또 하나의 고대 창조와 타락의 스토리가 팔레스타인에 매우 오래전인 BC 14~15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가 북쪽에서 내려온 도리아인의 공습으로 총체적인 파멸을 경험한 암흑기(BC 12~8세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신화를 추스르고 문화(명)를 시작하기 무려 70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면 그리스 철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함수는 그리스 신화와의 비교, 고대 서아시아 신화와의 비교에서 한가지 더 세상의 배꼽이 가진 매우 독특한 고대 창조 이야기와의 비교로 늘어나게 됩니다. 만약에 서양철학자들이 자신의 영역이 너무 세분화되었다는 핑계로 이런 기초연구를 놓친다면, 장차 서양철학의 한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때에는 헛다리 짚었던 연구 세월만 보낸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동양인 가운데 실패한 철학인 유학/신유학인 주자학/양명학/고증학을, 또 한국인 가운데 퇴계와 이황의 철학을 공부하거나 그것을 취미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거의 없는 상황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배꼽의 독특한 창조이야기란 다름 아닌 구약성경의 창조기사(창세기 1~11장)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 철학 - 고대 그리스 신화 - 고대 서아시아 신화 - 창세기의 창조기사들을 비교하는 일은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문화되어가는 학문분야로서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많이 들고 괴로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하는 지엽적인 연구들이 장차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질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 이런 괴로움을 감수하고 연관된 연구를 해 나가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처사일 것입니다.
둘째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이미 이전 호(2019년 4월호)에 다루었던 것입니다. ‘축의 시대’라는 명칭으로 막연하게 혹은 자신없게 문화(명)를 구분했던 K.Jaspers(1949), 그렇지만 그 개념을 확실한 증거도 없는 가운데 강하게 밀어부친 K.Amstrong(1993)의 약점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문화(명)를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동양과 서양, 그리고 ‘세상의 배꼽’의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세상의 배꼽’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라는 세 대륙의 중심에 놓여있는, 매우 좁은 지역인 팔레스타인(가나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화(명)해석에서 이 지역의 문화(명)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지리적으로 이 지역이 매우 좁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둘째, 종교를 문화(명)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서양의 분리, 분석적 해석학적 태도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결코 분리, 분석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편리라는 이유로, 혹은 논리적 합리성으로 밀어붙여 작은 부분으로 잘라내어 해석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런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아야할 것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취하려고 하기 십상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어떤 삶을 영위하던지 간에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를 ‘좁은 의미’에서 교리주장이나 예배나 종교조직의 운영의 차원에서 본다면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실제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증명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자신만이 정한 어떤 기준(이데올로기, 교리)을 따라서 산다면, 그는 매우 종교적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사람조차 자살이 옳은 것인지 증명해서 모든 사람을 자살로 몰고갈 수는 없지만, 자신의 확신과 믿음으로 자살을 감행하기 때문에 그는 매우 종교적 인간인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심지어 가장 강력한 무신론자라고 하더라도 무신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숭상하고 그것을 날마다 마음속으로 읊조리고 되 뇌이기 때문에 사실상 힘차게 그것을 전도하고 다니는 강력한 종교인인 셈입니다. 즉 종교를 넓은 의미로 인간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하며 그 기초와 의미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모든 길을 고려하는 세계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부정적인 역사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5백 년 동안 서양이 르네상스, 계몽주의, 프랑스혁명, 공산주의 혁명, 근대성을 추구하는 철학적 전통 때문에, 종교(주로 로마교)에 몸서리치며 철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반감으로 기존 종교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반감과 자신의 궁극적 가치판단 자체를 증명할 수 없기에, 자신도 또 다른 일종의 종교(적 태도)를 가진 것이 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중심으로 삼아 스스로 종교적 절대가 되는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식하고, 또 과거의 역사가 주는 이런 난관들을 넘어간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세상의 배꼽에서 일어난 문화(명)를 문화(명)해석의 또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게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곳이 지리적으로 매우 좁은 지역이라는 사실은, 그 곳에서 일어난 엄청난 문화(명)적 에너지와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상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지역에서 일어난 세 절대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세계 문화(명)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강합니다.
먼저 인구로 볼까요? 세상의 배꼽에서 나온 종교인 유대교와 관련된 유대인의 인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인구 합쳐서 많아야 1500만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유대인(전체 0.5% 정도)이 미국의 최상위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많은 지를 과연 누가 정확하게 알까요? 공개적으로 드러난 수치로서 IVY리그 대학 전체에서 차지하는 유대인 교수의 숫자나 의료계, 법조계, 기업계 등에서 그들이 미치는 영향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세계적 기업 중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한 나라 자체가 창업국가라고 할 만큼 기술창업에 최첨단을 달리는 이스라엘 유대인이 세계에서 장차 차지할 위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세상의 배꼽에서 나온 또 하나의 절대종교인 기독교의 전 세계적 인구와 함께 그것이 이루는 문화(명)의 힘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니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지막 종교인 이슬람교의 인구는 무려 14억에 이르며 그 범위는 서아시아를 필두로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동쪽으로는 필리핀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문화(명)적 영향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마지막 문화(명)를 이룬 오스만투르크 정권의 비엔나 후퇴(1688) 이전까지만 해도 매우 오랫동안(AD 7세기부터) 세계사 전체에서 기독교와 필적하는 중요한 단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세상의 배꼽이 이룬 제3의 문화(명), 아니 사실상 제1의 문화(명)을 독립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어서 그것을 제2의 문화(명)를 이룬 동양과 제3의 문화(명)를 이룬 서양과 함께 고려하는 일이 문화(명)이해를 전격적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서양적 차남의 헛된 자부심이나 동양적 장남의 열등감을 골고루 극복하며 새로운 문화(명)를 창조해 나갈 원동력으로 삼는 길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 - 그리스 신화 - 고대 서아시아 신화 - 세상의 배꼽의 창조기사

 

이 네 가지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을 다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한 사례만을 들어보겠습니다. 그것은 플라톤 철학 중에서 [정치학]The Republic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일입니다. 

