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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공간의 2중주 식물들을 주제로 한, 세가지 공간이야기

2020년 8월호(13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0. 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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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공간의 2중주
    식물들을 주제로 한, 세가지 공간이야기

 

 

 

 

1악장_ 행복나무, 너에게 반해 버렸어! 
“아니, 너 또 꽃을 피운거야!” 저희 회사엔 줄기차게 꽃을 피워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이쁜 짓만 골라한다’라는 말이 딱 맞는 이 나무는 이름도 ‘행복나무’입니다. 지난 4월에 회사에 있는 화분 전체를 분갈이했습니다.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식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려졌고, 특히 저희 같은 인테리어 회사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 매장을 빙 둘러 선 화분들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화분마다 안쓰럽게 꽂혀있는 하얀 영양제들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죠. 관리가 힘들어 인조목들로 바꿀 계획까지 갔던 위기의(?) 순간에, 제가 짠 하고 나섰지요. “사장님, 제가 분갈이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어, 꽃가게 아주머니로부터 10분 만에 전수받은 분갈이 비법으로 무장하여 넘쳐났던 의욕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17개 화분들의 위용에 금세 사그라들 정도였지요. ‘나 혼자 이걸 다 할 수 있을까?’로 시작한 분갈이는 장장 4시간 반의 씨름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예상외의 선전과 나와의 약속을 지켜낸 기쁨으로 가슴이 뿌듯했죠. 함께 고생했던 식물들이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분갈이를 마친 식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아갔고 싱싱한 이파리들을 피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히려 상태가 나빠진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요놈이 바로 앞에서 말한 ‘행복나무’였지요. 잎들이 노랗게 뜨고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금세라도 말라 죽어 버릴 것 같았죠. 분갈이를 잘못한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왠지 미안해서 영양제를 꽂아주고 며칠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잎사귀 몇 개만 남은 앙상한 가지에 뭔가가 달려 있었습니다. 다가가 보니, 에구머니나! ‘꽃’, 수수한 연녹색 나팔 모양의 꽃이지 뭡니까. ‘이 녀석 이렇게 꽃을 피우려고 몸살을 앓았구나’. 분갈이의 고통을 이기고 온몸으로 꽃을 피워낸 ‘행복나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을지 상상되시나요? 그 뒤로도 틈만 나면 꽃을 피워내는 ‘행복나무’는 이제는 싱싱한 잎들까지 주렁주렁 달고 저와 회사의 자랑이 되어 매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2악장_ 계단을 밝히는 요정들, 
             루피너스와 스파티필름
1층과 옥상까지 연결된 비상계단 창가에 몇 개의 화분들이 놓여있습니다. ‘스파티필름’이라는 촛불 모양의 꽃을 피우는 화초를 담은 것이었죠. 처음엔 작은 꽃들이 꽃대를 따라 줄줄이 피어있는 ‘루피너스’라는 꽃으로 시작했는데, 보고 즐기기 위한 것보다 계단에서의 흡연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느 비상계단들처럼 계단 2층의 작은 창문 주변은 담뱃재에 끈적한 타액으로 늘 지저분했습니다. 또 3층의 창문은 엄청난 흡연으로 오래전에 실리콘으로 폐쇄된 상태였고요. 이 공간을 살리기 위해 먼저 ‘흡연금지!’라는 식상한 문구 대신, 캐릭터를 이용해 두 가지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창문턱에 화분을 구입해 놓아두었죠. 흡연 장소를 잃은 몇몇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목덜미에 느껴졌지만, 이제는 대부분 옥상이나 야외로 도망 나와서 담배를 피울 줄 압니다. 3층 창문도 다시 열어 시원한 공기도 마실 수 있게 되었고요. 더불어 싱그러운 화초도 감상할 수 있으니 이제는 차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네요.


3악장_ ‘우리’라는 꽃을 피우기까지
저희 회사가 있는 3층 건물은 식자재 마트와 대형 가전제품매장, 서비스센터가 있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의 출입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1층 주차장 옆 화단은 늘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지요. 주차장은 그나마 나았지만, 화단에 버려진 쓰레기는 거칠게 자란 잡풀들에 섞여 늘 방치되었습니다. ‘일단 나부터 하자’라고 마음먹고 쓰레기를 치웠지만, 다음 날이면 보란 듯 쓰레기들이 다시 버려져 있었죠. 이래선 끝도 없겠다 싶어, 쓰레기가 아니라 아예 화단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아무렇게나 베어져 흩어져 있는 나무 뭉치들과 가지들을 한곳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풀들을 뽑아내고 숨어있는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화단을 마주하고 있는 옆 건물 아저씨가 고맙게도 함께 일을 도와주셨지요. 드디어 반나절의 정리가 끝난 화단은 막 이발을 마친 머리처럼 시원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진짜 화단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뭔가가 존재해야 했습니다. 바로 ‘꽃’이었죠. 꽃 없는 화단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아니겠어요? 그래서 화단 앞쪽의 흙을 일구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선물해준 꽃씨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데군데 푯말을 세웠습니다. ‘꽃씨가 자라는 우리의 소중한 화단입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그런데 이 문구가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특별히 ‘우리’라는 말이 그랬죠.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다시 어지럽혀진 화단에서 쓰레기를 주울 때면 더욱 그랬습니다. 여전히 관심도 없고 돌보지도 않는 공간이 ‘우리’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이 낭만적인 문구 대신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쓰레기입니다!’가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화단에서 누군가 먹고 버린 우유와 빵 봉지를 주우며 저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서 있어야 했습니다. 새벽장을 보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와 급하게 먹고 버린 것일지 모를 쓰레기의 주인공을 원망하고 욕하고 있는 저 스스로를 본 거지요.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이 화단을 가꾸고 꽃씨를 심은 것일까?’, ‘도대체 내가 말한 ‘우리’는 뭐지?’라는 질문 앞에 고개를 떨구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직한 꽃씨는 척박한 땅을 뚫고 싹을 틔웠고, 장마가 지나면 저녁노을을 닮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릴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햇볕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씨앗을 기어코 만들어 내겠죠. 그때쯤이면 우리들의 마음은 꽃들이 남긴 선물들로 조금 더 가까워져 있지는 않을까요? 
저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입니다.

 

한샘의왕대리점 타래 I&D 소장 고종훈

dyl815@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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