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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5)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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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34]

 

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5)

 

한국인 모두가 지난 1월에 한국에서 우한폐렴(코로나19)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급속하게 퍼지는 것을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이 신문의 핵심 칼럼인 [황혼과 여명]에서 그 사태가 아니었어도 황당할 정도로 도전적인 시리즈를 시작하였습니다. ‘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주제로 말입니다. 처음에는 짧게 다룰 것 같은 주제로 여겼지만, 우한폐렴이 세계폐렴으로 확대되어가는 것과 유사하게 이 주제도 확대되어서 이미 다음과 같이 연속해서 다루었습니다 : 

 

 A. 한반도 한민족에게 매우 유리한 네 가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2020년 2~3월호) 

 B. 한반도 한민족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2020년 4~5월호) 
     이런 주제와 연관하여서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하여 이번 호(2020년 6월호)에는 다음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 

동아시아에서 4개의 연속된 공산주의 띠(베트남-중국-북한-남한좌파) 

 4) 적은 인구수 → 일당 삼백 이상의 정신적, 종교적, 실질적 능력을 가진 개개인 되기  

 C. 우리만 가진 유일한 장점들을 살릴 때다(2020년 7월호) 

 

우한폐렴과의 전쟁이 한반도에서 격렬하게 진행되던 초창기에는 세계에서 우리를 향해 문을 닫아거는 안타까운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지배욕과 물질욕이 뒤범벅 된 똥통에 빠져사는 선출직 정치가들은 쉽게 지나갈 것으로 헛되게 국민들을 다독거린다고 사태를 엄청나게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시간 이상은 잡니다’라고 말해, 국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같이 이 일에 대한 사명감으로, 헌신적이고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노력한 수많은 전문공무원들과 의료진들이 우리에게는 구원투수로 있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적어도 방역에 있어서는 세상이 오히려 우리를 우러러보는 완전히 뒤집어진 위상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의료시스템뿐 아니라, ‘BTS’나 영화 ‘기생충’, 유일하게 시행하는 리그인 야구(혹은 축구)의 ‘빠던’(홈런치고 빳다 던지는 관습), ‘환상적 응원문화’등이 미국이나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소식에 국뽕에 취한 채 지내야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압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정치, 사회적으로 정신줄을 놓지 않아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트럼프와 미국은 결사적으로 시진핑과 중국을 꺾으려는 가운데, 초강대국의 정중앙에 위치한 우리가 양쪽에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동시에 러브콜을 받는 희한한 지정학적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한폐렴 이후에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세상이 되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지엽적이고 제한된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정치적으로 ‘세계주의’,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주의’는 물러가고. 