1) 플라톤 정치학의 핵심은 사회삼분설입니다. 사회의 최상위 계층으로서 철학자(사실 플라톤 자신)는 도시국가의 통치를 담당하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지혜(sophia, episteme)입니다. 차상위 계층은 도시국가의 방어를 담당하는 전사인데,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용기(andreia)입니다. 그런데 하위 계층은 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시민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앞의 덕목과는 매우 특이하게 ‘비대칭적인’ 절제(sophrosyne)입니다. 즉 노동을 통하여 어떤 산물을 만들어내고 공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그 어떤 덕목이 아니라, 아주 이상하게도 ‘어떤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플라톤이 어떤 것을 산출하는 노동(농부, 상인, 장인)을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무관한 것으로 심지어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여긴 것을 나타냅니다. 이들 셋째 계층은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제’를, 정치적으로는‘민주주의’를 요구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이론을 단순히 그가 자기의 스승을 죽인 아테네와 그 곳의 민주주의를 미워하였거나 대신에 스파르타식의 문화(명)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간접적인 ‘역사적 해석’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훨씬 더 근본적으로 그리스 철학의 기초가 된 그리스 신화가 숨어있기 때문에 종교적 해석을 감행해야 전체가 이해됩니다. 
2) 이것을 위해 먼저 프로메테우스 신화 속에 있는 신들의 체계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신화에는 천하의 통치자인 제우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호위하는 근위병(phylakes)이라는 전사인 신들이 있고, 기술들과 노동들을 제공해주는 여러 신들이 그 아래에 제3의 계급으로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는 기술을 상징하는 불을 인간에게 나누어주어 제우스의 심판을 받고 또 인간도 노동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징벌을 받습니다. 즉 플라톤의 인간사회를 위한 정치학의 기초를 이룬 것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난리법석을 떨면서 세상에 혼란을 가져온 것은 불을 다루는 기술(야금술, 농기구, 도자기)을 전수해준 프로메테우스 때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억제하는 덕목이 제3의 계층인 노동자, 장인, 농부에게 요구된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물건과 돈이 생긴다고 까불지 말고 통치자와 전사에 복종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화적 구조를 그대로 가진 겁니다.  
3) 고대 그리스 신화는 그것보다 무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지고 운용되었던 고대 서아시아의 신화(Enuma Elish)에서 근거한 것입니다. 우주의 신이자 최고신인 마르둑Marduk(가나안에서는 바알Baal 혹은 엘El)은 혼돈과 공허의 신인 티아맛(Tiamat)을 정복하고 그 시체를 쪼개어서 하늘과 땅을 ‘분리’해 낸 창조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가나안 지역 전체의 공통 신화입니다. 각 국가의 왕이나 제사장, 혹은 왕-제사장은 매년 신년제를 드릴 때 이 예식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을 통해서 그는 마르둑으로부터 우주 역사의 반복을 주관하는 왕적, 제사장적 권위를 받은 자임을 지배하는 모든 백성에게 공개적인 종교행사에서 보인 겁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상고시절에 어떤 지는 모르지만 단지 신화로만 남았습니다. 즉 동방에서 받은 이 전통을 가져오는 가운데 종교적 행위(제사)는 없어졌지만, 정치적 통치와 안정에 대한 원리는 그래도 이어받아서 플라톤까지 이어져 철학화 된 것입니다.     
4) 세상의 배꼽에 있었던 창조기사(창1~11장)는 고대 서아시아의 창조 신화나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유사하지만 매우 독특한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혼돈과 공허’(tohu wa-bohu)가 우주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은 제1일에 빛을 창조하고 낮과 밤을‘분리’해 내었고 제3일에는 땅과 바다를 ‘분리’해 내었습니다. ‘혼돈과 공허’(tohu wa-bohu/tiamat/typhon)와 ‘분리’라는 개념은 고대 서아시아나 심지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일종의 역사적 기억의 공통자산인 셈입니다. 그런데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명령을 주신 하나님은 인간들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tselem/demut)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는 이집트 고문서나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도 나오지만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이것은 반드시 왕에게만 쓰였습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 자료들이 서로 연관된 것은 분명한 것 같은 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정당화 될까요? 주로 진화론이 유행하던 19세기나 20세기 초반에 흔히 해석하듯이, 세상의 배꼽이 가진 이 창조기사를 역사의 흐름을 따라 가장 합리적인 종교 진화로 이루어진 결과인 ‘신화의 민주화 democratization’라고 이해할까요? 구약성경의 기록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가장 오래전에 전해주던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배꼽의 기사보다 더 오래된 고대 서아시아의 신화와의 유사성과 그 차이는 어떻게 또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을 무언가 인류 공통의 어떤 역사적 기억과 관련해서(힌트!) 차분하게 생각하며 자세히 다룰 다음 호를 기대해 보실래요?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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