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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해도 괜찮아, 삐뚤어도 괜찮아

2020년 5월호(12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6. 2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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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해도 괜찮아, 삐뚤어도 괜찮아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캐리어 우먼 
또각또각또각… 드르르륵~~ 
아무도 깨지 않은 이른 아침, 높은 힐을 신고 커다란 캐리어를 끄는 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집니다. 하루에 2~3개 지역의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취업 강의를 하느라 월요일 새벽 집을 나서면 토요일 밤에나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발이 퉁퉁 붓도록 종일 서서 강의를 하지만 힘든 줄 모르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커리어우먼이 아니라 캐리어 우먼”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죠. 일에 푹 빠져 경력을 쌓아나가는 기쁨으로 20대를 채워나갔습니다. 강의를 마치면 학생들의 입사서류를 컨설팅하고 면접에 입을 옷을 봐주며 숙소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호기심이 많아 쉬는 날도 없이 이것저것 배우느라 교육 수료증이 60여 개, 민간 자격증 4개, 국가 기술 자격증 3개가 되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악셀레이터만 밟았던 제 인생 가장 뜨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달려온 삶의 브레이크를 밟다
30대 중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강사로서의 삶에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전처럼 일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컨설팅은 커녕 아이 셋을 돌보느라 제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었거든요. 시즌에 맞춰 채용 트렌드를 공부하고 성공 사례를 모아 새롭게 자료를 만들어야했지만,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만 일을 할 수 있으니 깊은 고민 없이 후다닥 만든 강의는 늘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밤새 입사 서류를 읽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커리어가 아이들 탓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아니, 솔직히 아이들 탓 같았습니다. 일찍 자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가 났고 화를 낼수록 아이들은 더 매달렸어요. 더 이상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순간이 왔고 이대로 일을 유지하다간 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인생에 크게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함에 과감히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작가명 ‘레이첼’로 활동하며 차분하고 편안한 마음을 표현한 펜일러스트 작품
작가명 ‘레이첼’로 활동하며 차분하고 편안한 마음을 표현한 펜일러스트 작품


“세화씨가 그리는 선에는 힘이 있어요.” 
기쁘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에서 화려하게 일하는 동료 강사들의 모습이 그저 부러웠습니다. 고속도로에 홀로 고장 난 채 서 있는 것 같았어요. 스스로 커리어를 놓아버린 것이 인생을 실패한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뭐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도 소개되었던 비주얼씽킹 전문가 이주희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세화씨가 그리는 선에는 힘이 있어요.”
평생 그림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지만 유난히 그 말 한마디가 저의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있을 시간, 무작정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에 오롯이 집중하며 도화지를 채워가는 시간은 세상의 속도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호흡하며 나의 속도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잘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삐뚤어도 천천히 선을 그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잠시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 있었어요. 그림을 그릴수록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흘려보내기만 했던 흑백의 세상이 총 천연색으로 알록달록 예뻐 보였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불안함과 속상한 마음들이 위로받는 것 같았고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멈출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달려온 지난 시간, 어쩔 수 없이 멈춰야했을 때 찾아온 절망감을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브레이크와 악셀레이터를 적절히 밟아가며 저만의 페이스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멈춘 일상도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된 걸 보면요.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리네아스토리의 교육 현장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리네아스토리의 교육 현장


<리네아스토리>를 창업하다
얼마 전, 그림을 통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 <리네아스토리>*를 만들어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캐리어에는 이제 옷 대신 미술도구를 가득 채웁니다. 마음에 잠시 휴식 같은 시간을 선물해드리기 위해 직장인들과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 바쁜 삶을 사느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 살고 있는 분들을 만나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실패한 것 같아 주저앉았던 순간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죠.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에도 차분하고 현명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싶을 때 그림이 나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감정이 잘 정리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면 그림을 그려보세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면 충분합니다. 
혹시 혼자 그리는 그림이 어려우시다면 <리네아스토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도 힐링의 시간을 만나실 수 있어요. ‘난 그림이랑 안 친한데?’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죠? 괜찮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스킬을 배우는 것이 아니니까요. 쉽고 간단하지만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그림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리네아스토리>의 글을 보신다면 펜 하나만 준비해주세요. 일상적인 것들이 인상적으로 변하는 마법 같은 시간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소중한 이야기가 담긴 그 그림은 이제 당신의 마음을 도와줄 것입니다. 때론 기도처럼, 때론 고백처럼…

 

*LINEA STORY<리네아스토리>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컨텐츠 디자인회사입니다.  

 

리네아스토리 조세화/김민정

lineastory.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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