대신에 ‘국수주의, 민족주의’ 와 ‘보호무역주의’가 유행할 것이라는 정도말입니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정신차려 더 크고 넓은 현상을 보아야 합니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문화(명)의 자신감을 잃은 서양이라는 현상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에 가장 많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그동안 제1세계 혹은 선진국으로 뻐기던 서구유럽국가들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로 무엇보다도 유럽인들과 그 후손들이, 그리고 동양인들마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자랑하던 물질문화(명)에 대한 자부심들이 완전히 꺾여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까지 소망해 봅니다.1) 서구유럽적 문화(명)의 시스템과 체계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현실에 무능한 것이 드러난 과거의 동양적 문화(명)의 것들도 완전히 제거한 가운데, 전혀 새로운 문화(명) 시스템과 체계가 반드시 탄생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4개의 연속된 공산주의 띠(베트남-중국-북한-남한좌파)
21세기라는 세계사적 전환점에서 이런 놀라운 일을 하는 데 한반도, 한민족이 매우 적격이라는 충격적일 정도로 기쁜 주제를 우리는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반도, 한민족이 이런 일을 하기에 장애가 되는 역사적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서구에서는 이미 1989년 이후 무너져서 명백하게 실패한 공산주의 체제가 동아시아에서는 지리적으로 4개의 연속된 띠를 이루어서 버젓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동아시아에서 연속된 4개의 공산주의 띠란 ‘베트남식(모이도이) 공산주의-중국식 황제공산주의-북한식 왕조공산주의-남한좌파’를 말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네 정치현실이 지리적으로 연속된 띠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심각하게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21세기에 공산주의와 거기서 파생한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역사의 무대에서 끝장이 나고 벌써 소멸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아시아에 실존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심각한 좌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좌파(‘진보’와 같은 그 어떤 좋은 이름으로 포장해도 실체는 동일한 공산주의)는, 극악무도하여 극도로 위험한 북한 그리고 뒤범벅이 된 끓는 기름 같은 중국2)과 무모한 거래를 시도하려는 것이 우리 좌절의 현실적 이유입니다. 북한, 중국과 가까워진다고 할 때에 결코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청일전쟁)에 우리는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 끼였지만, 이번에는 경제전쟁이 진짜 전쟁으로 진화할 위험이 있는 초강대국 둘 사이에 끼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 국민들이 지지리도 못난 우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위험한 이런 좌파가 득세하도록 담대하게 선택했는데, 앞으로 그 담대함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아시아에서의 4개의 연속된 공산주의 띠’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실체 앞에서, 우리 한반도, 한민족이 베트남, 중국, 북한과 같이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정직한 물음을 되물어야 합니다. 과연 긍정적으로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요? 남한좌파를 앞의 세 동아시아의 나라와 독립된 현상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일 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에 불과합니다. 남한좌파는 그저 21세기 초에 지리적 연속성을 가진 4개의 공산주의 띠라는 아시아적 현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면 다음의 질문이 필수적으로 따라 나옵니다. 왜 이렇게 특이한 현상이 동아시아에 생겼을까요? 1950년 이후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한참 득세할 때에 미국은 소위 ‘도미노이론’을 세웠습니다. 하나의 민주국가가 공산주의에 의해서 무너지면 다른 나라도 연달아 무너진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케네디와 존슨의 베트남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도미노이론 자체의 가치를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지역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리적인 질병만이 아니라 정신적, 정치사회적 운동에 있어서도 동일한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진리입니다.

