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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어디로 갔죠?

예술/Retrospective & Prospective 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7. 1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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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2, 공연장에서 생긴일]

계단은 어디로 갔죠?

 

  공연을 기획한다는 것은 건축가가 집을 짓는 일과도 같다. 그 공연을 볼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좋아하는 공연의 종류와 장르는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그 집에 사는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그 가족들의 주요 동선에 따라 방과 가구를 배치하는 것과 같다. 또한 다 지어진 집의 외관과 내부는 말끔하지만 공사 현장을 가보면 과연 이 아수라장이 멋진 집으로 탄생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될 때가 많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공연이 관객 앞에 모습을 나타낼 때는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지만, 정작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 중에는 갖가지 사건 사고가 무대 뒤에서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준비하는 오페라 현장은 다른 장르의 공연보다 훨씬 더 위험부담이 크고 많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나는 오페라 ‘돈 조반니’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당시엔 완성도 높은 오페라를 보기 힘든 시기였다. 우리나라 최고 공연장의 오페라 기획자로서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을 많이 소개해, 관객들의 눈높이를 높이고 싶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과 스텝들에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극장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는 늦가을 영국 로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했었던 <돈 조반니> 작품의 의상, 무대 세트 등을 렌트해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페라는 국내 제작 공연도 복잡하고 규모가 크지만 해외극장과 교류하는 공연일 땐 더욱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할 부분이 많은 법이다. 영상으로 확인한 무대 세트와 의상은 기품있고 우아했고 심플했으며, 클래식한 전체적인 공연의 분위기와 세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외 성악가들의 무대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출연자들의 음악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영국의 로얄 오페라하우스 코벤트가든 창고에 있던 돈 조반니 무대가 한국을 향해 오고 있었다. 마침내 인천항에 도착한 물류가 예술의 전당 무대에 도착하고 극장은 무대 셋업을 위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셋업 중인 무대에서 전화가 왔다. 
  “과장님 잠깐 내려와 보셔야겠어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황급히 내려가 현장을 확인한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 조반니가 오르락내리락 할 때 써야할 나선형 계단이 들어있어야 할 40톤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계단은 보이지 않고 신문지 등 폐지만 잔뜩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빠듯한 무대준비 일정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당장 오늘 오후부터 그 계단을 설치하고 리허설을 해야 하는데, 계단이 없으니 순차적으로 전체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피가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초비상이 걸린 가운데 사라진 컨테이너를 찾기 위해 한국과 영국에서 공동 수색이 진행되었다. 컨테이너 바코드를 전산으로 추적하며 약 20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의 짐이 중국 신강에 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황급히 영국 측 기술 감독이 직접 중국까지 가서 ‘분실물’을 되찾아 오고서야 겨우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덕분에 드레스 리허설까지 ‘계단’없이 진행되었고, 공연시작 14시간 전이 되어서야 ‘계단’을 설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준비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4일간의 공연은 전회 매진이었고 성악가들의 수준은 세계적이었으며 무대와 의상 또한 최고였다. 커튼콜을 외치는 관객들 틈에서 함께 박수를 치는데, 공연을 준비하기까지의 어려움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하지만 기획자라면 극장에 꽉 찬 관객들의 박수소리에 금방 그런 일들은 잊게 되고 또 다른 공연을 만들 힘을 얻게 된다.


  공연이 끝나고 영국 측으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의 무대장치가 국제 마약조직의 운반책에 연루되어 중간에 분실된 것이라 했다. 영국 현지 창고에서 우리 컨테이너 시리얼 넘버를 일부터 틀리게 적어 다른 나라로 빼돌린 것이라나...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다. 어쨌든 공연기획자는 정해진 날짜와 정해진 시간에 최상의 상태로 공연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 공연에 출연할 출연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표현할 수 있도록 모든 연습을 지원해야 하고, 공연당일 그들의 컨디션도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획자는 이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해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아파서도 안 된다.

 

  예전에 어느 영화배우가 영화제 시상식에서 했던 수상소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저는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문화계 일들은 실제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 영화, 건축, 패션 등등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앞으로 우리가 공연과 연주 등을 볼 때, 무대 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두운 무대 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합쳐져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는 것 부디 잊지 마시길...

예술의전당 창의문화팀 팀장 손미정
mirha@sac.or.kr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3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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