예를 들어, 남미에도 국가들이 많지만 유난히 좌파가 거기서 득세한 현상을 유추해 봅시다. 북미와 남미를 개척할 때에 정반대의 식민정책을, 개신교국가인 영국과 카톨릭국가인 스페인/포르투칼이 각각 취했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넘쳐나는 영국인들(범죄인 등)이 아예 살기 위해서 북미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배삯을 지불하기 위해 노동하는 기간(5년)이 지나면 100에이커의 땅과 함께 자유민이 되었습니다.3) 이들이 영국의 정치전통과 서서히 독립하며 자치를 이루면서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이루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필요없었습니다. 하지만 남미의 경우 포르투칼/스페인은 결코 거기서 살려고 간 것이 아니라, 그저 금, 은이나 노동력을 탈취하려고 갔을 뿐입니다. 거기에 살기로 작정하고 남은 사람들은 철저히 동산과 부동산을 탈취하여 유럽식으로 떵떵거리며 살면서 현지인을 수족처럼 부렸으며,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세력이 되었습니다.4) 이들이 만든 과두정치 체제하의 남미는 정치적 부패를 지금까지도 만성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항해서 남미에 공산주의가 연결되는 또 다른 띠가 형성된 겁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긴 좌파정권의 정치적 타락과 도덕적 부패는 우파보다도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파와 좌파로 요동치면서 나라꼴들은 말이 아니게 된 것이 남미국가들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이제 다시 한반도, 한민족에게 돌아갑시다. 우리는 남미와는 완전히 다르게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때문에 모든 과거의 전통들이 다 무너져 아무런 정치적, 문화적 기초도 없었습니다. 이런 폐허가운데 이승만과 군부독재가 파생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즉 그 새로운 독재를 반대할 때에, 실패한 것이 뻔한, 그리고 1989년 이후 실패가 역사적으로 증명된 공산주의를 왜 동원했느냐는 겁니다. 좌파없이 그냥 독재에 반대했으면 안되었나요? 한국민은 어리석어서 탁월한 지도자가 나서지 않으면 그런 개혁을 하지 못한다고요? 이것은 과거 소련이 공산독재를 할 때에 하던 방식이 아닌가요? 겉으로는 부르조아 독재에서 인민을 구원하여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한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 이데올로기 뒤에 숨어서 가장 큰 독재를 부렸던 과거 소련, 현재의 중국, 특히 북한의 김정은이 공산당 독재를 시행할 뿐입니다. 민중은 어리석으니 특별한 선각자가 나와야 한다는 전형적인 엘리트주의를 따라 한사람을 앞세우는 정치형태 말입니다. 세계는 1989년이라는 인류사의 매우 중대한 변혁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그 전에는 남한좌파로 극렬하게 활동하다가 공산주의의 허구를 깨닫고 정당하게 커밍아웃했던 한때 주사파였던 김영환 같이 정직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공산주의, 빨갱이 타이틀은 슬그머니 떼어버리고 프로파간다 전술에 도가 튼 이들의 방식을 따라 멋진 신조어 ‘진보’를 붙인 위선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북한과 중국과 친밀하게 지내려는 남한좌파가 이들이 무너질 때에 그동안의 행동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왜 남미와 동아시아에는 이런 공산주의의 띠가 존재할까요?
남미의 경우는 포르투칼 / 스페인 출신의 과두정권들이 약 사백년 이상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파의 조직적인 힘을 빌려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칠레를 제외하고는, 남유럽국가에서 편만한 마피아조직이 정치와 경제도 간섭을 하는 상황이니 이들 사회와 정치의 미래가 매우 암울하게 보입니다.5) 즉 이들에게는 포르투칼 / 스페인의 역사적 정책과 그 결과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이런 공산주의, 사회주의 띠 현상이 생긴 겁니다. 여기에 종교적, 윤리적으로 사회에 경고하면서 격려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 것이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남미에 뿌리내린 로마교 자체가 남미의 개척 처음부터 이들 정치체제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이런 악한 체제를 격려하는 중세기 전통을 계속했을 뿐이었습니다. 즉 로마교는 그 특유의 이원론을 따라서 세상에서 어떤 짓을 하든 거기서 돈을 벌어 교회에 바치고 참회만 하면 용서가 되는 구조를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세상을 바꾸는 종교의 역할을 그때나 지금이나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연속된 4개의 공산주의 띠는 왜 지금도 지속되고 있나요? 두 국가(포르투칼 / 스페인)가 철저히 원주민의 모든 문화를 말살하면서 동시에 유럽우월주의 문화를 펼쳤으며, 또 로마교의 종교적 이원론을 따라 지배가 가능했던 곳은 남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서 동아시아는 매우 다른 정치, 종교, 문화(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이곳에서는 외세가 지배하기는 했지만, 아시아적 문화(명)나 인종 자체를 말살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16세기 전만 해도 아시아의 문화(명)가 유럽의 문화(명)보다 우월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 때문입니다. 그 문화적 저력 때문에 함부로 없애거나 말살할 수는 없었습니다.

첫째, 일본의 역할입니다. 매우 특이하게도 일본이 유럽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역수입하여 아시아인들에게 행하려고 한 사실이 아시아의 정치사회적 미래의 이정표를 좌우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적었던 베트남은, 지배세력이었던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하였고, 나중에는 지배하려고 덮치는 같은 공산주의 중국과도 대척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은 막강하게 자신을 지배하려던 열강들과 싸울 때에 필요했던 공산주의로 국민을 설득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4개의 연속된 동아시아의 공산주의의 띠 중에서 이런 베트남을 제외한, 중국, 북한, 남한은 모두 일본이라는 특이한 민족주의와 싸운 공통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대륙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도 공산주의를 통하여 대적하지 않았고, 그 속의 막강하고 좋은 전통으로 극복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영국도 살벌하게 지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칠천의 병력을 인도에 주둔하였으며 그마저도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철수를 오랫동안 고려할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스스로의 아시아적 뿌리를 부인하며 ‘탈아입구’(脫亞入口, 미개한 아시아에서 벗어나서 유럽에 진입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자기가 자기를 속였는데, 심지어는 그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잔인하게 한국인과 중국인들을 대했으며, 문화와 언어와 모든 것을 말살하며 종으로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판에 이승만과 장개석이 깨끗하고 청렴하며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그렇게 정치적 행위를 잇는 전통을 마련하였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였던 겁니다. 유럽과 심지어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등장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시작되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즉 일본에 대항하는 체제로서의 공산주의를 선택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인 정서에게 매우 익숙한 친일프레임에 그렇게도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친일을 벗어나고 청산하기 위해 꼭 공산주의가 있어야 하나요?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 친일프레임에 몰입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의한 또 다른 차원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또 아무리 이승만이나 장개석과 그 부하들이 청렴하였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정치형태로서의 민족주의로는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단순한 정치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철저한 세속주의적 종교와 세계관이며, 정치형태는 단지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이단에 빠진 사람은 돌아와도 정상적인 종교생활을 하기가 극도로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일종의 사이비 종교이자 철학인 공산주의에 한번 빠진 사람은 영원히 공산주의자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동아시아에 4개의 공산주의 띠가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에 동아시아에 오랫동안 존재하였던 전제군주적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중국은 황제공산주의, 북한은 왕조공산주의, 남한도 동일하게 영웅화시키는 현상이 일종의 아시아적 전통에서 연원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있을까요?6) 아시아에서는 전제군주가 오랫동안 전통이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전통보다는 인간의 개인화쪽으로 발전된 점이 종교적 경향과 관계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밝혔습니다. 즉 태양이 뜨는 쪽(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으로 전개해나간 인류는 종교를 확대하여 신들을 많이 만들어서, 중국에 이르러서는 신선이 되거나 인간끼리의 사회만 이루는 체제를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쪽으로 나간 그리스를 원류로 하는 서양인들은 신을 제거할 뿐 아니라 권위를 가진 체제에서 자유, 독립, 투쟁하는 것을 선호하는 쪽으로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아시아에서는 신 대신에 전제군주를 신처럼 대신하는 위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시아에서 4개의 공산주의 띠가 형성되었고 쉽게 뿌리뽑히지 않게 된 겁니다. 1989년에 무너진 유럽의 공산주의에 이어서, 중국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대신 벌어진 천안문사태(1989.6.3~4)의 유혈은 단지 중국의 불쌍한 현상으로만 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동일하게 떡 버티고 선, 극악무도한 김씨왕조공산주의가 더욱 더 강력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4개나 되는 강력한 띠를 이룬 체제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한 때에 만든 헛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쳐박힐 날이 올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앞당길 역할을 한반도, 한민족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우선 남한좌파가 말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고 깊은 문화(명)적 관점에서 일본이 남겨놓은 역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21세기의 공산주의에까지 남아있는 전제군주적 전통을 없애기 위하여 인류가 동쪽으로 진행하여 동아시아까지 이른 거대한 문화(명)적 차원 자체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별도의 해에 각각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두 인도출신 학자들은 서양의 분석, 분리적, 이기적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공

동체적, 윤리적 관점으로 따뜻한 경제와 정치원리가 가능함을 제시합니다: 

A.V.Banerjee, E.Duflo, Good Economics for Hard Times(2019); Amartya Sen, [정의의 아이디어]

The Idea of Justice(2010). 특히 후자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조직, 원리상의 정의 개념인 ‘니티’와 실제적 세계와 직결되는 정의 개념인 ‘니야야’를 구분합니다(p.22). 서구 유럽은 지나치게 전자인 ‘니티’를 강조한 결과,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데올로기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십상이었다고 명확하게 지적합니다.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상호투쟁적인 서양과는 달리 그래도 따뜻한 공동체적 관습을 가진 동양에서 좋은 전통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송재윤, [슬픈 중국], 2020.
3) P.Johnson, 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1998
4) N.Ferguson, Civilization, 2012
5) J.Diamond, Upheaval(2019), pp.140-177.
6) 최근에 어떤 젊은 남한의 검사가 북한에는 김정은의 ‘태양’을, 남한에는 현재의 대통령이라는 ‘달님’을 연상케하는 기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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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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